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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반맨 Feb 06. 2023

시간

49금 인문학 사전 12.

백수가 된지 벌써 5년... 어찌어찌 보낸 시간이 대통령 임기하고 맞먹는 시간이다.
누구에게는 한 나라를 제대로 말아먹을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으나, 나는 기껏해야 동치미 국물에 국수나 말아먹었을 뿐...
 한마디로 하이데거가 말한 그 '시간 죽이기'를 하며 보냈던 것이다. 
젊어서는 시간이 없다는 말을 달고 살다가(그래야 뭔가 중요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이제는 넘쳐나는 시간을 어떻게 죽일까가 남은 인생 최대의 과제가 된 백수.
그러다 보니 정말 '시간'이란 무엇인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미국의 물리학자에게 물어봤다.
'what is time?' 대답이 이렇다.
그건 잘 모르겠고, 대신 'what is the time?'에 대한 대답은 할 수 있겠다며 'five thirteen' 이란다.
더 유명하신 양자물리학자도 개그스럽게 이렇게 정의하셨다.
'Time is (an) illusion. Lunchtime doubly so. 시간이란 허상에 불과하다. 특히 점심시간이 더욱 그렇다'.   

 aronvisuals, 출처 Unsplash

시간을 어떻게 정의하건- 물리학적이건, 인식론적이건-나는 우주와 지구와 생명 현상이 그러하듯 시간은 그 자체로 존재하며, 시간이란 개념을 떠나서는 인간의 모든 의식, 행위와 더불어 모든 자연 현상이 존재할 수 없을 것으로 알고 있었다.
우리의 기억이나 의식이 주관적 또는 상대적으로 왜곡해서 인식할 수는 있겠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과거-현재-미래가 순차적으로 전개되는 것이며 절대적인 시간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닌가?
근데 요즘 뜬다는 양자물리학 관련 책들을 들쳐보면 대체로 시간이란 게 실제로 따로 존재하지 않는 거란다.
엄밀하게는 시간과 공간이 함게 붙어있는 시공간이 존재하는 것이고, 절대시간이란 것도 없으며,  시간의 흐름도 중력의 크기나 나의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빛조차 빨아들이는 어마어마한 중력의 블랙홀 입구로 가게 되면 시간도 멈춰버린다.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이 있는 게 아니고 사건들이 제각각 따로 존재하는 걸 우리의 뇌가 이것들을 이어붙여서 시간의 흐름으로 인식하는 것이란다.
인터스텔라 인가? 과학 공상영화에서 나온 '웜홀'이란 게 있을 수 있고 이걸 통하면 과거나 미래의 어디로 직방으로 갈 수도 있단다.
내가 이해한 수준에서 정리해 본 내용이다.  

사실 필자의 사고력도 부족하고, 물리학의 기본 개념도 어설프니 제대로 된 이해가 아닐 듯하다. 
그래서 양자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벨리가 쓴 책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메모했던 부분을 그냥 날것 그대로 소개해 본다.
(이 사람은 정말 사람을 힘들게 만든다.
이 분의 다른 책 제목은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이고, 읽다 보면 뭔가 그럴듯한데 읽고 나면 마냥 공허해진다.
사물이 실재하지도 않고, 더불어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니 그럴 수밖에..)  


"현실은 과거로부터 현재를 지나 미래를 향해 흐르고, 사물의 진화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비대칭적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이것이 세상의 기본 구조라고 생각했지만, 이 익숙한 틀은 산산조각 났다.
시간은 아주 복잡한 현실의 근사치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온 우주에 공통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사건들이 과거-현재-미래 순으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부분적'으로만 순서가 있을 뿐이다. 우리 주위에는 현재가 있지만 멀리 있는 은하에서는 그것이 '현재'가 아니다.
현재는 세계적이 아니라 지역적이다.
세상의 사건을 지배하는 기본 방정식에는 과거와 미래의 차이가 없다.
그 차이는 사물에 대한 우리의 희미한 생각과 함께, 과거에 세상이 우리에게 특별한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에 의해서만 문제가 될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의 눈 뒤쪽에 있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20센티미터 영역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다.
또한 우리는 선이다.
이 혼란스럽고 거대한 우주의 조금 특별한 모퉁이에서 세상의 일들이 뒤섞이면서 남긴 흔적들,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예견하고 엔트로피를 성장시키도록 맞춰진 그 흔적들이 만들어낸 선들이다.
그러니까 시간은, 본질적으로 기억과 예측으로 만들어진 뇌를 가진 인간이 세상과 상호작용을 하는 형식이며, 우리 정체성의 원천이다."  


물리학자들도 고개를 젓는다는 것이 '시간'의 개념이란다.
물리를 넘어 심리적이며 철학적이기도 한 시간의 개념에 대해 짧고도 어설픈 이 글을 통해 뭔가 얻을 것이라 기대하신 분들이 있다면 그저 죄송할 뿐.
시간만 낭비하신 게다. (근데 시간이란 게 없다니 낭비할 것도 없는 것 아닌가? 죄송하다는 말씀은 바로 취소) 
그러나 물리학적으로 시간이 존재하든지, 아니면 흐르든 말든 우리 인간은 생체적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며 그 틀안에서 살고 있다.
과거 기억이든 미래 기억이든 우리의 뇌를 통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하나의 선으로 잇고, 그 선상에서 지지고 볶고 살고 있다.  
다시 우리가 알던 시간으로 돌아가자.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며, 과거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며, 미래는 나에게 알 수 없는 기대 또는 두려움으로 다가올 뿐이다.
그래서 "청년은 미래를 중년은 현재를 노인은 과거를 말하며 산다."고도 한다.
붓다는 '너의 과거를 알고 싶은가? 지금 너의 모습을 보아라.
너의 미래를 알고 싶은가? 지금 네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아라'라고 말했다.
붓다의 이 말씀을 호라티우스가 이렇게 의역했는가?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지금 이 시간에 충실하시고,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으시길.) 
시간이란 게 뭔지 정말 오리무중이지만, 도사님들의 말씀에 뭔가 이해의 단초가 있을까 싶어 덧붙여 본다. 


年不可舉 時不可止 消息盈虛 終則有始 (년불가거 시불가지 소식영허 종즉유시) 
세월의 흐름은 막을 수 없으며, 시간의 추이는 멈추게 할 수 없는지라, 
소멸(消滅) 하였다가 다시 생기고, 가득 찼다가 텅 비게 되며, 그 끝인가 하면 다시 곧 시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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