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제대로 활용하기
도서관은 나의 놀이터이다. 큰돈 들이지 않아도 하루를 잘 보낼 수 있는 곳이다. 도서관에서 책만 빌려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다양한 강좌와 문화활동도 있다. 배우기 좋아하는 나는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인문학 강의를 주로 들었다.
‘내 생애 첫 수필’ 강좌는 특히 기억에 남는다. 수필은 자신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문학이다. 매주 글 한 편씩을 써내고 그것을 읽어야 한다. 솔직해지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 나를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게 처음엔 어색했다. 그런데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 오히려 편하기도 했다.
글쓰기 선생님은 적극적으로 글을 써보라고 권유를 해주셨다. 대회에도 나가보라고도 하셨다. <좋은 생각>이란 잡지에 글을 보내 소정의 원고료도 받아보았다.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이 당첨되어 상품도 타보았다. 그런데 글감이 부족한 탓에 계속할 자신이 없었다. ‘내 그릇은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함께 수강했던 동기 중에는 꾸준히 글을 쓰고 적극적으로 대회에도 참가하여 수상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다. 문학단체에도 글을 발표해서 등단을 하기도 했다. 그런 것은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작가’라는 말은 너무도 부담스러웠다.
수필 강좌에서 좋은 친구를 만났다. 힘든 환경을 극복하고 열심히 사는 멋진 사람이었다. 그 덕분에 바오밥 독서회도 알게 되었다. 낯선 모임을 꺼리는 성격이라 혼자서는 멋쩍게 찾아가기 어려웠을 거다. 지금은 독서회 회원이 줄어들었지만 소수정예라 더 안정감이 있다.
사람을 알아가게 되는 데는 시간이 꽤 필요하다. 자신의 시간을 할애해서 남의 얘기를 듣고 자연스레 자기 얘기도 하게 된다. 책이라는 매개체가 있어서 이 과정은 아주 자연스럽다. 남을 배려하지 못해 자기 얘기만 하거나 책과 관계없는 일상적인 얘기만 하거나 하면 도태된다. 죽마고우가 아니라면 지켜야 할 안전거리가 있다. 그게 잘 유지되면 모임은 계속 이어진다.
한 번은 독서회에 신입회원이 들어왔다. 전형적인 아줌마 스타일이었다. 지나치게 쓸데없는 말이 많았다. 안전거리를 지켜야 한다는 불문율을 깨뜨렸다. 그 한 사람 때문에 독서회에 가기가 싫어졌다. 난 자연스럽게 3D 프린터 공부를 핑계로 잠시 독서회에서 나왔다. 나도 모르게 그를 왕따 시키는 상황이 싫었다. 몇 개월 후 다시 독서회에 나갔을 땐 그 사람이 없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싫은 사람과 만나는 것만큼 곤욕스러운 상황이 있을까 나이 들어서까지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좋은 사람만 만나도 짧은 인생이다. 그분을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우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부류였다.
도서관에 자주 가다 보니 다른 강좌 홍보도 눈에 잘 들어왔다. 나중에 손주가 생기면 이야기를 맛깔나게 읽어주고 싶은 마음이 은연중에 있었다. 마침 동화구연 강의를 들으면 자격증도 딸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망설이지 않고 수강했다. 이를 인연으로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봉사활동에도 참가했다.
솔직히 난 책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저 내 무식함을 조금이라도 들키지 않기 위해 책을 읽으려 노력한다. 집에는 책이 엄청 많다. 책벌레 옆지기가 모아둔 도서량이 상당하다. 그런데 그 책에는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다. 대부분 어려운 사회과학서적이기 때문이다. 또 그 책들은 언제든 읽을 수 있기에 읽지 않게 된다. 그래서 도서관 도서대출을 주로 이용한다. 2주간이라는 한정된 시간이 나를 완독 하게 이끈다. 요사이는 ‘상호대차’라는 좋은 제도가 생겼다. 자주 애용하는 도서관에 원하는 책이 없으면 좀 멀리 떨어진 타 도서관에 대출을 신청한다. 그러면 집 근처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받아볼 수 있다. 상호대차의 단점이라고 하면 2주간 빌려본 후 한주 더 읽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는 것이다.
안양에는 도서관이 여러 군데 있다.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강좌를 듣다 보니 새로운 동네에도 가보게 된다. 도서관에서 만나는 분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저마다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도서관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붉은 실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