나에 삶의 조각들
32. 7월의 시작은 병원에서..
7월이 시작되었다. 후반기가 시작되어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고 돈도 많이 벌자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일을 시작했다.
아침부터 푹푹 찌기 시작하더니 숨이 턱턱 막혀 왔다. 그래도 하루 물량을 맞혀 수확을 해주어야
주머니가 두둑해진다. 늘 반복되는 일상이라도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에 감사했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는데 엄마께 전화가 왔다.
"카톡 확인해 봤어?"
내 카톡은 알림이 오지 않는다. 뭘 잘 못 건드린 건지 모르겠지만 일일이 확인하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가기
일수였다.
"아니. 무슨 일 있어요?"
"사진을 하나 보냈어. 확인해 봐."
태연한 엄마의 목소리에 뭘 보냈을까? 하고 카톡을 확인했다.
"응 뭐지..? 피!!!"
화장실 바닥에 핏덩어리와 토사물이 있는 사진을 찍어 보냈던 것이다.
너무 당황스러워 엄마께 전화를 했다.
"엄마, 이거 뭐 예요?"
너무 목이 말라서 물 두 잔을 마시고 속이 안 좋아서 화장실로 달려갔는데 피를 토하셨다고 했다.
정확히는 변기로 가지 못하고 뿜었다고 했다.
지금은 약간 어지럽기는 하지만 다른 이상은 없다면서 좀 쉬고 나서 혼자 병원에 가시겠다고 말을 하셨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서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았다.
응급 중에 응급이라서 병원으로 빨리 가야 한다는 글을 발견했다.
엄마께 다시 전화를 걸어서 집으로 갈 테니 준비를 하라고 말을 하고 남편과 집을 나섰다.
운전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남편한테 부탁을 했다.
응급 중에 응급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남편이 그러지 말고 119에 전화를 하라고 했다.
망설이고 있을 수가 없어서 119에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엄마댁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엄마께도 전화를 해서 급구대원들이 갈 거라고 오면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가있으라고 말씀드렸다.
별로 아프지도 않은데 119에 전화를 했다고 화를 내셨다.
구급차가 도착해서 상황을 물어보고 엄마를 태웠고 병원으로 가고 있다고 구급대원분이 전화를 주셨다.
대학병원으로 갈 테니 그쪽으로 오라고 말씀하셨다.
구급차가 응급실에 도착해서 응급실 입구로 들어가고 있었다.
보호자는 한 명만 들어갈 수 있어서 나만 들어갔다. 이 것 저것 묻는 말에 대답을 하고 보호자 등록도 했다.
접수처에 가서 접수를 하고 응급실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 혈압도 재고 링거 바늘도 꽂았다. 피를 토했다는 말에 코로 굵은 호스를 밀어 넣었다.
고통스러운 엄마의 표정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발은 꼬아서 힘을 주고 있었고 코로 들어가는 호스는 위까지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많이 길었다.
목으로 들어 갈수록 토하는 듯한 '욱'하는 소리가 났다. 간호사의 "꿀꺽 삼키세요. 꿀꺽." 하는 소리만이 맴돌았다. 호스로 빠져나오는 검은색의 액체. 위속에 피가 가득 차 있었는지 많은 양을 뽑아내야 했다.
나는 참아 엄마를 보지 못하고 주먹 쥔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손에 땀이 났다.
응급 담당 의사 선생님이 질문들을 하고 가자 검사를 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침대를 끌고 움직여야 했다.
내시경을 하기 위해서 보호자로서 사인을 해야 할 것이 많았다.
간호사가 태블릿을 들고 와 설명을 해주면서 수면 내시경을 해야 하니까 동의서에 사인하라고 했다.
부작용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데 갑자기 어지러워 나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무것도 아니다. 다 괜찮을 거다." 주문을 외는 듯 중얼거린 것 같다. 엑스레이를 찍고 응급실에 돌아와서 대기하다가 소화기 내과로 이동해서 내시경을 하러 갔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면서 스크린에서 엄마의 이름을 발견했다. 진행 중이라고 떠 있었고 20분 만에 엄마가 나오셨다.
마취에서 엄마를 깨워야 했다.
"엄마, 일어나야 해요. 잠들면 안 돼요."라며 계속 말을 걸었다.
어리둥절 한 표정과 마취에서 덜 깬 목소리로 "누구세요? 여기 어디예요?"라고 했다.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엄마, 딸이지." 대답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부작용 중에 단기 기억상실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이 났다.
침대에서 떨어질 것 같아서 바로 눕혀드리고 담당 의사를 만났다.
위에 소화되지 않은 이물질과 피가 고여 있어서 다 비워내야 한다고 했다.
위에서 피가 나는지 대장에서 피가 나는지 정확히 하기 위해서 위와 대장 내시경을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응급실에서 돌아와서 기다리는데 간호사가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해서 입원 수속을 해야 했다.
응급실에 온 지 3시간 만에 응급 병동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응급병동은 다인실이고 6개의 침대가 있었다. 간호사실 바로 옆이었다.
성별 구별 없는 병동이라고 해서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여자분들만 계셨다. 환자 복으로 갈아입혀 드리고 나니 보호자가 된 것이 실감이 나는 것 같다.
여태 부모의 보호 아래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젠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있었다.
병실에 올라오고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구급차를 타고 오지 않았다면 큰 일 났을 거라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내 발로 걸어왔으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들었을 거라고 나에게 잘했다는 말을 은연중에 하고 있는 거였다. 옛날에는 피토하면 죽는 병이라며 결핵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내일 내시경을 위해서 금식이라는 표시가 링거 폴대에 달려 있었다. 간호사실에서 호출하여 입원을 위한 서류 작성을 했다. 가족 관계, 집안 내력, 장기간 복용하는 약이 있는지, 병력 등등 여러 가지를 작성했다.
보호자는 한 명만 출입이 가능했다. 병원 밥은 맛이 없으니 보호자식은 신청하지 말고 2층 김밥집이나 편의점에서 사 먹는 게 좋다는 말도 해 주셨다.
마취에서 완전히 깬 엄마는 평화롭고 온화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자신은 금식이지만 저녁을 먹고 오라고 자꾸 등을 떠밀었다. 6시에 회진이라서 담당 의사를 만나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분명 2층이라고 했는데..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식당이 있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진료실들이 빼곡히 있었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다.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니 관절센터로 가야 한다고 나왔다.
바닥에 표시된 주황색 선을 따라가다 소화기 내과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니까 보였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있었다. 병원 직원들도 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혼자도 보호자들도..
키오스크로 육개장을 주문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스크린에 번호가 뜨면 가져와서 먹으면 되었다. 맛은 나쁘지 않은 정도다.
급하게 오다 보니 입원 준비가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았다. 집에 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수건, 충전기, 치약, 칫솔, 수저, 이불 등등을 챙겨 왔다.
엄마는 집에 가서 편하게 자라고 했지만 응급으로 병원에 왔기에 옆에 있어야만 될 것 같았다.
남편에게 아이들을 부탁했다. 수시로 혈압을 재고 열을 재러 올 줄 알았는데 9시에 채혈하고 링거 교체한 후 혈압재고 밤새 조용했다. 간이침대에서 자는 게 편하겠느냐 만은 밤새 그런대로 눈을 붙일 수가 있었다.
6시에 대장 내시경을 위한 약이 도착했다. 500ml 4통을 마시고 위와 장을 다 비워내야 했다.
정수기 물이 너무 차가워 미지근하게 물을 받아서 가루를 넣고 3통까지는 수월하게 드셨다. 중간중간 화장실을 다녀오셨고 4통째는 조금씩 쉬어가면서 겨우 다 드셨다. 배불러서 너무 힘들다고 하셨다.
피가 소화가 되어서 나오는지 검은 변이 나온다고 했다.
간호사가 검은 변이 안 나오면 말하라고 했다. 화장실까지 와서 확인을 했다.
이제 준비가 다 된 것 같다고 했다. 오전에는 예약하신 분들이 내시경을 하고 오후에는 입원 환자들이 내시경을 하는 것 같았다.
2시쯤 내시경을 하기 위해서 소화기 내과로 내려갔다. 대기실에 많은 보호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위와 대장 내시경을 같이 해야 하니까..
수면으로 하는 것에 동의서를 작성하고 부작용에 대해서 다시 설명을 들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면서 다른 보호자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초조하게 기다리는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다.
"ooo님 보호자 분?" 불러서 가니 내시경을 하면서 혹이 보인다고 제거를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위벽이 얇아져 있고 3 부분이 상처가 나서 피가 난다고 클립으로 집었다고 했다. 대장에는 큰고 작은 혹들이
4개나 있어서 제거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해달라고 하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한분씩 병동으로 돌아가시고 나 혼자 남아서 기다리는 동안 계속 전화가 왔다. 아버지와 동생, 남편, 사촌오빠 등등.
클립은 잘 찍었고 혹도 잘 제거했단다. 혹시 몰라서 조직 검사도 맡겨 놓았다고 했다.
이번에도 마취에서 엄마를 깨워야 했다.
"엄마, 일어나야 해요." 부스스 눈을 뜬 엄마를 보며 "엄마, 고생했어요."라고 했다.
"감사합니다. 이거 빼주세요. 아파요."라고 말하며 팔을 들어 올렸다.
많은 피가 빠져나가서 수혈을 해야 할지 몰라서 굵은 바늘을 꽂아 두어 아팠던 모양이다.
엑스레이를 찍고 응급 병동으로 돌아왔다.
피를 많이 흘린 탓인지.. 아직 피가 흐리고 있는 건지.. 혈압이 자꾸 떨어졌다. 엄마 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았다. 다리를 올리고 있자며 침대를 높여 놓고 해도 혈압은 자꾸 떨어져 갔다.
수혈을 해야 할 상황이 되고 말았다.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서 다시 내시경을 하러 가야 했다.
내시경 전문의가 아닌 담당 교수님이 직접 하신다고 했다. 7시에 다시 내려가서 내시경을 해야 했다.
화가 나기도 하고 너무 무서웠다. 위와 대장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도 했다.
대기실에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왔다 갔다 하는데 담당 교수님이 영상촬영한 것을 보여 주면서
설명을 해주셨다. 위에서 출혈이 잡히지 않아서 클립을 추가했고 상처를 지졌다고 했다(혈관을 태워서 기능을 마비시킴). 위에는 총 5개의 클립이 찝혀 있다. 15일 후 몸 밖으로 배출된다고 했다.
대장은 깨끗하다고 했다.
병실로 돌아와서 수혈을 위한 동의서를 작성하고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오한, 어지러움, 투통, 발열 등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피가 수혈되는 동안 엄마는 춥다고 떨어서 이불을 2개 덮어 주었다.
수시로 와서 채혈을 해갔고 혈압도 재었다. 링걸을 꽂고 있던 곳이 막혀서 여기저기 찔러 팔은 엉망이었고
혈관도 잡히지 않았다. 다리에도 시도를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고통을 호소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나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언성을 조금 높였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와서 한번 만에 성공하고 영양재와, 위 보호액, 항생제를 꽂아 주고 갔다. 수혈 한팩이 다 들어갔고 혈압이 오르지 않으면 한 팩을 더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밤새 간호사들이 왔다 갔다 했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을 때 잠이 들 수 있었다.
팔을 여기저기 찔러서 그런 건지 엄마는 팔에 통증을 호소했다. 링거를 빼달라고 해야겠다며 짜증을 내셨고
간호사에게 진통제를 놔 달라고 했다.
진통제가 들어가고 엄마는 겨우 잠에 드셨다. 다음날부터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지만 위에 상처를 줄 수 있어서 계속 금식을 해야 했다. 하얀색 영양재를 달고 있었는데 입자가 굵어서 혈관이 잘 막혔다.
이제 혼자 있을 수 있다고 자꾸 집에 가라고 했다. 소변이 얼마나 나오는지 양을 체크해야 하는데 링거를 꽂고 있는 손으로 하기는 쉽지가 않아서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3일을 보냈다.
목요일에는 작은 아이의 재활미술과 언어치료가 있어서 병원에서 나와야 했다.
낮에 동생한테 있어 달라고 말하고 간호사실에 보호자 변경을 신청했다. 별다른 것 없었고 이야기만 하면 되었다. 담당 교수님이 올 때마다 엄마는 언제 퇴원하냐고 계속 물어보셨다.
목요일 저녁부터 미음을 드시기 시작했고 토요일에 퇴원을 하셨다.
7월의 첫 주를 병원에서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쇠약해진 아버지에 이어 엄마까지 아프시고 나니 이제는 내가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어야 했다. 언제까지나 부모의 보호 아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날이 왔다.
참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