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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반맨 Nov 07. 2022

고령화

49금 인문학 사전 03.

우리 나이 또래에겐 제법 인기가 있었던 가수 서유석.

살짝 탁하면서도 낭랑한 목소리, 훤칠한 키에 이지적인 이미지의 가수가 늘그막에 발표한 노래가 있다.

'너 늙어봤니? 나는 젊어봤단다'

마사초, '성 삼위일체'

우연찮게 듣게 되어 그 가사를 검색해 봤더니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다.

노래 제목이나 내용이 내 추측으론 산타 노벨라 SMN 성당에 있다는 그림 '삼위일체'에서 아이디어를 얻지 않았을까 싶다.


주워들은 얘기지만(직접 가서 본 적이 없다), 그림 아랫부분 해골이 놓여있는 관에 새겨져 있는 글귀는 이렇다

'I once was what you are. and what I am you also will be' (라틴어 원문은 Io fugia quel che voi sete, e quel chi son voi anco sarete Quis ego 나도 한때는 그대와 같았노라. 그리고 그대도 지금의 나와 같아지리라).


그리고 이어지는 글이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고령화에 이어지는 죽음은 실로 서글픈 일이지만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것.


고령화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의미로 사용된다.

개인의 나이 먹음은 억지인 듯하지만 '加齡 가령'을, 사회적 인구 구성의 늙어감은 '고령화' '노령화'라고 부른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개인의 가령이야 동서고금 누구나 겪는 자연적 현상이지만, 사회의 고령화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며, 대게는 이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인 저출산 문제와 수레의 양 바퀴처럼 함께 다가오는 문제이다.


누군가는 고령화 문제의 심각함과 그 파괴성을 earthquake에 빗대 'agequake'라고 했다.

일본이 지진이 많은 나라라 agequake가 빨리 왔나?

근데 우리나라는 지진이 많지도 않은데 왜?...


최근의 한국 경제는 1990년대 초 '잃어버린 30년' 진입기의 일본을 빼닮았다(죽창 가를 불러대며 그렇게도 미워하는 일본을 닮는 이유를 정말 모르겠지만...)

급격한 성장률 하락과 고령화 진전, 주력 산업의 대중국 경쟁력 상실과 국가채무의 급격한 증가 등이 손꼽힌다.

특히 고령화 속도는 숙적 일본을 완전히 제압할 수준이란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7%를 넘으면 고령화 사회, 14%를 넘으면 고령사회라 부르는데 한국의 고령자 비율은 2017년에 14%를 넘어 17년 만에 고령사회로 진입했고 2025년에는 초고령 사회가 될 것이라 예측된다.

일본의 경우 고령사회가 되는 데 24년 걸렸다고 하니(1994년 즉 우리보다 23년 먼저 고령사회 진입), 우리의 고령화 속도가 OECD 국가들 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이라고 한다.

뭐든지 빨리빨리 해내는 한국인의 세계적인 자랑거리가 또 하나 생긴 건가?


저출산과 함께 우리 사회에 다가오는 고령화 문제는 가속도가 엄청 크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0.8대로 전 세계에서 제일 낮다. 어리바리 손쓸 사이도 없이 사회가 급격히 탄력을 잃으며 쇠퇴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노인이 되면 덜먹고, 덜 쓰고, 덜 움직이게 된다.

뿐만 아니라 두려움이 커져서 생기는 돈은 족족 장롱에 처박아 놓으니 경제가 돌아가질 않는다.

소비가 줄어드니 당연히 기업이 어려워지고 이에 따라 고용을 줄이게 마련...

젊은 백수가 넘쳐나고 소비는 더욱 줄어들어 기업이 문을 닫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벌이가 없으니 젊은이들은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를 넘어 모든 것을 포기하는 N포 세대(집, 인간관계, 꿈과 희망 등 가짓수를 열거하기 힘들어..)가 된다.


사회가 죽어가는 것이다.

도시 주변이나 농촌에 빈 집이 넘쳐나고, 그나마 '영끌'한 부동산 하나 믿고 살던 이들은 빚더미에 않게 되어 신용불량자가 된다.

이들에게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해 준 금융기관들은 파산하게 되고, 예금주들은 덩달아 날벼락을 맞는다.

국가는 노인네들 먹여살리느라, 적자 연금 메워주랴, 파산한 은행들 돈 대신 갚아주랴...

하여 재정정책이니 사회적 인프라 강화니 하는 것들은 먼 나라 얘기가 된다.

이게 결코 과장되지 않은, 얼마 남지 않은 미래의 얘기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유독 노인들이 빈곤하다.

아직 공적인 연금으로는 먹고 살만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젊을 때 개인적으로 미래를 준비하지도 못했던 '젊은' 노인들(남아도는 힘과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쓸데없는 정치 얘기로 핏대 세우는..)을 어찌해야 할까?


누구 말대로 국방은 노인들에게 맡기고 젊은이들은 군 복무를 면제해 줘야 할까?

이런 노인들을 머리에 이고 지고 살아갈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앞날이 걱정된다.

앞으로 20년 내에 젊은이 3명이 노인네 2명을 먹여살려야 한단다.(2040년 생산 가능인구 55%대 노인인구 35%)


나야 이 꼴 저 꼴 안 보고 죽겠지만, 내 자식들이 참으로 걱정이다. (근데 거꾸로 노인네들이 젊은이들을 먹여살려야 할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젊은이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힘으로 강제하면 별 수 없지 않을까?)


걸리버 여행기에는 '럭낵'이라는 곳에 사는 '스트럴드블럭' 이라는 영원히 죽지 않는 노인들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고집 세고 욕심 많으며, 영원히 살기는 하지만 질병과 고통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노인들.. 그래서 젊은이들의 활력과 다른 노인의 죽음을 부러워하면서 생명을 이어가는 좀비 같은 존재다.


이런 문제로 럭낵에서는 스트럴드블럭이 80세가 되면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생계를 위한 수입만 남기고 나머지 가진 재산을 상속토록 강제하는 법률을 만든다.

상업이나 일체의 이윤 추구 행위도 금지된다.


'늙을수록 탐욕으로 가득 찬 이 좀비들이 나라 전체를 소유하게 될 것이고, 결국엔 사회 전체가 파괴될 것이다.'

럭낵 사람들은 이런 우려 때문에 노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법률을 만든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득 대학생들에게 '부모님이 몇 세까지 살다 가시면 좋겠냐?'라는 설문 조사가 생각난다.

65세였던가? 그런데 해마다 그 결과가 당겨진단다. 반란이 시작됐나?)

이게 우리의 현실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조너선 스위프트는 290년 전에 어쩌면 이렇게 절묘하게 미래의 노인 문제를 상상해냈는지 경탄을 금치 못한다.


이제 우리 노인들은 (물론 나를 포함해서) 이런 꼴 당하기 전에 스스로 '노노老老상속' 아닌 '조손祖孫상속'을 하고 종활을 준비해야겠다.

(終活 - 슈카쓰는 죽기 전에 생의 마무리를 미리 스스로 하는 행위를 말한다.)

조손 상속은 혈기 왕성한 손주에게 자식을 건너뛰어 자산을 상속하는 방식이다.

노노 상속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이미 유럽이나 일본에서 활성화되고 있으니 우리나라도 이런 형태의 합리적 상속을 활성화하는 세법도 마련해야 한다.

노노 상속은 둘 다 거의 치매기에 들어간 90대 부모와 60대 자식 간의 상속이라서, 이럴 경우 자식도 너무 늙어 상속 재산을 활용하지 못하므로 사회적으로 자산이 활용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엔딩노트도 미리 써놓고 상속과 증여도 정신 맑을 때 과감하게 하고, 쓰지 않는 물건들은 미리미리 정리해서 단출하게 살다가 가는 게 맞다.

그리고 총선이니 대선이니 선거때마다 노인회장 날뛰는 모습이 꼴사나우니, 이제 투표권도 스스로 반

미래의 사회는 어렵게 그 시대를 살아가야 할 젊은이의 뜻에 맡기는 것이 맞다.


江中後浪催前浪 世上新人趕舊人( 강중후랑최전랑 세상신인간구인)
장강의 뒷물 결은 앞물결을 재촉하고 세상의 새사람은 옛사람을 쫓아낸다.


'Hodie mihi, cras tibi'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로마의 공동묘지 입구에 새겨진 문장이란다.

오늘은 내가 관이 되어 들어왔고, 내일은 네가 관이 되어 들어올 것이니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초고령 사회가 이제 코앞이다.

몽테뉴가 말했단다. '삶에 대한 사랑은 죽음의 자각에서 시작되며 죽음은 생의 일부'라고 했으니, 결코 오래 살려고 애쓰지 말고 다만 의미 있게 살려고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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