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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반맨 Dec 13. 2022

노마드

49금 인문학 사전 07.

© nick_vlachos, 출처 Unsplash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한 말씀.
필자 개인적으론 '노마드'란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말(馬)'이란 단어를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양해 구하고자 한다.
왜 그런지는 곧 설명이 된다.
그래서 썰렁한 아재 개그와 '말'에 대한 시답잖은 얘기를 소개한 후 본론에 들어간다 
말(馬)이 싫어하는 사람은? 1. 말 돌리는 사람 2. 말꼬리 잡는 사람 3. 말 더듬는 사람(최고로 싫어한단다).  
바야흐로 OTT의 시대를 맞아 굳이 영화관을 찾지 않더라도 거실이나 책상 앞 또는 전철 안 어디서든 원하는 영상물을 시도 때도 없이 감상할 수 있지만, 불과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동네 어귀 비디오테이프 전문 대여점을 찾아야만 했었다.
그때 당시 가장 핫한 대여물이 에로배우의 대모 안소영이 출연하는 '애마부인' 시리즈였다.
(구체적인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고, 내가 빌리러 가면 항상 대여 중이었던 걸로 미루어 짐작. 그나저나 환갑이 훌쩍 넘었을 안소영 씨는 말과 함께 잘 놀고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주인공이 남자를 말 타듯이 하며 노는걸(?) 좋아해서 그런 제목을 달았을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영화 타이틀은 생뚱맞게도 '愛麻夫人'이다.
심의 때문에 그랬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 시대는 '심의'의 시대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얼마 전까지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거시기에 '점'이 있느니 없느니 하면서 유명해진 '난방 열사 김부선'씨도 그 시리즈에 등장했었다.  

말은 우리나라 영화뿐 아니라 소설 제목에도 등장한다.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이라는 소설은 한국문학사에 획을 긋는 작품으로 평가된다지만, 내게는 섹슈얼한 묘사가 여기저기 많아서 엄청 흥미진진했다는 것만 기억난다.
왜 뜬금없이 경마장이 제목에 나오는지는 책을 읽고 나도 알 수 없었지만, 작자는 그 이후로도 '경마장'이 붙은 소설을 써 댄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선 동물 중에 거시기도 가장 튼실하고 지치지 않는 정력을 가진 걸로 생각되는 동물이 바로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은 말을 닮고 싶어 한다. 거시기도 그렇지만, 말이 다리처럼 근육질로 쭉 뻗은 다리를 가진 남성은 당연히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경마장 홍보 담당하시던 분한테서 들은 사실은 이러하다.
겁이 많고 예민한 동물인 말 입장에선, 포식자들에게 잡아먹히기 쉬운 들판에서 교접을 하는 것은 정말 두려운 일이다.
그러하니 인간의 기대를 저버려 참으로 미안하고 또한 창피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일을 마쳐야 한다.
그 시간은 뜻밖에도 10초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정말 말 같지 않은, 말도 안 되는 말이다. 

잡설이 길었다. 노마드란 말은 '유목민,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다른 장소로 이주하면서 생활하는 사람 또는 그런 집단'을 뜻한다.
그래서 요즘을 디지털 노마드의 시대라고도 한다. 말하자면 디지털 기기로 무장하고, 시공간의 제약이나 가치관의 구속 없이 전 세계 사람들과 소통하며 인터넷상에서 떠돌아다니는 시대를 말한다.
그런데 현재의 디지털 기기가 과거에는 바로 말(馬) 이었다. 


인류가 그동안 살아온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한자리에서 씨 뿌린 후 열매 맺기를 기다리며 정착하여 사는 삶, 또 하나는 여기저기 물과 풀을 찾아 떠돌아다니면서 목축으로 먹고사는 삶이다.
어떤 삶이 더 좋은 삶인지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고, 삶의 방식이 다르니 문화의 양태가 많이 다르다고 한다.
농업을 하며 땅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지배계급의 폭정에 시달려도, 그 땅을 떠나서는 먹고 살 방법이 없으니 그저 참고 견딘다.
매우 순응적이고 하늘의 뜻 즉 자연의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긴다.
반면에 유목민들은 핍박받으면 바로 짐 싸 들고 뒤도 안 돌아보고 더 좋은 곳을 찾아 나선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격이다.
그러니 자기 뜻을 굽히지 않으며 비타협적인 삶을 산다고 한다.  


© nick_vlachos, 출처 Unsplash

세계를 제패하고 헬레니즘 시대를 연 알렉산더 대왕의 전투력은 말에서 비롯된다.
고대 그리스가 점령하고 있던 지역에서 말을 기르고 훈련시킬 만한 평원이 있는 유일한 지대-마케도니아 지역을 발판으로 아테네 스파르타 연합은 유럽 전역과 이집트 그리고 아시아를 넘어 인도까지 진격하여 세계 제국을 건설한다.
또한 한술 더 뜬 질풍노도의 전투력으로 유럽과 중앙아시아를 넘어 유사 이래 가장 넓은 지역을 복속 시켰던 칭기즈칸도 말위에서 잠을 자며, 햄버거 먹어가며 그런 성과를 일궈냈던 것이다.
당시로선 상상하기 힘든 기동력을 바탕으로 기상천외한 전략을 구사한 그를 이겨낼 자가 없었던 것이다. 세계사에 길이 남은 두 제국의 건설은 바로 '말'이 있어 가능했던 것이다.

19세기 중반 기차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모든 정보와 물자의 전달 속도는 말의 그것을 넘어설 수 없었던 것이고, 이렇게 말을 전략적 무기로 무장한 '유목 세력' 즉 land power' 이후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sea power'이다.
이 해양세력은 '배'를 이용하여 엄청난 재화와 함포를 싣고 해상무역과 새로운 대륙을 개척(말이 좋아서 개척이고 실제로는 침략) 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다.
그래서 인간이 만들어낸 역사와 문화는 짧고 굵은 한 음절의 '말馬' 과 '배船'로 응축이 될 수 있다.  


애초에 인류 문명의 시작은 농경 문명 즉 '정착 문명'이었다.
인류 문명의 초기 지배계급의 입장에선 땅에 코 박고 묶여 사는 자들이 지배하기 수월하고 또한 부역이나 세금 뜯기도 간편했을 것이다.
반면에 수틀리면 짐 싸 들고 사라져 버리는 유목민들은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고 또한 부역이나 세금 걷기도 여의치 않았을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에도 이런 갈등이 있었던 듯하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보면 농부였던 카인은 유목민이었던 아벨을 살해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게 '정착 문명'과 '유목 문명'간에 있었던 갈등을 상징하는 거라는 해석도 있지만, 구약성서는 픽션에 가깝다고 치자.
칭기즈칸의 손자로서 몽골제국의 5대 칸이자 원나라를 세운 쿠발라이칸도 비슷한 갈등을 겪는다.
유목 문명을 발판으로 한 몽골제국과 정착 문명의 원조인 중국 대륙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양 세력의 통합은 그에게 결코 쉽지 않은 과제였을 것이다.  


역사와 문명은 어찌 되었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노마디즘을 요구한다.
누군가가 아주 재밌고 의미심장하게  '노마디즘'을 정의했기에 인용한다.
'인류의 역사가 유랑이다. 정착하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이 유랑을 한 것이 아니라, 유랑을 하다가 어쩔 수 없이 정착을 한 것이다.
유랑이야말로 인류의 원초적 본능이며, 나아가 생명은 곧 운동이다.
이것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면 그때 유목이 된다.
유랑이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이라면, 유목은 떠남과 머무름을 내가 주관하는 것이다.
유목은 목적지가 없다.
고향이나 유토피아를 갈망하지 않는다.
부처, 예수, 공자, 노자 등 인류의 위대한 멘토들이 그랬듯이.. 거꾸로 어디를 가건 그곳을 온전히 삶의 터전으로 받아들인다.
사막이건 옥토 건 상관없다.
'머무름과 떠남의 유쾌한 변주, 그것이 유목이다'  

아마도 정신적, 사상적 측면에서의 유목을 강하게 권하는 글일 테다.
필자야말로 뼈저리게 느끼고 벗어나 보려 노력하는 중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자기만의 생각과 경험에 갇히게 된다.
소위 '정착'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만의 '성'을 쌓거나 '굴'을 파들어 간다.
노인들만 그러는 게 아니다.
그러하니 젊은이들에게도 권하 건데 끊임없이 주위를 돌아보며 다른 이들의 생각도 귀담아듣고 소통하고 이해하려 애써서, 하나의 이즘이나 도그마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井蛙不可以語海(정와불가이어해)
拘於處也(구어처야)
夏蟲不可以語氷(하충불가이어빙)
篤於時也(독어시야)

설명하자면 우물 속에 있는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설명해 줄 수 없다는 것.
개구리가 사는 곳인 우물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름 한 철만 사는 곤충에게는 얼음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없다.
여름 한 철 외에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개구리나 하루살이처럼 살지 말고, 지구촌을 넘나들며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미래를 내다보며 살라는 말씀으로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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