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의투영 Aug 02. 2024

나에 삶의 조각들

33. 남편은 T(미움을 쌓아가는 중..)

 요즘 드는 생각인데 같이 산 세월이 길다고 해서 타인이었던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뭐든 맞춰  줄 수 있을 것 같고 나만 참으면 될 줄 알았다. 마음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고 잠시 봉인 중이었을 뿐이다.


언젠 가는 한계에 다다라 자동 오픈 된다는 것을 잊고 있었을 뿐이다. 결혼 생활 3년을 채우면 20년이 된다.


최근 엄마께서 피를 토해서 입원하는 일이 생겼다. 그날 같이 가서  대기실에서 기다렸던 남편.

응급실에는 보호자 일인만 들어갈 수 어서 대기하다 돌아가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이 드는지 생각도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왔기에 저녁에 집에 가서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저녁을 챙겨주고 아이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큰 아이 5살 작은 아이 3살에 시어머니께서 허리 디스크가 터져 부산에서 수술을 하시게 되면서 이주 동안 아이들을 떼어 놓고 간병을 해야 했었다.  이제 손이 많이 안 가는 나이가 되어서  그때보다는 마음이 놓였다.


병원으로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남편과 대화를 하다 보니 화가 났다. 시어머니 병간호를 할 때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굳은 표정 퉁명스러운 말투. 고추 딸 사람이 없는 건 이해를 하지만 저런 식으로 말을 하나 싶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병원에 다 와 갈 때쯤 "내가 어머니께 했던 건 기억 안 나니?" 한 마디 했다.

일 순간 적정이 흐르고  차에서 내려서 걸어가는 동안  뒤돌아 보고 싶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는 남편을 흘겨 보고서 병원으로 들어갔다.

엄마의 내시경 수술은 경과가 좋아서  3일 만에 간호가 끝났다.  혼자 있어도 되니까 집으로 가라고 밀어내는 엄마 때문에 더 있지 못했다.

내 엄마를 간호하는데 눈치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고, 흐르는 눈물을 추체 하지 못해 화장실에서 소리 죽여 울었다. 아이들은 예쁘지만 남편은 역시 남의 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다음날부터 본업의 일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남편은 또 눈치 없는 말을 해서 내 속을 뒤집었다. 엄마는 더 이상 일을 하는 게 힘들 것 같은데

퇴원하시고 몸이 회복되면 도와 줄거라 철석 같이 믿고 있는 것이 기가 막혔다.


작은 아이 하교 시간이 3시라서 적어도 2시 30분에는 나가야 했다. 육아 전담은 나였기에 합의된 사항이었는데 뭐가 불만인 건지.

활동보조를 구하겠다고 했다. 3시에 학원에 데려다주면 5시까지 아이를 데리러 가면 되니까.

2시간은 더 일 할 수 있다. 그것 조차도 불만 인지 기름값을 드리더라도 엄마께 부탁하자는 것이다.


꼭지가 돌아 버리는 순간이었다.

"당신은 왜 자꾸 엄마를 끼워 넣어?"

"엄마가 당신을 위해 오는 것 같아? 딸내미 힘들까 봐 도와주러 오시는 거잖아."

"오시는 게 미안해서 기름값 하라고 쥐꼬리만큼 챙겨주는 그것도 돈 주는 거라고 생색을 내?"

"엄마 아직 퇴원도 안 하셨어. 일도와 주러 오셔서 더  아픈 것 같아 마음이 아픈데 당신은 힘든 내가 안 보여? 왜 그렇게 이기적이니?" 미친 듯이 쏟아 냈다.


더 이상 얼굴을 마주하기 싫어서 집으로 들어왔다. 마음 같아서는 점심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술 한잔하고 자고 싶었다. 아이 데리러도 가야 되고 때가 되었으니 끼니도 챙겨야 하고 참 기분 엿 같았다.

분명 옆에 있었으면 "그게 화낼 일이야? 안된다고 하면 되지."라고 했을 것이다.

점심을 차려 먹으러 오라고 불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밥을 먹었다. 배가 불러 기분이 좋은지

입을 열었다.

"우리끼리 열심히 해보자." 어이없는 듯이 바라봤지만 그저 평온한 얼굴이다.

"나 화났어."

"왜?"라면 태평하게 물었다. 더 이상 같이 있기 싫어서 일하러 들어갔다.

고추를 따는 동안 갑자기 눈물이 났다. 참 이럴 때는 T남자와 사는 것이 힘들다. 다 나빴던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사람을 미치게 해 놓고 태연한 그 행동이 짜증스럽다. 요즘은 주기가 짧아지는 것 같다.


차를 부수고 와도 안 다쳤으면 됐다고 더 말도 안 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내가 하는 일을 잘할 수 있게 응원해주기도 한다. 나쁜 사람은 아닌데 가끔은 편두통을 부르게 한다.


어제는 큰 아이가11일간의 방학을 끝내고 등교를 했고 작은 아이와 시간을 보내 주기 위해서 낚시를 하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밖에서 밥을 한 그릇 먹고 오자고 이야기를 해서 가볍게 출발했다.

작은 아이는 낚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몇 번 잡아 본 적이 있어서 시작은 좋았다. 기다림을 줄이고자 던진 곳으로 밑밥을 뿌리고 물고기를 모았다.

짧은 시간 동안 고등어 6마리를 잡았다. 나름 사이즈가 좋았고 많이 잡아서 기분이 좋아 보였다.

방학 동안의 기록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남기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나름 괜찮았다. 구름도 간간이 끼어서 뜨겁지 않았고 바람도 간간이 불어서 시원한 편이었다.

가져간 밑밥과 생미끼가 동날 때즈음 작은 아이는 힘들다고 차로 먼저 돌아가면서 뭐 먹을까? 물어봤는데 반응이 시큰둥하다. 못 들었나 해서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이야기하기로 하고 차에 탔다.

차가 출발하고 다시 물었다. "뭐 먹을까?" 눈에는 피곤함을 가득 담아 못 들은 척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간간이 지나가는 중국집, 횟집등 식당이 보였으나 고개를 돌리고 앞으로 직진 집으로 곧장 오고 말았다.

아이 앞이라 큰 소리 내고 싶지 않아서 집으로 들어왔다.

안 보이는 데 있으면 화를 안 냈을 텐데 자꾸 옆에서 얼쩡거린다. 부엌에서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핸드폰 들고 게임하다가 유튜브로 코미디를 보면서 낄낄 웃는 게 너무 얄미워서 큰 소리가 나갔다.


"밖에서 밥 먹고 오자며? 내가 하는 말 못 들었어?"

"어디 들어가자고 말을 하지?"

"내가 뭐 먹을까? 하고 물어봤잖아. 못 들은 척했잖아."

"네가 뜨거워서 내리기 싫어서 짜증 낼까 봐. 그리고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할 거잖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댔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식당에 가는 것에 신중했다.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그게 언제 적 일인가?.. 뜨거운 햇볕이라도 잠깐 내려 식당으로 들어가면 금방 시원해진다. 뜨거운 앞에서 요리하는 것과 비교가 될까? 그걸 핑계라고 대고 있다.

아이만 없었어도 밥 안 주고 집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요 며칠 T인 이 남자가 자꾸 속을 긁어 댄다. 늙으면 보자고 벼르고 있는 중이다.

예전에 엄마가 보시던 좋은 생각이라는 책 생각이 다.  사람들의 수기들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었다.


아내는 화가 나거나 남편이 미울 때마다 나무 막대기에 못을 하나씩 박았다고 했다.

남편이 사과를 하거나 예뻐 보일 때는 박은 못을 뽑았다고. 결혼 생활 40년쯤 되었을 때 남편이 발견하고

이게 무엇 이냐고 물었고 아내는 웃으면서 설명해 줬단다.

못은 많이 빠져 있는데 못이 빠진 자리에 구멍이 많이 남아 있고 나무 막대기에는 빈자리가 없었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남편은 눈물을 흘리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고 아내는 못을 다 빼내고 있다고 말을 했단다.

남편은 못을 아무리 빼내도 자국이 남았다며 시간이 지나 무뎌지긴 했어도 흉터를 남겨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단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올까?  편두통이 다시 생기는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 삶의 조각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