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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할인간 Aug 15. 2023

나에 삶의 조각들

04. 승마 강습이 끝났다.

2023년 학생승마 진로체험 지원사업에 선정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라는 문자를  5월에 받았다. 미리 학교에서 알려 주었기에 알고 있었지만 참 설레는 순간이었다.

작년에 작은 아이만 신청을 했었는데 선정되었다고 학교로 공문이 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할 거냐고 물었다. 아이에게 다양한 체험을 해주고 싶어서 신청했으니 당연히 한다고 했다.

그날 오후 4시에 농업기술센터에서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잘 못 전달 된 것이라고..

학교에 공문까지 보내 놓고 잘 못 되었단다.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화가 났다.

담당자에게 화를 많이 냈다.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학교 입장도 난처하게 되었고 아이에게 말을 타러 간다고

계속 주입시키고 있었는데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농업기술센터 축산과에서 담당하고 있었다. 담당자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단단히 말해 두었다. 혹시 취소자가 생기면 대기 1순위로 올려 주겠다고 했다. 희망고문 같아서 거절했다.


올 해는 일반 아이들도 학생승마 진로체험 사업이 확대되어서 *'학교종이'이라는 어플로 알림이 왔다.

되든 안 되든 해보자 싶어서 두 아이 모두 신청을 했다. 작년에 있었던 일도 있고 해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승마클럽도 목록에 있었다.  되면 좋고 안되도 그만이다라는 생각으로 신청한 것이기에 마음을 비우기로 했었다.

작은 아이 학교 행정실에서 선정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에이 설마 또 잘 못 되었다고 전화가 오는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중 학생인 큰 아이 학교에서도 선정되었음을 알리는 문자가 도착했다.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했다.

이번엔 진짜겠지..

하교를 한 아이를 데리고 오면서 차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 학교에서 재미있는 일 없었어?"

"승마 신청한 게 됐나 봐요. 행정실에서 불러서 갔었어요."

"애들 몇 명이 나 선정되었어?"

"11명 중에서 4명이 되었어요. 할 거냐고 물어서 한다고 했어요."

"4명이나 되었구나."

"그런데 다들 승마 신청한 거 모르고 있던데요 부모님이 말도 안 하고 신청하셨나 봐요."

"정말? 그래서 애들은 한데? 잘 모르겠데요. 가볼까 하는 애들도 있고."

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시시 콜콜 아이와 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나름 중3임에도 불구하고 사춘기를 순조롭게 지나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작은 아이에게는 아직 말하지 못했다. 섣불리 이야기를 했다가 어그러지면 이번에는 내 돈을 들여서 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폐 아동에게 빈말은 없다. 모든 것을 기억했다가 때를 쓰게 되면 감당하기 힘들다.


며칠이 지나고 승마클럽에서 학생승마 진로체험 선정 문자와 전화를 받고 나서야 실감하게 되었다.

장애 아동인 작은 아이는 무료로 진행되고 큰 아이는 9만 6천 원이라는 비용이 든다.

6월 10일~8월 12일 매주 1일 1시간  10회 수업이 진행된다.

평일과 주말 중에서 선택을 할 수 있으나 내가 원하는 시간과 요일을 선정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했다.

오픈하는 시간에 링크에 접속해서 등록을 해야 했다. 휴대폰 하나당 한 명만 등록이 가능하다고 해서

아들과 둘이서 20분 전에 접속해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토요일 11시 수업으로 설정하고 시간이 되자마자 눌렀다. 작은 아이는 등록이 되었고 큰 아이는 그 시간에 대기로 되어있었다.

전날 사무장님께서 전화를 하셔서 작은 아이의 장애정도와 혼자 자립이 가능 한지 말을 타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질문을 하셨고 나는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기록에 자폐 2급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시고 전화를 하신 것이다.

나는 많은 체험과 활동 등을 통해서 많은 결과와 성과를 내 왔다. 그래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 함께 하기에 수업에 방해가 되면 안 된다는 것도 알 고 있다.

시작도 안 해 보고 포기할 수는 없다.

사무장님께 한 가지를 부탁드렸다. 오빠와 같은 수업 시간에 넣어 달라고..

오빠가 하는 것을 보고 안심하며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래서인지 같이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토요일 11시로 확정을 받고 그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두근두근 설레는 승마 첫 수업 날이었다.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 10시 50분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서 주차할 곳이 없어서 대충 외진 곳에 세워 두고 헐레벌떡 뛰어갔다.

이미 승마장 구경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아이들로 시끌벅적했다.

사무장님께서 주시는 보험 가입서류를 작성했다.  안전사고에 대비해서 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면 말을 탈 수가 없다고 했다. 첫날 수업은 마방을 구경하고 승마 수업을 진행하실 선생님과의 대면식, 원장님 소개로 이어졌다. 부모님들은 사무실에서 대기를 하고 아이들만 모여서 선생님과 얼굴을 익히고 나누어준 종이를 돌아가면서 읽기를 했는데 작은 아이가 거부를 하고 큰 소리를 냈다고 했다.

내가 안 보여서 불안했던 걸까? 기분이 좋아야만 순순히 따라 하기는 하지만 낯선 분위기에 선생님이 좀 무서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안전과 직결되어 있고 하다 보니 부드러운 수업은 아닐 수 있다.


사무장님 호출로 선생님과 셋이서 대화를 하게 되었다.

아이의 행동으로 수업을 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셨던 것이다. 이대로 진행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사무장님은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 하셨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서 선생님을 설득해야만 했다.

"선생님 아이는 오늘 여기가 많이 낯설에서 그런 같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아이와 많은 체험 활동을 해왔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아이를 가르쳐 왔습니다. 선생님께서 어떤 것을 걱정하시는 알고 있습니다.

아이를 한 번만 믿고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안전과 직결해 있고 여기는 치유를 위한 승마클럽이 아닙니다. 다른 곳에 알아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선생님 아이를 겪어 보지 않으셨잖아요. 기계를 사용해서 하는 빵 만들기와 클라이밍 모두 안전하게 잘해왔습니다. 지금도 클라이밍을 하고 있습니다. 수업을 해보시면 마음이 달라지실 겁니다. 수업에 참여하게 해 주세요" 미덥지 않은 굳은 표정과 돌아오는 대답은 "모르겠습니다."

"수업에 차질이 생기면 즉시 그만두도록 하겠습니다."

사무장님의 도움으로 겨우 승마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여기서 포기하면 대기하고 있던 누군가가 수업을 받게 된다. 포기하는 게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보험에 가입이 되지 않아 말은 타보지도 못하고 말 구경과 서류작성을 마치고 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도

생각이 왔다 갔다 한다.

아이들에게 수고했다며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에게도 말해 주었는데 잘해 낼 거라면 나를 다독 거렸다.


두 번째 수업이 시작되는 토요일 아침 8시부터 아이들을 깨우고  씻으라고 한 뒤 아침밥을 준비하는데

손이 떨렸다. 여태 잘해왔다. 이번도 그럴 것이다. 마음을 다 잡아 본다.

복장은 청바지에 발목이 긴 양말과 운동화였다. 승마용 장갑도 3만 원을 주고 구입했다.

출발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큰 아이에게

"동생이 어떤 행동을 하든 어떤 말을 하는 너는 관여하지 말고 네가 해야 될 것 만 생각해. 나머지는 엄마가

할게"

작은 아이에게는

"선생님 말에 집중하고 선생님 말 잘 들어야 해. 혼잣말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잘 따라 하고 말은 큰 소리를 내면 놀라 크게 말하면 안 돼. 알았지?"

계속 주의를 주면서 이동을 했다. 30분 일찍 도착해서 출석부에 체크를 하고 승마 조끼, 안전모, 이름표까지

착용을 한 후 대기석에서 10시 수업을 하는 아이들의 수업을 보게 했다.

조금이라도 눈에 익혀 놓으면 좋을 것 같아서.

가볍게 주먹 쥔 손에 땀이 났다. 10시 수업이 끝나고 10분 휴식을 가진 뒤 11시 수업이 시작된다.

오늘따라 작은 아이도 긴장한 탓인지 많이 차분해 보였다.

생각보다 잘 따라가 주었고 아무 문제 없이 승마 수업이 끝났다. 지켜 보내는 내내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사진을 몇 장 찍어 주었다.

승마 선생님도 그 후 아무 말이 없으셨다. 차차 적응해 가면서 익숙해지니 조금씩 긴장을 풀어 가는 것 같아서

계속 눈으로 주의를 주고 혼잣말을 할 때면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면 쉿 하는 입모양을 했다.


원장님이 수업하시는 날에는 아이를 많이 배려해 주셨고 이름을 불러 주시며 고삐 길이를 조절해 주시곤 하셨다. 6회 수업 무렵 아이들은 혼자서 말을 타게 되었다. 속보와 경속보를 하는 동안 속도가 빨라서 그런지

조금 신나 보였다. 눈짓으로 집중하라는 신호를 주고 있지만 "야호 신난다." 작은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히 말이 놀란다" 원장님의 말에 다시 조용해진다.

같이 수업하는 부모님들은 장애 아동인 줄 모르는 눈치셨다. 그냥 좀 유별난 아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수업이 있는 날에는 항상 30분 먼저 가서 준비하고 한 번도 빠짐없이 수업에 충실히 임했다.

온 순서대로 입장하기 때문에 5명이 먼저 타고 나머지 5명이 대기하고 수업을 진행한다.

그래서 항상 순서는 먼저였다. 대기하는 것이 길어지면 힘들어지기 때문에 늦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10회 수업이 무사히 끝났다. 그동안 고생하셨다는 인사를 듣는데 마음이 찡해진다.

큰 아이는 3급 포니등급 심사 자격증을 따기로 하고 2만 원을 냈다. 2달 후에 자격증이 나 온다고 했다.

나는 또 하나의 과정을 무사히 지나왔다. 포기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동안 해봤던 것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 이었다. 나의 노력은 헛 되지 않았다.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 준 큰 아이가 있다. 큰 아이는 알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것들을 함께하고 지켜

봐 왔으니까. "엄마는 좋은 엄마야"라는 말을 해 주었다.


무사히 승마 강습이 끝났다. 안도의 한숨과 행복함을 느낀다. 모든 것에 감사한다.


*학교종이-학교에서 종이로 보내지는 안내문 설문지 등을 어플로 만들어 휴대폰으로 수시로 알려주는 기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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