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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메루 Mar 10. 2023

와인

신의 물방울


난 주량이 약한 편이다.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고 두 잔이 넘어서면 홍익인간이 된다. 간의 해독 작용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하는데 술을 가끔 마시면 더 심해진다. 지난밤에 와인을 한 잔 마셨더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도 못했다. 남편은 와인 마니아이다. 와인의 다양한 맛에 반해서 와인을 공부하고 좋은 와인을 수집했다. 와인 냉장고에 잔뜩 쟁여두었다. 장터에 나온 가성비 좋은 와인은 박스째로 사들인다. 점수가 높은 와인을 사기 위해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와인의 이름은 읽기 어렵다. 뭐가 그리 복잡한지 난 들어도 까먹기 일쑤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까다로운 과정이 좋단다. 무언가 공부해야 알 수 있는 세계가 좋다한다. 와인에 심취해 있을 때 먼저 책을 산다. 그리고 유투브와 오프라인 강의도 들었다.


<신의 물방울>이라는 일본 만화가 있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칸자키 유타카는 열두 병의 위대한 와인과 '신의 물방울'이라고 불리는 한 병의 와인을 맞추는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유산을 상속하겠다는 유언장을 남기고 사망한다. 그의 아들 칸자키 시즈쿠는 와인이라고는 한 번도 마셔본 적 없는 평범한 맥주회사의 영업사원이다. 유산을 두고 천재적인 와인 평론가 토미네 잇세와 운명적인 대결을 펼친다. 대결을 하면서 아들은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와인의 매력에 점차 빠져든다. 스토리를 이어가며 와인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곁들여서 좋다.


솔직히 나도 와인을 좀 쉽게 접하려고 만화책을 완독했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와인의 가격이 왜 그렇게 비싸야 하는지, 왜 꼭 마시고 싶은지 이해하기 어렵다. 술은 달달하고 잘 넘어가면 좋은 것이다.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마음도 붕 떠서 스트레스가 해소되면 그걸로 족하다. 그래서 난 아이스 와인을 좋아한다. 그 강렬한 단맛이 입에 붙는다.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을 찾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건 이해가 간다. ‘마리아주’ 라고 하는데 프랑스 어로 ‘결혼’을 의미한다. 요리와 와인의 조화를 뜻하는 말로 서로의 맛을 이끌어내 주는 관계가 바람직하다. 보통 화이트 와인은 생선과, 레드와인은 고기와 어울린다. 마셔보면 알게 될 때도 있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100점 만점으로 와인을 평가하는데 와인 애호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점수가 높으면 가격도 비싸다. 프랑스는 자연적으로 포도를 재배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 보르도와 부르고뉴가 2대 와인 산지이다. 보드도 와인은 감칠맛 있는 농후한 맛, 어깨가 벌어진 병이다. 부르고뉴 와인은 상큼한 신맛이 있고, 은은하게 달다. 아래쪽이 두툼한 병에 담겨있다. 양조장이름이 샤토라고 적혀있으면 보르도이고, 도멘이라 적혀 있으면 부르고뉴이다. 와인은 생산연도를 뜻하는 빈티지에 따라서 맛과 가격이 달라진다. 그래서 같은 산지라도 포도가 재배된 그 해의 작황을 말해주는 빈티지가 중요하다. 빈티지를 알면 와인을 고르기 쉽다. 와인은 바로 따서 먹는 것,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마셔야 하는 것이 있다. 와인은 숙성될 때까지 10년 20년 재워두는 것이 이상적이다.


2~3년 된 어린 와인을 따서 바로 마시면 시고 떫어서 맛이 없다. 이때 빠른 시간 안에 와인 맛을 열어주는 도구가 있는데 그게 디켄터이다. 공기에 닿지 않게 하면서 정성스레 붓는다. 그러면 견고한 와인도 차츰 풀어져 단맛이 살며시 얼굴을 내밀고, 향긋한 향이 흘러나온다.


술을 마시면 맥박이 빨리 뛴다. 숨이 차기도 하다. 심장이 좋지 않은 남편은 와인에 빠져서 무리했다가 한동안 힘들어서 술을 끊었다. 그러다가 요즘 한 잔씩 낮에 마신다. 몸이 받아들이는 선에서 조금씩 마시기로 약속했다. 혈액 순환에 도움을 준다하니 적은 양은 괜찮겠지 싶다. 그래도 과음하면 안 되는데... 좋아하는 와인을 마음껏 마셔도 몸이 감당할 수 있게 될 수는 없을까? 와인은 과음하는 게 아니라 반주로 한 잔씩 가볍게 마시는 술이다. 그 원래의 기능을 염두에 두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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