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짜장면을 먹었을 때의 충격은 엄청났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동네에 새로 생긴 중국집이란 곳에 갔다. 미아리 촌구석에도 드디어 짜장면 집이 생겼다. 아마 초등학교 2학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홉 살 때 나는 처음으로 그 중국식 국수인 짜장면이란 음식을 맛보았던 거다. 지금 내 나이 쉰여덟이니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의 일이다.
어머니는 그전에도 짜장면을 맛보셨던 것 같다. 처음 간 중국집에서 나는 뭐가 맛있는지 어떤 걸 시켜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어머니는 자리에 앉자마자 주저 없이 짜장면 두 그릇을 주문하셨다. 굵은 면발에 검은색 소스는 아홉 살 어린 내 눈엔 너무 엽기적으로 보였을 거다.
어머니가 비벼주던 비빔국수나 멸치국수 혹은 칼국수 정도나 먹어본 나에게는 짜장면이 도저히 음식으로 보이질 않았다. 어머니가 두 손으로 젓가락을 한 짝씩 잡고 쓱쓱 비벼서 내 앞에 짜장면을 밀어 주셨는데도 나는 한 젓가락도 입에 넣지 못했다. 냄새는 그럴 듯한 데도 말이다.
어머님이 한 젓가락 입에 넣으시는 걸 보고서야 나는 조심스럽게 마치 쓴 약이라도 먹듯이 짜장면을 입에 넣었다. 그러고 나서는 감탄을 하고 말았다.
“엄마, 너무 맛있어!”
그 맛에 감격한 나는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짜장면 한 그릇이 초등학교 2학년짜리에겐 그리 적은 양이 아님에도 나는 한 그릇을 뚝딱 먹어 치웠다. 그 후로 상을 타오거나 심부름을 하거나 아버지 어머니의 맘에 드는 행동을 한 후엔 짜장면 한 그릇이 내겐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처음 봤을 때 느꼈던 맛없어 보이던 굵은 면발 그리고 거무튀튀한 짜장 소스가 그 후론 최고의 음식이 되고 만 거다.
나는 요즘도 짜장면을 이삼 일에 한 그릇씩 먹는다. 지인들이 ‘질리지 않냐.’고 물으면 ‘세상에나! 짜장면이 어떻게 질릴 수가 있냐?’고 되묻곤 한다. 아무튼 나는 오늘 점심도 짜장면을 주문했다. 몸에 좋건 말건 그건 상관없이 말이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랐다. 맞벌이하시던 부모님은 나를 시골로 보낼 수밖에 없으셨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이 되어서야 집안이 경제적으로 안정되었고 입학식 전날 나는 서울에 올라와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니 뒤늦게 서울에 올라온 나는 짜장면을 먹어봤을 리가 없었다. 어린 시절을 부모와 떨어져 생활하게 할 수밖에 없게 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어머니는 세 살, 네 살 터울의 둘째나 셋째 동생들에 비해 가끔씩 나에게 음식 호강을 시켜주었다. 어머니는 동생들 몰래 나만 전기구이 치킨집에 데려가 통닭을 사 먹이곤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시큼한 무 조각만 몇 개 씹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난 배가 안 고프니 너나 많이 먹으렴.”
그땐 그리도 맛있던 전기구이 통닭이 요즘은 왜 이리 별로인지….
덧) 미아리 이야기의 첫 에피소드 "나는 짜장면광이다"는 약16,7년 전 서울시에서 공모한 (공모전의 이름은 불분명한데) <서울시민, 서울 스토리>라는 수기 공모전에서 1등상을 받았습니다. 부상으로 당시에는 고가인 200여만 원 상당의 노트북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당시에 돈이 궁했는데 노느북을 받느라 세금으로 몇 십만 원을 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음 편엔 미아리 이야기를 쓰게된 동기와 그 배경을 정리한 에필로그를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