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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반맨 Jan 17. 2023

병역의 의무

49금 인문학 사전 11.

© mohamed_hassan, 출처 Pixabay

입대를 앞둔 제자가 심란해하자 교수님이 달래주느라 한마디.
"남자라면 모름지기 한 번은 군대를 가야 해. 어쨌든 갔다 오면 잘 했다는 생각이 들 거야." 
그랬더니 제자 왈  "그럼 스승님은 왜 한 번 더 가지 않으세요?"
교수님이 할 말이 없자 짜증 내며 하시는 말씀,
"야 이 자식아, 내가 한 번은 갈 만하다고 그랬지, 한 번 더 갈 만하다고 그랬냐?"

내가 대학 다닐 때는 입학한 후 1학년 중에 일주일 정도 군부대(문무대라고 불렀다)에 입소해서 박박 기는 훈련을 받고 왔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미리 얼차려를 시켜서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대학생으로 키워내려는 박통의 애틋한 배려심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인 듯하다.
그러나 부작용이 엄청 컸으니, 거기 다녀온 뒤로는 어떻게 해서든 병역 면제를 받거나 장교로 군대 갈 생각을 하는 학생들만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 후로 수십 년이 흘러 군대가 엄청 편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사람은 아들이 초등학생 때부터 나중에 군대 보낼 생각에 코가 빠져 있곤 했다.
근데 어찌 나의 어머님께서는 천하태평으로 아무런 대책 없이 당신의 하나뿐인 막내아들을(당연히 하나뿐이지 그럼..) 그때 그 시절 전방 소총수로 뺑뼁이 치게 내버려 두셨는지 참...
 
나는 군대 관련해서는 참으로 모질고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다.
구구절절이 얘기할 필요가 없지만, 한겨울에 동부전선 산꼭대기 GOP 근무 등 몸 고생도 꽤나 했고  맞기도 무척 많이 맞아봤다.
그때는 군에 구타가 만연했던 시기였다.
어떻게 그 세월을 견뎠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터득한 인생의 진리가 하나 있다.
"인생은 살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사라지는 것이다."
너무 거창한가? 어쩔 수 없어서 견디다 보면 견뎌지고, 견디고 나니까 그 시간들은 그렇게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지난 시간들에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거나 치장을 많이 하지만 그건 모두 의미 없는 짓이다.
Let bygones be bygones..   

그 시절에도 소위 빽있는 집안 자제들은 군에 줄을 대서 꽃보직을 받거나 아니면 아예 면제를 받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눈여겨보면 지금의 장차관급이나 사회 지도층 중에는 군대 제대로 갔다 온 사람이 드물다.
예나 지금이나 금수저로 태어나서 미리미리 준비하면 병역 특례니 뭐니 입대를 피하거나 늦출 수 있는 방법은 널려있다.
또한 특정 종교의 제대로 된 교파의 신실한 교인이 되는 것도 새롭게 등장한 좋은 방법이다.
(이런 말 하면 양심의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한테서 종교의 자유를 병역 기피 목적으로 폄훼한다는 소릴 듣겠지만...) 

요즘 시대 흐름이 여남 평등이니 페미니즘이니 하는 말이 당연하게 여겨지며, 또한 커리어 우먼의 능력이 남성을 압도하는 분야가 많아지고 있다.
오죽하면 앞으로는 'Womenomics'의 시대라고 하겠나?
그러다 보니 남자들이 오히려 역차별 당한다면서 여자들도 군대 보내야 된다고 못난 소리 하는 남자들이 많아졌다.
한마디로 참으로 지지리도 못난 것들이나 하는 언사다.
인류가 집단을 이룬 이래로 전쟁은 남자들 몫이었고, 군대는 남자들만의 조직이었다.
물론 예외도 있었겠지만 인류는 그렇게 살아왔다.
여자들이 굳이 군대 보내달라고 애걸복걸하면 모를까 여자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지우는 것은 대한민국 인구가 이스라엘처럼 쪼그라들 2200년 이후에나 생각해 볼 일이다.
그리고 몇 개월 되지도 않는 군 생활 마쳤다고 가산점이니 뭐니 달라고 때 쓰는 것도 남자답지 못한 일이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는가?(그나저나 이 말도 자칫 마초 근성이라고 지탄받을 수 있을 텐데..)
 
혹시 '프롤레타리아'라는 말을 모르시는 분은 없을 듯한데, 이 말의 유래가 군대와 관련이 있다.
라틴어 어원으로 보면 국가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자기 자식(플로레스) 밖에는 국가에 내놓을 게 없는 사람을 '프로 레타 리우스 proletarius'라고 불렀다 한다.
반면에 정통이란 뜻과 제1계급이란 의미로 쓰이는 라틴어 '클라시쿠스'는 클래식이란 단어의 어원인 '클라시스classis에서 파생했으며, 국가를 위해 함대를 기부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한 부유층을 가리켰다 하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군대는 돈 없고 빽없는 것들이나 끌려가는 조직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달라진 건 예전에는 기찻길 옆 오막살이하는 집에 자식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돈 걱정 없는 부부들만 아이를 2명 이상 낳는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Homo Furens', 전쟁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동물들 중에 유일하게 현생 인류만이 이념이나 목적을 가지고 전략을 세워가며 상대를 몰살시키려 죽기 살기로 전쟁한다.
다른 동물들은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 먹이를 얻기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건다.
그들은 효율적인 먹이 활동을 위해 동료와 협력을 하지만, 집단 간의 패싸움 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
반면에 인간은 동종 간의 학살도 서슴지 않았다. 호모 에렉투스, 호모 하빌리스, 네안데르탈인 모두 호모 사피엔스 종에게 압도되어 종말을 고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보면 에덴동산을 떠난 인간은 사실상 폭력으로 인간의 문화를 시작했다.
농부였던 카인은 유목민이었던 아벨을 살해했고., 어디선가 발견된 화석에서 보이는 구멍 뚫린 인간의 두개골은 개인 간의 폭력이 점점 인간 삶의 일부가 되기 시작했다는 증거란다.
인류의 역사는 손꼽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전쟁의 역사다.
고고학이나 역사책을 들여다보면 인류는 전쟁으로 시작한 종이고 결국 전쟁으로 그 끝을 볼 것이라는 결론에 달하게 된다.
지금도 치열하게 전개되는 미-러-중간핵 무장 강화와 군비 경쟁 그리고 우크라이나 사태 등을 보면 그저 아연실색할 뿐이다. 

자식들 군대 보내기 싫으면 인류가 전쟁을 안 하면 된다.
근데 그게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종의 DNA 속에 전쟁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유전자가 있으니 전쟁이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다.
우리만 하더라도 북녘에 주체사상이니 프롤레타리아혁명이니 하며 70년 이상을 전쟁 놀이에 미쳐있는 집단을 두고 있다. (그들이 보기엔 우리 남한도 다를 바 없겠지만..)
행여 이 집단이 궤멸할지라도 우리에겐 또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어서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인류의 숙명이다.
군대를 없앨 생각을 하느니 아들이 군대 가있는 동안에 전쟁 나지 않기를, 그리고 그저 몸 건강히 제대하기를 기도하는 게 맞다.
그리고 가족의 품을 떠나 철저한 상하관계로 이루어진 집단생활의 경험이 제대 후의 사회생활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거니 하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나저나 나는 군대에서 상당한 전투력을 쌓았고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었다고 자부함에도 불구하고 집사람과의 내전에서는 항상 패퇴하고 만다.
우리 집사람에겐 아마조네스의 피가 좀 섞여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손자병법에 '百戰百勝 非善之善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백전백승 비선지전자야 비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 라고 했다.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기는 것, 그거 별로다. 싸우지 않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이다 라고 했다. 맞는 말씀이다.
그리고 '兵者貴速 병자귀속'이라시며 속도가 중요하니 싸움은 오래 끌지 말라고 했다.
부부싸움에도 적용되는 말씀이니 새겨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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