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은 신한테 혼나는 기간의 줄임말인가?
30대 초반
나의 30대는 새롭고 거대한 빌런과 함께 시작된다. 나름 원가족에 대한 상처가 큰 만큼 내가 꾸려나갈 가정에 대한 기대도 컸을 텐데...
빌런도 나름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일 테니 남편을 탓하는 것은 아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배우자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고민하지 못하고 결혼을 했던 것이 문제이지 싶다.
그래도 선택을 후회하기보다는 선택한 길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고자 노력하는 편이어서 괜찮다고 합리화를 했었다. 사실 원가족에서 도망치는 느낌이어서 어디로든 탈출하면 좋을 것 같기도 했다. 성격도 성향도 취향도 이렇게 안 맞는데 그렇게 무난하게 결혼한 걸 보면 이것도 인연이긴 할 테지. 결혼 준비할 때는 그다지 내 기호랄 것도 없었고, 세상 물정에 밝지 않다 보니 욕심도 없었다. 대학원의 가난한 남학우들이 ㅎㅎ 나 같은 여자 만나 결혼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무던한 사람이어서 남편이 원하는 대로 맞췄던 것 같다. 연애 때는 서로의 안전한 공간이 있다 보니 볼 꼴만 보여줄 수 있었고 만난 기간도 길지 않다 보니(앞에 썼듯 단둘이 있었던 시간도 적다. 교회의 자녀들었...ㅎ) 그다지 싸울 일이 없었다.
지나고 보니 어른들이 사계절은 겪으면서 밑바닥(화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좀 검증하고 결혼하라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그렇게 파보고 결혼해도 양파 껍질 벗겨지듯 계속 새로운 사람을 발견하는 게 결혼생활이겠지만.
여느 맞벌이 부부가 그렇듯, 임신 전까지는 좀 싸우기도 하고 안 맞기도 했지만 원래 결혼생활이 다 그러려니 했던 것 같다. 뭐, 다들 신혼여행부터 열심히 싸우고 그래도 혼인신고는 갔다 와서 바로 하기는 하고(물리고 싶을까 봐 더 빨리 했나 ㅎ) 그러는 거 아니겠나?!
결혼하고 오히려 연애 때보다 밥 한 끼 같이 먹기 힘들어지고 뭔가 룸메 같은 생활이 시작된다. 그래도 나 역시 한 명의 독립적인 사회인으로 일 하느라 바빴고... 남편은 초반에 이직이 취미였다. 월급이 밀리기도 하고, 사장이랑 싸우고 나오기도 하고.... 한 2~3년간 6번 정도 옮겨 다녔는데 주변이 대부분 대기업이던 나에겐 일했는데 월급이 떼이는 것조차 새로운 세상이었다. 세상에는 돈은 많이 주지만 힘든 회사와 돈은 적게 주지만 여유로운 회사가 있는 줄 알았는데, 돈도 적게 주고 힘든 회사가 많은 것이 현실이었다. 참,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던 햇병아리였다. 남편은 돈 안 따지는 순수한 사람인 척하더니 왜 결혼하고는 돈돈 거리냐고 오히려 비난을 하고 ㅎㅎ 나도 이상주의적인 면에서 벗어나 현실의 사람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돈은 중요한 것이었다!!! 그땐 정말 적더라도 1년에 월급 12번만 꼬박 받아와도 소원이 없겠네~ 했는데 사람은 참 간사하지 ㅎㅎ
서로 성향이 다르다 보니 치열함이라고는 없는 남편이 주로 내 기준에 차지는 않았지만, 물 흐르듯 사는 남편의 삶에서도 배울 점은 많았다. 원가족에서 생존하기 위해 너무나도 치열하게 노력하는 삶을 배웠다면, 남편과의 가정에서는 하고 싶은 걸 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받는 듯하였으나 ㅎㅎ 가정이라는 팀에서 한 명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걱정 없이 살기 위해서는 다른 한 명이 그만큼의 의무와 걱정을 등에 업고 백업을 해줘야 하는 것도 같고... 그때 나는 대학원을 졸업하면 응당 나와야 하는 자격증이 개정되며 나오지 않아 과외와 영어 학습지 방문교사, 출산휴가 간 대학교 조교 땜빵 등을 하며 중구난방 커리어와는 무관한 밥벌이(주로 투잡)를 하고 있었다. (첫 직장이 스토리가 긴데...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며 수난 시대가 시작되었었다.)
힘든 점도 있었지만 이때까지는 그래도 큰 갈등은 없다고, 아니 뭐 그냥 다 이렇게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시간이 나면 게임, 프라모델, 레고... 내 자리라곤 1도 없는 취미 만을 하고 싶어 할 때도...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 락페, 공연, 여행 등등을 같이 가자고 구걸하고 있을 때도 세상이 취미도 좋은 것/나쁜 것 나누고 있을 뿐... 따지고 보면 남편은 혼자 하는 취미파, 나는 함께 하는 취미파.. 그저 다른 거라고 괜찮다고 마음을 달랬다. 나는 선물 주는 걸 좋아했는데 정말 생일이니 크리스마스니 받기만 하고 줄 생각은 하지도 않아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주겠지~ 생각했다. 거짓말을 하고 네가 이렇게 싫어할 테니 너를 배려해서 말 안 한 거라며 화를 내도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넘어갔던 거 같다. 정말 아이를 낳기 전에는 힘든 상대이긴 했으나 큰 문제는 없었던 것 같다(그런데 왜 첫 명절에 대판 싸우고 친구 집 가서 잤니? ㅎㅎ).
주변에서 나에게 대단하다고, 해탈에 이르렀다고 하긴 했다. 나도 약간은 우쭐해서 자기중심적인 남편과 잘 사는 법 강의를 하겠다고 농을 던지곤 했던 거 같다. 그런데 빌런이 이렇게 쉽게 해결되고, 해탈이 그렇게 쉽게 일어난다면 그건 뭔가 본 게임 전 연습게임이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봤어야 했다. 어쨌건 계속 내 목소리를 못 내던 원가족과는 달리 싸울 일이 있으면 싸울 수 있었고 나에 대해서도 더 알게 되었으니 성장의 시간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남편의 자기중심적인 면도 적당히 보듬으며 갈 여유가 있었고 내면의 평화를 지킬 수 있었다. 이제 한 단계, 도약이다! 이 모든 판은 출산과 함께 다시 엎어진다.
나는 다낭성 생리증후군이라 결혼하고 2년쯤 지나고 난임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학습지 선생님 하던 시절 3번쯤 과배란을 유도하고 실패하고를 거듭하던 즈음 원하던 직업(내 전공)에서 일해보자 연락이 와서 임신을 미루기로 한다. 그런데 그러자마자 임신이 됐다. 인생이 계획대로 안 되는 거긴 한데 차암... 그 덕에 자격증 문제 해결하려고 학점은행제 듣다가 조리원에서 회음부 방석 깔고 앉아 시험을 보는 경험도 해봤다.
암튼 나는 힘든 삶도 평범하게 보내는 재주가 있었지만(어디든 원가정보다는 안락했다) 가까운 지인들이 다 고개를 저으며 나는 니 남편이랑 같이 못 산다고 했었다. 남편의 보편적이고 귀여운 만행은 적고 있지만 심각한 문제는 적지 않는 것이 뭔가 ㅎㅎ 명예훼손에 걸리지 않는 선에서 고발글을 쓰는 느낌이군.
사랑이라기보다 인류애가 있다고 주장해왔었는데 그냥 나는 모험심이 있는 것 같다. 너무 쉬운 과제보다 어려운 과제를 해내고 싶어 하는? 이게 인간에 대해 도전 정신을 발휘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바꾸겠다는 의미일 것이고 그것은 매우 폭력적이고 그릇된 시각임을 이제는 안다. 아무튼 그렇게 눈물로 얼룩진(자세한 사건들은 생략) 임신 시기를 보내고(참고로 서운할 일은 많았으나 다행히 입덧은 전혀 없어 과일 심부름 한 번 시키지 않고 수월히 지나갔다) 엄청난 순산과 함께 엄마가 된다. 임신, 출산을 생각하면 아들이 효자이긴 한데 너무 힘든 티를 안 내서(많이 안 힘들긴 했지만 그 이전에 나는 매우 잘 참는 편인 듯) 남편이 힘든 걸 1도 모른다는 단점이 같이 있다. 눈물은커녕 몸을 비비 꼬는 걸 놀렸을 정도로, 조리원은 커녕 병원에서 덥다고 에어컨을 트셨을 정도로, 조리원에 자주 안 왔을 정도로(마지막으로 게임 실컷 한다고... 참고로 취미에 마지막은 없더라).... 언니들이 그래도 보라색 립스틱이라도 바르고 아픈 척 누워도 있고 해야 한댔는데 내가 그걸 못 하기도 했지.
그렇다고 남편이랑 뭐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을 거다. 그럭저럭 투닥대는 미성숙한 부부였겠지. 남편에게 결혼 생활 만족도를 물으면 9점이라고 해서, 나는 3점이니 님이 6점으로 행복도를 좀 양보해야 내가 올라갈 것이라 이야기한 기억이 있다. 남편은... 우리 가정이 아무 문제없는 행복한 곳이었던 걸까? 부모가 된다는 것은 정말 인간이 한 단계 성숙해져 가기 위해 절여지는 시간인 것 같은데 왜 저 사람은 하나도 찌들지 않았지? 아이를 낳고도 모성애 뿜 뿜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우울증 같은 것도 없었다. 남편은 매일 밤 애 다 재우고 나면 11시 넘어야 와서 방에서 새벽 2시까지 게임을 하다 잤지만 나는 너무 좋은 동네 육아 동지들을 사귀어 공동육아에 가까운 연대로 힘든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그럭저럭 평화로웠는데 애 돌 즈음 남편이 큰 잘못을 한다. 잘못은 할 수도 있는데 그 잘못을 회피하느라 남편이 나와 아이를 탓하며 가정에 큰 불화가 왔었다. 이혼 위기였다. 경제적 어려움에도, 배려 없는 태도에도 차마 생각하지 않던 결혼에 대한 후회가 몰려왔다. 한 번 후회라는 걸 하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이 가라앉을까 남들이 다 왜 그러고 사냐고 해도 내 상황을 다큐가 아니라 시트콤으로 받아넘겼던 거 같다. 그런데 정말 그 사건은 심각했다. 그리고 동네 언니들이 같이 울고, 화내 주던 그 시기에도 친정은 나를 외면한다. 그때 나는 한 번 더 상처를 받았었는데 그것 또한 엄마가 '나'를 대하는 마음이 아니라 '엄마'의 문제 해결 방식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때는 정말 어떻게 버텼는지 모를 시간이라 주변인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지. 이렇게 한 발 떨어지면 보이는 것들이라도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아빠로서의 남편도 도저히 이해가 안 갔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이 사람의 입장과 어려움도 이해가 간다. 결론적으로 관계에 서툰 사람이 처음 아빠가 되어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에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며... 본인의 문제를 직면할 용기가 없어 남 탓을 해버렸을 것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쨌건 결론적으로 엄마도 아빠도 불안정 애착인 사람들이어서 아이는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하필 또 이 아이는 에너지가 많은 아이였고, 나는 부모가 되기 위해 태교책을 읽고 육아서를 읽기 이전에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깊이 돌아봤어야 했던 것 같다. 육아를 남편이 아닌 동네 엄마들과 하며 정서적인 지지도 있었겠지만 애정이 넘치는 친구 엄마와 비교하며 자책감을 느낀 날도 많았다. 아이가 내가 엄마여서 불행하면 어쩌지.. 저 엄마가 더 좋다고 아쉬워하면 어쩌지... 겁도 났던 거 같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이것은 아이가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친구 엄마가 내 엄마였다면... 하고 바라던 어렸을 적 나의 마음. 부모가 주는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는, 아이가 돌려주는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해서도 믿음이 없었다. 아니, 사랑이 뭔지 아이를 키우면서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다음 화에 육아와 육아를 하며 느낀 감정들에 대해 더 풀어 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