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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말함 Feb 24. 2022

경계를 넘어선 무거운 마음으로

 정확한 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초등학교 6학년 때이다. 학교폭력이 사회적 의제로 제시되기 이전이기에 별다른 문제의식이나 처벌 없이 왕따가 참 빈번하게도 일어난 것 같다. 당시 우리 반에 전학을 온 여자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눈이 크고 조금 사나운 눈매를 가졌던 것도 같은데, 알 수 없는 이유로 남자 아이들로부터 집요한 왕따를 당했다. 선생님이 계시지 않는 교실에서 갖은 욕설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폭력까지 가해질 정도였으니 그 아이에게 별다른 부정적인 감정이 없는 아이들도 자신에게 가해질 지도 모르는 위협에 거리를 두고자 방관자로 지낼 수 밖에 없었다. 나 역시 그 아이에게 먼저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눈 적도 있었지만, 점차 왕따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비겁하게도 그 아이를 피했다. 초등학생인 나의 눈으로 관찰한 바로는, 그 아이는 결코 지는 법이 없었다. 그러니까 어떤 욕을 먹어도, 혹은 신발 가방으로 몸을 맞아도 울지 않고 오히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대방을 확 째려보면서 욕으로 맞받아쳤다. 아마도 이러한 자극과 반응을 연달아 겪으면서, 그 아이를 건드리던 남자 아이들 무리가 점점 악에 받쳐 점차 괴롭힘의 수위를 인권유린의 수준까지 높여나갔던 것 같다.  

  결코 지지 않았으면 했던 그 아이는 어느 날 서럽게 울었다. 분필 가루가 허옇게 묻어 있는 칠판 지우개로 머리를 몇 차례 가격 당하여 머리가 하얗게 센 채로, 부릅뜨고 있던 큰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버렸다. 그때 나는 보아선 안될 것을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할머니다 하면서 비웃는 아이들 속에서 그 아이는 의자에 오도카니 앉아있는 채로 그야말로 한참을 울었다. 이 일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누군가가 선생님께 이 일을 알렸고 그 이후로 남자 아이들의 괴롭힘은 거의 없어졌던 것 같다. 분명히 기억에 남은 것은 그 아이가 우는 모습을 외면하고 싶었던, 무기력한 내 마음이다.  

  내가 그 아이라면 몇 번이나 울었을 거라고 생각했으면서 난 왜 그 아이라면 울지 않을 거라고 믿었을까? 끝내 울고야 마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왜 나는 보아선 안 될 것을 본 것처럼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까? 사실 그것은 내가 지독한 방관자로서 그 아이의 아픔에 응답하지 않음을 자각한 일말의 부끄러움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개입될 수 없는- 능력 부정이 아닌 의지 부정의 용법에 해당한다. 그야말로 내가 개입되기 싫어서 개입하지 않았던- 타자의 슬픔에 대해 나는 가장 비겁한 방식으로 죄책감을 느꼈던 것이다. 나를 비롯한 누군가가 선생님께 왕따 사실을 조금이라도 일찍 알리거나 혹은 그 아이를 아무렇지 않게 친구처럼 대해주거나 혹은 그 아이를 괴롭히는 순간에 어떻게 해서든 악의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조금만 말려봤다면 그래서 그 아이를 향한 집요한 괴롭힘을 끊어낼 수 있었다면 그 아이는 울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 부끄럽게도, 그 아이에게 응답할 수 없는 나로서는 그 아이가 힘써 강해지기를, 그래서 어떤 괴롭힘에도 울지 않기를 마음 속으로 응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리다는 핑계로 그 때의 마음을 용인할 수 없기에 기억을 더듬는 지금의 나는 여전히 부끄러운 채로 그때의 마음으로부터 얼마나 나아갔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여전히 나에게는 눈감고야 마는, 그야말로 알기를 거부하는 현실이 있다. 눈을 뜨고 현실을 직시하면 깨닫게 되는 수많은 아픔과 부조리함이 있기에,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절박함이 생기기에 때로는 간편히 스위치를 꺼버리듯 연결을 거절해버리고야 만다. 그러나 타자화를 통해, 남이라는 경계 긋기를 통해 획득되는 마음의 평화란 얼마나 안일하고 옹졸한 것일까. 황현산 선생님은  <밤이 선생이다>에서 '이 유례 없는 경쟁 사회에서 우리는 조금씩 지쳐 있다. 그렇더라도 마음이 무거워져야 할 때 그 무거운 마음을 나누어 짊어지는 것도 우리의 의무'라고 쓰셨다. 나는 내가 애써 무거운 마음을 짊어지는 어른이고 싶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세상을 향해서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마음을 써버림으로써 조금은 이 세상이 덜 슬퍼지는 데에 힘을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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