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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반맨 Dec 21. 2022

부부

49금 인문학 사전 08.

어느 노부부가 이스라엘로 성지 순례를 갔는데, 아내가 여행 중에 갑작스레 죽게 되었다.장례 치르는 문제로 남편이 그곳 장의사와 상담을 하는데, 현지에서 유해를 처리하면 1,000불, 한국으로 송환할 경우 10,000불의 비용이 발생하는데도 남편은 유해를 송환하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이유인즉슨 예전에 아주 유명하신 분이 그곳에서 3일 만에 부활한 적이 있어 서란다. 

금슬이 좋은 부부나 남녀관계를 일컬어 연리지(連理枝) 또는 비익조(比翼鳥)라고 한다.
또 이 단어를 붙여서 비익연리(比翼連理) 나 연리비익(連理比翼) 이렇게도 말하는데, 연리지는 뿌리가 하나로 연결된 두 그루의 나무이고, 비익조는 눈과 날개가 하나뿐이라서 둘이 합체해야만 날 수 있는 새를 말한다. 
부부가 서로 의지하며 한 몸처럼 인생 역정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으리라.
그런데 부부가 오래 해로하면 그 말투나 모습도 서로 닮아간다고 한다.
일명 카멜레온 효과라고 하는데, 부부간에 서로 공감하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표정 등을 흉내 내며 닮아가는 것이다.
집단 내의 구성원들이 서로 모방하는 과정에서 상호작용이 촉진된다는 '유사성의 원리(principle of similarity)'로 해석하면, 부부간에 서로 따라 해 가면서 긴밀한 상호작용을 하면 단순한 1+1이 아닌 '시너지'가 만들어져서 더욱 행복한 삶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동물 중에 가장 '따라 하기'를 잘하는 동물이다.
오죽하면 인간의 따라 하기를 '무작정 따라 하기 over imitation'라고 하겠는가?
인간은 어떤 행위의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 또한 따라 하는 유일한 동물이고 이런 능력은 포유류 중에서 따라 하기의 제왕인 침팬지조차 언감생심 흉내도 못내는 능력이다.
하긴 일생을 함께하는 부부간에 서로 따라 하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
자신과 비슷한 성격이나 가치관의 사람과 결혼하는 동질혼(homogamy)은 말하자면 따라 하기를 좀 더 쉽게 하기 위한 방법일 테다.
부부간에 비슷한 행동이나 습성을 따라 하는 게, 그나마 영 다른 걸 따라 하는 것보다는 쉽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요즘 보면 오줌발이 약해진 할배들만 아니라 새파란 남편들도 좌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보던데, 이것도 아내를 따라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가?(모방은 최고의 아첨이라고 했지..)

문제는 자발적인 따라 하기가 아닌 강제된 따라 하기(게다가 일방적인..)다.

남녀 간에는 최소한 호모 종이 발생한 600만 년 전에 시작된, 진화적으로 다른 행동 방식이 내재되어 있다. 오죽하면 '화성에서 온 남자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있겠는가?
그래도 우린 문명인이니까 진화적인 차이는 극복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결혼 전에 최소한 30년 가까이 다른 문화적 환경하에서 양육된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생각이 나 습성이 크게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음에도 무작정 따라 하기를 강요하는 것은 '잔소리'를 넘어 '사육'의 차원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니체가 한 말로 기억하는데, '인류는 늑대를 개로 만들고인간 자체를 인간에게 최선의 가축으로 만들어왔다'라고 한다.
따라 하기를 강요당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딱 이런 상황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얘기가 좀 거창하게 빗나가지만 '휴머니즘'의 역사를 이렇게 이해하기도 한다.
즉 모든 휴머니즘 문화는 동물로서의 인간을 길들이기 위한 '사육'이었다는 것이고, 이러한 일은 일찍이 동물로서의 적응에 실패한 인간이 집을 만들어 가축과 함께 살면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즉, 동물들을 길들이는 동물의 '가축화'와 동물로서의 인간들을 길들이는 인간의 '인간화'가 함께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요즘 '황혼이혼건수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사실 결혼 건수가 줄어드니까 이혼도 건수 자체는 줄어드는 추세인데 유독 60 넘어 이혼하는 건이 늘었다는 얘기다.
부부가 30년 넘게 같이 산 소위 ‘황혼이혼’만 나 홀로 증가했다.
2021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이혼은 10만 2000건으로 전년보다 4.5% 감소했지만, 혼인 30년 이상 이혼(1만 6600건)은 10년 전에 비해 2.2배 수준으로 불어났다고 한다.
내가 알기로 이혼율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국가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피크를 이뤘다.
직장에서 떨려난 무능력한 가장들이 가정에서도 버림받은 게다.
혹자는 그때 그런 이유로 이혼당한 게 잘 된 거라고까지 말한다.
일시적인 경제적 어려움조차 견디지 못해 갈라서길 요구하는 정도라면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그렇게 할 것이니 일찌감치 잘 된 거라고...
아무튼 그런 어려운 시기를 넘기고 이제 행복하게 살아야 할 노부부들이 또다시 파경의 위기를 맞는다는 게 참 씁쓸할 뿐이다.
항상 말하지만, 극일을 한다면서 왜 이런 안 좋은 현상은 '일본 따라 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요즘 주위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너나 할 거 없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들을 옮겨본다.
퇴직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자신감도 바닥이고, 쓸데없는 오해겠지만 가족에게서조차 무시당한다는 서러움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진단다.
예전에는 그저 쓸데없는 잔소리로 치부하며 한 귀로 흘리던 아내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뼈에 사무치게 새겨진다.
삼식이는 커녕 이식하는 것도 괜스레 눈치 보이고, 아내와는 가능한 호저의 거리를 유지하려고(정확히는 슬슬 피해 다니는 게다.ㅎㅎ) 한다.
한때, 굶어죽을지언정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기를 표방했던 우리였지만, 이제는 그저 늙은 반려견 신세로 전락했다.
(애완견은 결혼 후 3년 이내까지.. 그 후론 반려견).
그리고 이제는 유기견이 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따라 하기를 열심히 하면 결혼식 주례사로 들은 백년해로를 하라는 덕담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 가늠해 보지만, 어쩐지 만시지탄 같다. 

'접시꽃 당신'이란, 사별한 아내에 대한 애절한 부부애를 담은 시로 장관까지 해 드신 분이 있다.
그분이 그 후에 또 부부를 소재로 쓴 시(도종환, '가구') 가 있어 소개한다.
(아마도 재혼한 아내와의 얘기를 담은 듯.. 두 번이나 결혼해도 이런가 보다.)

 아내와 나는 가구처럼 자기 자리에 
 놓여있다 장롱이 그렇듯이
 오래 묵은 습관들을 담은 채
 각자 어두워질 때까지 앉아 일을 하곤 한다
 어쩌다 내가 아내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내의 몸에서는 삐이걱 하는 소리가 난다
 나는 아내의 몸속에서 무언가를 찾다가
 무엇을 찾으러 왔는지 잊어버리고
 돌아나온다 그러면 아내는 다시 
 아래위가 꼭 맞는 서랍이 되어 닫힌다
 아내가 내 몸의 여닫이 문을 
 먼저 열어보는 일은 없다
 나는 늘 머쓱해진 채 아내를 건너다보다
 돌아앉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본래 가구들끼리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저 아내는 방에 놓여 있고
 나는 내 자리에서 내 그림자와 함께
 육중하게 어두워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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