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금 인문학 사전 15.
썰렁한 아재 개그 하나...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삶은 계란, 영어로 boiled egg이다!!'
젊은 청년이 삶은 무엇인지 천착하던 차에 에피파니(epiphany)처럼 깨달은 결론이라나...
논리는 이렇다. 계란이 생명을 얻어 병아리가 되려면 안으로부터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하듯이(그러지 않으면 프라이가 되는 것!!) 인간의 삶도 제 스스로 세상 밖으로 깨치고 나와야 한다는 게다.
비슷하지만 좀 다른 뜻으로 啐啄同時(줄탁동시)란 사자성어도 있다.
삶과 관련한 모든 깨달음은 안과 밖이 동시에 상응하여야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삶이란 걸 이렇게 간단하게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면, 유사 이래 인간의 모든 사상과 철학과 종교는 그저 허망한 시도 일 테다.
말해 무엇하랴. 제각각 모든 이의 삶이 우주와 같은 무게를 가지니
'一微塵中含十方 一體塵中亦如是' (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
삶의 의미와 가치 그에 대한 정의는 백인백색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정의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 살짝 엉뚱하게 말하길...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살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사라지는 것이다."
영어로 의역하면 "Never take life too seriously, nobody gets out alive anyway." 정도일 테다.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숱한 말들만큼 많은 게 또한 죽음에 대한 말들이다.
공자께서는 사는 게 무엇인지 물어보는 제자에게 '未知生 焉知死' (미지생 언지사)
"삶이 뭔지도 모르는데 하물며 죽음을 어찌 알겠는가"라고 하셨단다.
또한 이런 말도 있다. "죽어가는 사람은 자기의 사다리를 높이 들고 올라가 버린다."
따라서 살아있는 자들에게 죽음은 영원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다.
물론 그래서 여러 종교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겁주며, 천국이니 극락이니 하며 비싸게 팔아먹고 있기는 하지만...
공자의 말씀 한마디로 정리가 된다.
삶을 알아야 죽음을 말할 수 있을 테다.
마찬가지로 죽음을 제대로 알아야 삶을 충일하게 잘 살아내지 않겠는가?
삶이 있으니 죽음이 있고 죽음은 삶의 마지막 형식 아닌가 싶다.
저 유명한 스토아 학자들도 멜레테 타나투( Melete thanatou) 즉 죽음에 대한 명상을 통해서 올바른 삶의 자세를 다듬으려 했단다.
다만 본인이 직접 죽어서 깨달아 볼 방법이 없으니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나아가서 자신의 삶을 가다듬었지 않았겠나 생각된다.
'요지경'이란 말은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연못인데 여기 사는 미모의 여신 '서왕모'가 죽음의 여신이면서 생명의 여신이기도 한 것처럼,
또한 프로이트가 인간의 마음속에 살고 싶은 본능 곧 에로스적 욕망과 죽고 싶은 본능 곧 타나토스적 욕망이 공존한다고 말했듯이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그래서 'Si vis vitam para mortem 삶을 원하면 죽음을 준비하라'라고 했다.
삶과 죽음의 엮여있음은 개인뿐만 아니라 이 우주 전체의 존재 방식이 그래 보인다.
한쪽에선 태어나고 다른 한편에선 죽어나가고..
좀 별스러운 소설가 박민규의 단편소설에 '아침의 문'이라는 게 있다.
(내 기억은 '두 개의 문'인데 혹시나 싶어서 찾아보니..)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마지막 설정이 목매어 자살하려는 남자가 우연히 목격하게 된 원치 않는 아기를 낳아 처리? 또는 죽이려는 여인의 모습...
남자는 죽기를 포기하고 아기를 구하러 간다. 딱 이 부분만 기억이 난다.
작가는 이 장면을 통해 삶과 죽음의 아이러니를 표현하고자 했던 걸까?
근데 글을 쓰다 보니 느닷없이 맥이 풀리고 허망해지며, 이 모든 언사가 부질없어 보인다.
특히나 하루하루 허덕이며 닥치는 대로, 사방에서 날아드는 도끼 피해 가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겐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게다.
뿐만 아니라 백수 된 지 오래되어 마눌님께 가스라이팅 당하며, 사사건건 잔소리 안 들으면 어쩐지 조마조마하고 마냥 불안해지는 내 주제에 삶과 죽음이 뭔 의미가 있으랴!
그러나 끝으로 글을 하나 더 인용한다.
'死生命也 其有夜旦之常 天也 人之有所不得與 皆物之情也'
(사생명야 기유야단지상 천야 인지유소부득여 개물지정야)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다.
밤낮이 변함없이 이어지는 것과 같은 하늘의 이치인 것.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사물의 참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