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3월이 오면 우리 집은 달콤한 함소화 향기가 가득하다. 인공적으로 만든 향수에서는 맡을 수 없는 참으로 달달한 향이 그윽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그러나 함소화가 질 무렵에는 강한 비누향과 같은 쟈스민이 바통을 이어 핀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강해서 한때 없애버릴까도 했지만 잠시 지나가는 꽃이라 그냥 두게 되었다.
향에 좀 민감한 편이라 강한 냄새는 못 견뎌한다. 꽃들의 향기도 자기만 잘났다고 티 내는 향보다는 은은하게 주위와 어우러지는 그런 꽃향기를 좋아한다. 산세베리아 꽃향기도 나름 새롭고 신선하다. 낮에는 잘 몰랐다가 밤이 되면 꽃을 활짝 피우면서 특유의 쌉싸름한 향을 맘껏 뿜어내곤 한다.
봄의 전령사로는 군자란도 있다. 해마다 탐스럽게 꽃을 피워주는 군자란은 참 기특하다. 잎이 무척 큰 난 종류인데 봄이 되면 탐스런 주황빛 큰 꽃을 피워준다. 이것도 새끼 화분을 두 개 만들었는데 잘 자라고 있어서 고마운 식물이다. 그밖에 물만 주면 쑥쑥 잘 크는 벤자민, 조금 예민한 칼라 벤자민, 뿌리를 잘 내리는 인삼 벤자민, 이름이 좋은 행운목, 하얀 꽃이 피는 스파트필름, 해만 들면 사철 내내 앙증맞은 꽃을 피우는 꽃기린, 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관음죽, 금천죽, 줄무늬가 멋스러운 산세베리아, 향이 좋은 라벤더, 장미허브, 바늘같이 뾰족한 잎이 매력적인 마지나타, 끈적끈적한 진액이 나오는 홍콩야자, 고무나무, 새빨간 아주 작은 열매를 맺는 천냥금, 덩굴식물 아이비, 꺾꽂이로 잘 자라는 참 폴리, 홍페페로미아, 콤펙타, 호야, 작은 화분에 사다 심은 다육식물 등등 그러고 보니 이름도 생소한 참 다양한 식물이 있다. 그동안 이름도 모르고 키우던 화분이었지만 하나 둘 기억해가며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물, 빛, 바람만 적절히 잘 관리해 주면 나름의 생육 방식대로 혼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이 참 신기하고 때론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식물을 키우면서 크고 작은 인생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예쁘다고 너무 자주 지나치게 물을 주다가 죽어버리거나 반대로 바쁜 일상에 깜박하고 물 주기를 잊어버려 말라죽이거나 하는 일이 잦았다. 그나마 좀 큰 나무는 잘 버티기도 하지만 어린 식물들은 사소한 실수에도 스러져 버렸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기 어려울 때는 부모가 적절한 말과 행동으로 가르치고 사랑하면서 키워야 건강하게 자라는 거 같다. 그러나 지나친 간섭과 통제는 독이 되고 무관심은 더더욱 해가 되어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장미허브는 아무 데나 뚝 꺾어서 심어 놓으면 뿌리를 잘 내린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장미허브가 무척 많다.
반면에 칼라 벤자민은 꺾꽂이가 쉽지 않아 번번이 실패하곤 했다. 처음엔 잘 자라는 장미허브가 예뻤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장미허브가 지나치게 많아지다 보니 싫증이 나게 되었다. 오히려 고고하게 혼자 자라고 있는 칼라 벤자민이 더 귀하게 느껴지고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때로는 시들한 나무를 분갈이를 하고 잊고 있다가 어느 날 보면 스스로 알아서 잘 커있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친정집에 있는 동백꽃이 탐스러워서 화분을 하나 사서 키웠다. 그런데 도통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이었다. 화분이 안 맞나 이곳저곳으로 옮겨심기를 3년 그래도 별다른 반응이 없어서 그냥 포기하고 있었다. 잎도 시들시들해서 곧 죽나 보다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꽃망울이 맺혔다. 그러고도 한참이나 애를 태우다 드디어 올봄에 동백꽃을 활짝 피웠다.
혼자만의 시간을 잘 이겨내고 환경에 적응하여 본래 제 모습을 찾아가는 식물을 보면서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사사건건 부딪히고 간섭하기보다는 아이를 믿고 마음으로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사춘기 자녀들에게는 어느 정도 큰 테두리 안에서 믿고 묵묵히 지켜봐야 한다.
베란다는 또 하나의 교실이다. 저마다의 장기를 뽐내며 서로 어우러져 살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식물을 보면서 인생을 바라보는 혜안을 얻는다. 그곳에는 식물의 생로병사가 있고 적자생존이 있고, 새싹의 몸부림과 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