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mmpi-2 검사에서 내향성 척도가 유의미하게 높게 나올 정도의, mbti에서도 가운데 둘은 중간에 수렴해 바뀌기도 하는데 i랑 p는 고정인... 슈퍼 내향적인 사람이다(물론 친한 사람들은 네가 무슨 내향이냐며 비웃는다... 자극 추구가 높으니 끊임없이 일을 벌이고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 방식은 나름은 매우 조심스럽다. 위험회피도 높아서 ㅎㅎ 안전한 소모임 선호).
에너지의 방향이 내면을 향해있음에도 억눌린 어린 시절을 보내다 보니 자아라는 게 소멸된 상태로 자라 버렸다. 스무 살이 되고부터는 가족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며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고자 노력했던 날들이었다. 흔들리고 혼란했으며 불안정했던, 모난 구석들을 깎아내는 날들을, 그러니까 나라는 존재에 대한 현타를 즐겁고 찬란했으면 좋았을 20대에 지독하게 겪어낸 것 같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 어느 정도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답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를 낳고, 나의 성장을 더욱 촉진시켜주는(=극한ㅋㅋ) 남편과 팀이 되어 (그러나 거의 독박으로) 육아를 해내며 나의 다른 면들을 마주하게 된다(엄청 힘든 팀에서 일하게 되면 그만큼 성장할 수 있지. 성격이 더러워질 뿐 ㅎㅎ).
아이를 키우면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는 말에 초반엔 공감하지 못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작고 약한 존재에게 그렇게 할 수가 있었지?'라는 원망이 더 샘솟은 적도 있었다. 육아가 힘들 땐 그래도 나는 엄마보다는 나은 엄마라는 생각이 위안이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결국 엄마라는 사람이 엄마라는 삶을 헤쳐나갔을 그 힘듦 속에서 나의 높은 욕구는 엄마가 더 좋은 엄마였다고 하더라도 해소될 수가 없었으리라는 한 발짝 더 깊은 이해로 나아간 것 같다.
책과 사람, 그리고 각자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너무 좋아하던 나는 결국 합격과 함께 둘째의 존재를 확인했던 대학원에 고우! 를 한다. 말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진로가 뚜렷한 학과가 아니고 학교 네임밸류가 다운) 의무로 가득 찼던 나의 삶에 하고 싶은 것들을 좀 넣어주고 싶었다. 정말 배워서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무엇이 좋고... 이런 현실적인 면들을 다 떠나 학비는 나의 근로 노동으로 해결되니 일단 재밌을 거 같으면 애들한테 너무 못할 짓이 아닌 선에서 하는 거!! 이런 마음으로...
말리는 사람 중에 계속 내면을 들여다보는 건 이제 의미가 없다고 과거에 얽매이지 말라는 조언도 있었다. 그런데 나의 20대의 들여다봄이 주로 내가 왜 이렇게 망가져있나? 쪽이었다면 30대 중반의 나는 뒤늦게 나를 알아주고 사랑해준 게 미안했고, 나의 힘든 부분들이 그 당시엔 나를 버티게 해 주었던 생존을 위한 애씀이었다는 관점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이들은 물론 너무 소중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이란 엄마인 내가 더 편안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공존해야만 했다.
심리학을 배우는 것은 실로 득과 실이 있었다. 여전히 정신분석이나 대상관계 이론처럼 영유아기가 인생 전반을 결정한다는 이론을 배우면 내 삶은 망한 것 같은 무력감에 빠지기도 했고(+아이와의 애착이 결정적인 시기에 이러고 있는 게 맞나??), 그렇다고 행동주의나 인지 정서행동치료 같은 최근의 이론은 본질을 덮고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을 병리적으로 진단하고 바라보지 말고 각각의 고유하고 평범한 이야기를 가진 인간으로 바라보는 입장의 교수님들과 공부를 하며(예를 들면 이상심리학 수업엔 내 안에 이상심리를 발견해보는 보고서를 매주 썼다. 누구에게나 있는 것들이고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 생각하지 않으면 내담자를 문제로 보기 쉬우니)... 여러 매체를 통해 다양한 내면들을 바라보는 이 공부가 참 재미있었다.
물론 즐겁기만 한 대학원 생활이지는 않았지. 열심히 공부만 하는 20대 선생님들과 더 열심히 공부하는 자녀들 다 키우고 대학원 진학하신 50대 이상 샘들 사이에서 맘데렐라로 공부하는 건 쉽지 않았다. 특히 나는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엄격하고 완벽주의자에 가까운데 하필 둘째는 내가 옆에 없으면 바로 깨는 아이라 재워놓고 공부하기도 힘들었고... 과제만 겨우겨우 쳐내는 생활.
오전에는 수업을 하고(생업), 오후에는 수업을 듣고 부랴부랴 어린이집에서 애들을 찾아와 저녁 먹이고 재우고.... 주말에는 수업 준비와 과제에 묻혀 지내고...
솔직히 다시 하라면 못 할 거 같다. 그래서 소진되지 않기 위해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퐁당퐁당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부끄러운 상태로 ㅎ 그런데 뭐 어차피 평생 학문을 통해 배우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모르는지 아니겠는가.
글자보다는 사람이 재미있고, 살아가면서 가장 마음껏 바라볼 수 있는 나... 그리고 사랑스러운 자극추구+위험회피 높은 예민이 하나, 위험회피 높고 감각 예민 하나... 우리 아이들(+남성 심리학=아동 심리학이 맞는지 실험해볼 수 있는 어른 하나... 이론적인 부분은 농담입니다.)에 대해 오롯이 바라보고 느끼고 알아갈 수 있어서 재미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장단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코로나19의 장점을 찾아보자면 '가족'의 시간이 늘어난 것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내내 관심이 많던 내면 아이를 생각해볼 기회가 많이 있었다.
나는 감정이 매우 꽁꽁 싸매져 깊고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다 보니 아직도 아는 것 말고 느끼는 것에 서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감정이라는 것이 풍부하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아니라 인지적으로 전달이 되고 있는 것 같지만 나여서 아이에게 줄 수 없는 것만큼 나만이 아이에게 채워줄 수 있는 좋은 것들도 많이 있으리라 믿어본다.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 부르는 목소리에서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저~~ 집 엄마처럼은 될 수 없을 것이고 아이가 언젠가 누구를 부러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이가 살면서 풀어내고 성장해야 할 숙제로 남겨두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어차피 어떻게 키우든 무언가 결핍이 있는 존재가 사람이고, 결핍의 결핍도 문제 아니겠는가.
굽이굽이 깔려있는 좌절과 고통들을 넘어서며 우리는 조금씩 삶의 가치를 느끼는 것 같다.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은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서도 그보다는 상처받았을 때, 위안을 얻어갈 수 있는 그런 존재로 곁을 지켜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아이와 함께 나라는 사람의 마음과 에너지를 살피며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행복을 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