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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말함 Feb 25. 2022

내가 아는 덧셈과 뺄셈

   여기 한 소설이 있다. 서유미의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에서, 주인공 송인영은 새언니로부터 상의할 일이 있으니 점심 시간에 회사 근처로 가도 되겠냐는 연락을 받는다. 불안한 마음과 함께, 오빠 송영로가 새언니를 소개하고 결혼한 과정을 떠올린다. 새언니는 송인영에게 회사 근처의 카페 B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연락을 남기고, 송인영은 지난 주 그곳에서 애인으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은 장면을 기억해낸다. 피가 말라붙은 입술을 하고 파리한 채 머그잔을 쥐고 있는 새언니의 모습을 목격한 송인영은 송영로와 아버지 송인문이 함께 살았던 시절을 복기해낸다. 고등학생이 되어 몸집이 커지고 힘이 세지면서, 가부장적인 송인문에 점차로 맞서던 송영로는 군 제대 후 송인문에게 패륜적이고 지속적인 폭력을 가하여 그를 집밖으로 내쫓고 어머니와의 이혼을 감행시킨다. 아들 교육을 못 시킨 죄목으로 아내에게 대신 회초리를 놓던 송인문이 사라진 가정에는 잠시 평화가 찾아오는 듯 하였으나 송영로는 제2의 송인문이 되어 집안이 자신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마다 무자비한 폭력과 욕설을 남용하며 군림한다. 송영로가 결혼한다고 밝혔을 때 송인영과 그의 어머니는 송영로에게 단단히 속아 결혼하기로 약속한 여자를 가엽게 여겼으나 이내 죄책감을 지우고 침묵한다. 오래지 않아 새언니는 송영로의 지속적인 폭력에 지친 나머지 송인영을 찾아와 오빠에 대해 상의하고자 한다. 새언니가 아니었으면 누릴 수 없었던 일상에 대해 감사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이를 부정하지 못하고 새언니가 사라지는 악몽마저 꾸었던 송인영은 자신의 비겁함과 졸렬함에 치를 떨며 어떻게든 송인문과 송영로로부터 연결된 모든 것을 끊어내고 지우고자 애쓴다. 그러나 자신을 떠나버린 애인과, 자신이 애인에게 뺨을 때리고 길길이 날뛰던 모든 장면들을 떠올린 송인영은 새언니에게 이제 그만하면 됐다며 떠나버리라고 말한다.


  송인문의 울타리 안에서 자란 송영로와 송인영은 송인문을 증오하면서도 그 모습을 그대로 답습한다. 송인영이 말한 바, '인간은 왜 자신이 증오하는 대상과 방식을 닮아 가고 멈출 수 없는 걸까 회의가 들었다.'와 같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러한 경험은 대체로 보편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는, 가족들이 때때로 눈치를 보아야만 했던 아빠의 어떤 특성들-타고난 기질이 예민하고 다혈질적인 성격이 있다.-에 대해 어린 마음에 분노했고 맞서지 못해 좌절했으며 거부하고자 발버둥을 쳤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아빠 곁을 떠나지 못하고 그 집에서 함께 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닮아 버린, 이미도 내재화버린 그런 특성들이 언행으로 표출되는 걸 목격할 때마다 마치 제3자가 나를 바라보듯 생경함에 치를 떨며 나를 관찰하게 된다. 내가 왜 이럴까, 내가 왜 아빠와 같이 행동하고야 말까. 이러한 좌절에 나 자신을 미워하고 나 자신의 어떤 면을 나와 분리하고자 했던 건전하지 못한 해결 방식들이 내 삶 켜켜이에 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에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애써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애인이 떠난 것을 계기로 브레이크를 밟고 다시 목적지를 입력한 송인영과 같이, 아마도 송영로의 곁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나아갈지도 모르는 새언니와 같이. 내가 그토록 부정했던 아빠의 면모들이 사실은 아빠의 아빠로부터 유래되었으며, 아빠가 아빠의 아빠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부던히 노력하고 또 자신을 바꿔왔는지를 이해하게 되면서 더욱 믿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알고 있는 정말 좋은 문장이 있다. 나에게는 가족에 관한 가장 무해하고 객관적인 문장으로 보여진다. "자아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나는 할아버지부터 기억하기 시작한다. 그는 나를 키운 사람 중 가장 오래된 어른이니까. 자아에도 덧셈법과 뺄셈법이 적용된다면 그는 어릴 적 내게 아주 많은 것을 더하거나 곱했다. 요즘 나는 그가 해 놓은 것 중 많은 것을 빼거나 나눈다. 빼지 않고 두는 것들도 있다."라는 이슬아의 문장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특성 속에서 덧셈과 뺄셈을 하며 자신을 만들어나가는 존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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