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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반맨 Oct 26. 2022

웃음

49금 인문학 사전 01.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부 '희극론'의 내용이 알려질까 두려워 6명의 수도사를 죽게 만든 장님 수도사 '호르헤'가 주인공 급으로 등장한다.
내가 젊은 시절에 그 명성에 혹해서 들이댔다가 그 끝을 못 보고, 최근에 다시 읽어본 소설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특히 교회사에 대한 박식함과 기호학자다운 장치 설정 등은 내가 감히 평가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플롯 자체는 정말 단순한 소설이다 (그러나 분량은 두꺼운 벽돌로 2권이나 된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제목과 연결되면서, 제목 자체만으로도 뭔가 있어 보이는 소설이다.
'stat rosa pristina nomine, nomida nuda tenemus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원래의 문장에서 roma를 rose로 바꿔치기 한 문장이라나...)


이 소설에서 장님 수도사(호르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의 필사본을 죽기 살기로 (그러다 결국엔 죽었다ㅎ) 감추려는 과정에서 연쇄 살인이 발생한다.
그런데 그렇게 장서관 깊숙이 비서를 감추려는 이유가 좀 웃긴다.
책의 내용 중에 '웃음'을 찬양하는 부분이 세속에 알려지면, 수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금욕적인 기독교적 가치가 손상되고 신에 대한 경외심이 사라질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소설의 등장인물들 간에도 이와 관련된 논쟁이 많이 전개된다.)


comedy의 어원은 komai (시골마을이란 뜻)이며, 시골 마을에서 식사나 잔치 뒤에 벌어지는 흥겨운 여흥극을 말한다고 한다. 짐작컨데 밥 먹고 나서 경건한 마음으로 주님의 은총을 찬양하지 않고 쓸데없는 우스개나 낄낄댈까 걱정되어 그랬나 싶지만, 말 그대로 코미디 같은 중세의 교회 엄숙 주의가 소설에서 소개되고 있다. 


웃음에는 정말 종류가 많다.
내가 알고 흔히 쓰는 말로만 해도 함박웃음, 너털웃음, 억지웃음, 비웃음, 눈웃음, 쓴웃음, 코웃음, 헛웃음. 배꼽 잡는 웃음, 실실 쪼개는 웃음 (이런 말도 표준어인가?)...
게다가 한자어로 실소, 냉소, 포복절도, 파안대소, 박장대소, 염화시중의 미소(이것도 말 되나?) 요즘의 인터넷 신조어로는 썩소니 웃프다 등도 있고, 미국애들이 SNS에서 약어로 흔히 쓰는 말 중에는 lol (laugh out louder)도 있다.
혹시 僧笑(승소)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소송에서 이긴다는 뜻이 아니고, 국수의 별칭이다.
스님들이 간식거리로 국수를 좋아해서 국수만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해서 붙은 이름이란다.
게다가 꽃 이름도 있다. 웃음꽃이 피었네 하는 말이 있잖은가?


인간만이 웃을 줄 안다고 했다.
개나 소가 웃는 것 봤나?(근데 반려견 견주들은 가끔 자기네 개가 웃을 줄 안다고 우긴다).
속담에 웃으면 복이 온다고 했다.
복만 오는 게 아니라 건강도 따라온단다. (웃음은 만병통치약!!)
게다가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니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는 감염의 우려도 엄청 줄어든다.

  
심리학적으로도 안면 피드백 가설이란 게 있다.
얼굴 표정에 따라서 그에 상응하는 감정이 유발된다는 것.
즉 일부러라도 웃으면 행복한 감정이 생기게 되고, 그러다 보면 만사형통한다는 믿거나 말거나의 실험 결과가 있다.
그리고 기왕에 웃으려면 '뒤셴웃음'(Duchenne Smile)을 권한다.
우리말로 하면 함박웃음, 파안대소 정도 되려나?
입과 볼 근육이 아닌, 입 주위 근육과 눈 주위 근육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웃음이  ‘뒤센 웃음’이며, 입 둘레 근육을 사용해 입꼬리만 올라가는 웃음은 ‘사교적인 웃음 혹은 가짜 웃음’이란다.
'가짜 웃음'은 진화적으로 인간이 나중에 장착한 사회적, 정치적인 장치라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단다.

심리적인 측면에서만 좋은 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웃음은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웃음을 참게 할 경우에는 악력기 쥐는 시간이 20%나 감소한다고 한다. 


이렇게 좋기만 한 게 웃음인지 알았는데 좀 생뚱한 말을 한 작자도 있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사회철학적 관점에서 '웃음'을 탐구했는데, 그의 <웃음:희극성의 의미에 대한 시론>에 따르면 웃음은 개인의 비사회적 태도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징벌'이다.
사회는 그 자체로 원활함과 유연성을 갖고자 한다.
그래서 개인이 하는 돌출 행동은 곧 사회적으로 경고해야 할 대상이 되며, 그것을 경고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웃는다는 것이다.
뭔 말인지 알 듯 하지만, 전적으로 공감이 가진 않는 말이니 무시하셔도 될 듯하다. 


나이가 들면서 자꾸만 웃을 일이 줄어든다.
'There is no sadder sight than a young pessimist, except an old optimist'라는 말이 있다.
의역하면 '젊은 비관주의자도 가관이지만 그보다 더한 꼴불견은 늙은 낙관주의자다'라는 말마따나 늙은이는 삶의 태도나 방식이 기본적으로 비관적이다.

그러니 늙으면 웃을 일이 없어지는 게 당연하다.

  
수명은 쓸데없이 마냥 늘어서 앞으로도 30-40년  하이데거가 말한 '시간 죽이기'를 하며 몇 푼 안 되는 연금으로 살아갈 걱정, 게다가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에 애들 취업 걱정, 시집. 장가는 또 어찌 보낼 것이며 결혼 후에 맞벌이를 해도 집 한 칸 마련하기 어려울 테니, 불 보듯 뻔한 그들의 미래를 생각해보면 웃음이 싹 가실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집에서 쓸데없이 실실 웃으면 쫓겨날 수도 있다.
그나마 미치게 하는 놈하고는 참고 살 수 있지만, 미친놈하고는 함께 살 수 없는 것.. 


問余何事棲碧山 (문여하사서벽산) 묻노니, 그대는 어이해 푸른 산에 사는가?
笑而不答心自閑 (소이부답심자한) 그저 웃을 뿐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 절로 한가롭네.
桃花流水杳然去 (도화유수묘연거) 복사꽃 물에 떠서 아득히 흘러가니,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별천지 따로 있어 인간 세상 아니라네.


 좋은 시이기는 한데, 우리에겐 꿈꿀 수 없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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