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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말함 Feb 25. 2022

몸의 기억

  인생의 시기별로 골똘히 몰두하는 혹은 고민하는 어떠한 화두가 각자에게는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나의 20대의 화두를 하나 콕 집어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 성이었다. 본래 성이라는 것은 대단히 복잡한 것이어서 육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정신 작용까지도 관련을 맺는다고 생각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 성은 사람이나 사물 따위의 본성이나 본바탕을 의미하는 동시에 남성과 여성의 구별-수컷과 암컷의 구별도 포함한다-, 나아가 남녀의 육체적 관계도 의미하고 있다. 한 마디로 한 인간의 내면 뿐만 아니라 육체의 차이와 차이에서 비롯된 어떤 행위-남자의 것이 발기하고 여자의 것에 삽입이 되는-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성이 육체와 정신을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볼 때, 몸(육체)의 기억(정신)이라는 제목이 상당히 그럴싸 하지 않은가?

  

  한때 나는 그 몸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얘기냐면, 살이 쪄서 거동이 불편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몸이 주는 정신적인 무게감이 나에게는 너무 컸다는 거다. 소위 혼전순결이라는 개념에 대해 별다른 까닭 없이 반발심이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첫째 번을 아무하고나 하자니 첫째라는 것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는 얘기다. 혼전순결은 깨고 싶고 마땅한 상대도 없는 그런 상황을 생각해보면 된다. 처음만 아니면 이 사람과도 할 수 있고, 이런 상황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처음이기 때문에 이 사람과는 하고 싶지 않고, 이런 상황에서는 하고 싶지가 않은 거다. '처음이 대체 무엇이길래? 그치만 이런 처음의 기억은 남기고 싶지 않아!'라는 갈등이, 술에 취해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하면서 황급히 해치워버렸던-표현 그대로 황급히 해치웠다, 어쩌면 황급히는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 술에 취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너무나 무거웠기에 가볍게 탕진해버렸다는 나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일 뿐이다.- 첫 경험까지 지속되었다. 그러고 보면, 몸에 어떤 기억이 남는다는 것을 어린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은 특별한 것이라는 인식을 기저에 갖고 있었을 것이다.  


  임신을 하고 나면 여성의 몸에는 많은 변화가 생긴다고 하는데, 급격히 부풀어 오른 배에 생기는 튼살 등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시각적으로 눈에 보이는 어떠한 특징도 몸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조금 더 추상적이다. 몸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지니고 있는 기억이 바로 내가 말하고 싶은 거다.  

 어떠한 사건들은 일기예보와 같이 그것을 미리 알고 대비할 겨를이 없이 우연히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다. 내가 겪은 성폭력 경험도 그러했다. 특히 성폭력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보다 지인에게 당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는 점을 미루어봤을 때, 더더욱 예측이 불가능하다. 당연히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으로부터 당하는 것이기에 대비가 불가능할 뿐더러 상처와 배신감-때로는 느낄 필요가 없는 죄책감까지-은 더욱 깊다.  

 

  그때 이후로 나는 또다시 몸의 무게감을 견딜 수 없어 했다. 이 몸뚱아리의 생김새와 기능으로 인해 그런 경험을 유발한 것이라면 더더욱 몸이 견디기 싫은 거다. 이 몸이 없다면, 온전히 정신으로만 이 세상을 살아간다면 그런 엿 같은 경험을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라는 생각에 다다르자 내 몸을 그냥 싫어하게 됐다. 몸을 걸치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내 상처를 유발한 원인-사실 정확히 말하면 상처는 가해자가 준 것이다. 내 몸도 희생자인데 그 당시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인 몸이, 이렇게 아픈 와중에도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게 만드는 몸의 허기 또한 역겹다고 생각했다. 아픈 마음으로 굉장히 오랫동안 성이라는 것에 대해, 몸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떠한 기억들을 떠올린 이후에야 나는 내 몸을 다시 끌어안을 수 있었다.  


   다행히 나는 고립된 피해자가 아니었고, 나의 상처를 이야기할 수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다. 내 주변에 있는 그들은 참으로 따뜻한 배려를 해주었는데, 나의 이야기를 힘껏 경청하고 위로하되 나를 연민하지 않았기에 나는 수치심으로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내 손을 잡아주고 내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기에 나는 나로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참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을 자주 생각했다. 내 맘이 엉망일 때마다 그들을 생각했다. 내가 넘어져 아플까봐 내 손을 재빨리 잡아준 친구, 내가 몸을 다쳤을 때 속상한 나머지 화를 내던 아빠, 내가 안아줄 때 따뜻하다며 위안을 얻은 친구, 거짓말을 했다며 매를 놓고는 시퍼렇게 든 멍을 보고 울면서 약을 발라준 엄마, 내 몸이 힘들까봐 나보다 더 왜소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내 가방을 들어주던 남자친구. 생각해보면 내 몸은 여러 사람의 기억이 깃들어 있는 소중한 무엇이었던 거다. 누군가에겐 너무나 소중하고 따뜻해서 지켜주고 싶은 그런 무엇. 그런 무엇을, 나는 무슨 쓰레기처럼 대했던 거다.  

 

  나는 내 몸이 소중하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들이 아끼는 내 몸을, 나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내 몸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고, 내 몸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몸도 소중하게 대하고 싶다. 몸을 소중히 여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다음에 소개하도록 하겠다.  


   몸은 기억한다. 몸이 곧 기억이다. 그것이 나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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