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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이야기] 06. 미아리 노블레스 오블리쥬

Y-squire 한 회장과 미삼번영회 김 회장

by 아리미 이정환

“이작가 오늘 시간 좀 있어요?”

미삼번영회 김영계 회장이 시간을 내달라고 한다. 커피숍 이층에서 골목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촬영해서 숫자들을 기록해 달라고 한다. “어디에 쓰시려고요? 내가 그 이유를 물으니 ”아! 글쎄 그 골목이 말이야. 주민들이 몇십 년 간 이용하던 길인데 그게 한마음예식장 소유의 땅이지 뭐야. 한마음예식장 건물을 신축하면서 그 골목을 없애고 거기까지 건물을 짓겠다는 거야. “


말인즉슨 골목을 없애는 건 소유주의 당연한 권리지만 몇십 년 간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골목이 없어지면 주민들은 많이 불편해지고 먹자골목 상인들은 손님들이 빈번하게 유입되는 길이 막히는 바람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거다.


“회장님 그건 어쩔 수 없잖아요. 건물주가 자기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건데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요?” 내가 물으니 김 회장은 “관습법이란 게 있지 않겠어요? 수십 년 간이나 주민들이 이용하던 길인데 그 길이 막히면 얼마나 불편해? 구청에 민원을 넣어서라도 지금 그대로 그 자리에 건물이 올라가게 만들어야지. “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골목을 살릴 수가 있다면야 하는 데까지 노력은 해봐야겠단 마음에 커피숍 이층에 앉아 하루 종일 골목길을 오가는 행인들을 촬영하며 대략적인 숫자를 파악해 봤다. 역시 그 길은 주민들이 애용하는 메인 통로다.


김영계 회장과 촬영을 맡은 나 그리고 상가번영회 관계자와 주민대표는 우리 측의 민원을 대변하는 시의원과 함께 구청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구청 측은 한마음예식장 건물의 대리인인 신 과장을 동석시켰다.


면담 시작부터 자리는 격해졌다. 건물의 대리인 신 과장은 “땅의 주인이 왜 이런 자리까지 와야 합니까? 단연한 소유권을 행사는 하는 건데 말이죠.” 솔직히 그건 타당한 말이다. 하지만 우리 측도 그에 뒤지지 않고 나름대로의 논리를 폈다. “주민들이 관습적으로 이용하던 길이고 그 길이 막히면 얼마나 불편합니까? 특히 장애인이나 노약지들이 빙 돌아서 이동해야 하는데 그냥 지금 그대로 건물을 신축하면 안 됩니까?” 자리를 주선한 구청장은 대화에 끼어들지도 못하고 양측의 대립에 난감해했다.


그렇게 결론 없이 자리가 정리됐다. 그 후 며칠의 시간이 흐르고 김영계 회장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김 회장은 환한 얼굴로 “이작가 우리가 원하던 대로 정리가 됐어.”라고 말을 꺼냈다. 나는 이해가 안돼서 되물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그 비용이 엄청날 텐데요?”


김영계 회장은 말을 잇는다. “이작가, 한 회장이란 분 대단한 분이야. 거의 20억 정도의 손해를 감수하신 거야. 사실 나도 억지를 부린 거란 걸 잘 알거든…..”


결국 한마음예식장 건물 자리에 Y-Squire라는 빌딩이 들어섰다. 예전 그 자리가 영종여객 종점이었는데 나는 Y-Squire의 Y가 영종여객의 Y 이니셜을 따온 거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그 일 이후로 한 회장과 김 회장은 각별한 사이가 됐고 그 두 분은 주민들을 위한 여러 좋은 일을 하며 미아사거리 노블레스 오블리쥬라는 칭송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때 Y-Squire의 대리인으로 나섰던 신 과장은 지금은 신사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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