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도망친 것이 결혼?!

20대 후반

by 밍밍

20대엔 정말 몰랐다. 나이차가 좀 나던 언니들이 왜 내 젊음이 예쁘다고 하는지. 스스로 한 번도 내가 '예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30대 후반의 어느 날 20대 사진을 어쩌다 보게 됐는데 진짜 반짝반짝 빛이 나는 거다. 아, 이게 젊음이구나. 오늘은 20대 막바지의 이야기이다. 드디어 연애담도 나온다(별 건 없다 ㅎ).


미국에서 돌아온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그런데 그러려면 대학원을 가야 했다. 그래서 취직하라는 부모님 닦달에 성의 없이 이력서를 몇 군데 넣고 다 떨어졌으니 대학원을 가겠다고, 가면 장학금, 조교 등으로 돈도 안 든다고(아니었다ㅠ) 설득해서 동대학원... 일반대학원에 진학을 한다. 한동안 살면서 가장 후회했던 선택 중 하나였다. 일반대학원은 나에게는 감옥이었다. tci랑 자꾸 엮어서 tci에게 미안한데(기질 탓하는 건 아냐ㅠ) 자극 추구가 높고... 강점 검사를 해도 호기심이 1위, 학구열이 2위가 나오는지라....(이 둘은 매우 결이 다르다... 호기심이 더 많으면 한 우물만 깊이 파기가 힘든 듯 ㅎ) 정해진 공부만 허용되는 분위기가 일단 너무 힘들었다. 소설책 한 권 읽을 시간이 없는 삶이라니... 처음에 대학원을 간다고 할 때 주변 사람들은 내가 문화예술 분야로 가는 줄 알았을 정도로 문화생활을 좋아했었는데 진짜 주말도 없이(교수님이 입학 때 말씀하셨다. 너네는 연구자고 공부가 직업이야. 맨날 야근이었지ㅠ)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학문을 한다는 것이 정말 안 맞았다. 평소 황희 정승 스타일로,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는구나 정신이 탑재되어 있다 보니 서로 다른 의견이 각각 다 이해가 가고 그럴 수 있겠다 싶은데 그걸 몇 시간씩 논쟁을 하고 토론을 하는 것이, 그래도 답은 나올 수 없는 문제다 보니 제자리인 것이 너무 소모적으로 느껴졌고 무엇을 위해 날을 세워야 하나 싶었다. 쓰다 보니 변명이 길다. 그냥 나는 또 부적응했다. 그래서 모두가 당연히 이어가던 박사는 도저히 갈 수 없었다.


다들 죽자고 공부하는데 생각해보면 에너지가 분산되어 우수한 학생이 될 수 없는 시기였던 거 같기도 하다. 그렇다. 나는 대학교 졸업 즈음 첫 연애를 시작했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받기 힘들다고, 소소한 짝사랑이나 썸은 있었어도 이성이나 연애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앞 에피에서 말한 유럽여행 ㅎ 프랑스 민박집에서 한 오빠를 만났었다(미리 설레지 마시라. 이분이 남자 친구 된 건 아니고...). 각각 혼자 아침을 먹다가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비포선셋' 투어를 간다는 것이다!! 그 영화를 매우 좋아했기에(한 때 이상형이 에단 호크였다) 혹시 오늘 하루 같이 다녀도 될지(낯 가리는데 신기) 물어봐서 합류를 했었다. 그런데 음악 취향도 찰떡이었다. 그렇게 영화에 나온 서점에서 캐스커(융진 팬이셨) 노래를 mp3으로 같이 들은 기억이.... 아! 갑자기 막다른 추억으로 빠져드는데 아무튼 그때 카페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나의 낮은 자존감을 보여줬던 것 같다. 그때 내 인생을 스쳐 지나가던 한 이성이 이야기해준 "너는 사랑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 사람이야."라는 말이 얼마나 큰 위안이었는지 알까?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도 사람은 서로를 치유할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다 여하튼 한국에 돌아와 연극 초대권 구인으로 같이 연극을 본 동갑내기 남자아이와 썸을 타다 사귀게 된다. 다행히 나쁘지 않은 연애였던 것 같다. 처음엔 그 친구가 나를 쳐다보는 게 너무 어색하고 쑥스럽고 콤플렉스 돋아서 눈을 못 맞췄던 거 같은데 그런 모습까지 귀여워해 주고 품어준? 그런데 너무 나한테 맞춰주는 사람은 매력이 없었는지(나쁜 남자 취향이었나 봄) 1년 좀 넘게 사귀고 이별을 고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대학원생이던 이때 나쁜 남자를 사귀고야 말았다. 공부해야 하는데 이리저리 휘둘리는 연애를 했다. 그리고 생각처럼 조교나 장학금의 기회가 많지는 않아서 알바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논문도 쉽지가 않았다. 석사인데... 논문 주제가 자꾸 엎어져 논문을 무려 세 학기 동안 썼다..... 지금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는데 저 때는 내가 세상 루저가 된 것 같았다. 실패자. 돌이켜보면 겁이 많아 실패할 만한 일은 도전도 해오지 않았기에 익숙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타격이 컸던 것 같다. 마침 그 나쁜 남자 친구와도 1~2년 사귀다 매우 안 좋게 헤어지고 멘털이 바스러진 나는 교회로 도망친다.


여기서 내 신앙 스토리를 잠깐 풀자면 아버지가 불교대학까지 다녔을 정도의 불교 집안에서 나 혼자 기독교라(엄마가 우리 3남매를 선교원에 보냈었는데 나만 교회가 좋아서 남았다) 교회를 다니다가 뭐 좀만 잘못하면 할머니가 교회 못 가게 해서 못 가다가를 반복한 마음만 크리스천이었다. 대학교에 진학하고는 술 마시고 싶은데 맘이 불편해 개종해보겠다고 성당에 가본 적도 있으나 나에겐 교회가 맞다고 느껴졌다. 대학생 때 교회에 다니고 싶어 몇 군데 가봤는데 적응이 쉽지 않았고, 그러다 빠져있던 봉사단체가 일요일에 활동을 했어서 안 다녔었다. 그렇게 밑바닥이라 생각할 때 간 교회에서 나는 화르르 불타올랐고 40일 새벽기도를 하려고 엄마와 싸워가며 교회에서 자는 지경까지 이르렀다(나란 사람 왜 이리 극단적인가). 현 남편은 이 교회에서 만났다. 서로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나는 남편을 날티 난다고 봤고, 남편은 나를 까칠하다고 봤다. 그런데 월화수목금토일 교회를 가다 보니 매일 보게 되었고, 나는 논문이 자꾸 엎어져 시간이 많았고 남편은 일을 그만두고 카페 알바를 하기 시작해 시간이 많았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나고 우리는 정이 들어 사귀게 되었다. 남편은 그 연애하기 좋은 여초 집단에서 모쏠이던 신기한 사람이었어서 특이한 점이 많았지만 몰라서 그러려니 했다. 나도 뭐 그리 연애를 많이 해보거나 익숙하진 않았으니. 그리고 매일 교회를 나가다 보니 단 둘이 데이트를 하거나 여행을 가거나 할 일이 거의 없었다. 진짜 홀리한 교제였다.


그런데 1년도 안 만나고 결혼을 하게 된다. 잠깐! 홀리? 아기? 그럴 리가. 어쩌다 보니 둘 다 혼전순결 주의 자랄 건 아니지만 그리했음(저는 억압이 심한 성격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전 남자 친구들 리스펙트)..... 교회는 참 신기한 곳이다. 아무튼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는데... 엄마가 퇴직을 하시며 집을 통제하기 시작하셨고(엄마는 교장선생님이셨다....) 언니가 바로 도망쳤다. 결혼으로... 그래서 석사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자마자 나도 도망쳤다. 엄마는 원래 여자 나이 서른 넘으면 노처녀라고 선을 보게 하시려다 남자 친구 있음을 처음 밝히니 신상을 묻더니 결혼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 그런데 시어머님이 서울 올라오실 일이 있어 같이 만나고는 마음에 든다고 여자 친구 있을 때 빨리 결혼하라고, 남편 반지하 원룸 전세 만기이니 신혼집 얻어서 이사하면 돈 아끼지 않겠냐고 훅 들어오셨다. 나는 모르겠는데 남편은 나랑 결혼해서 사는 게 그려진다고 했다. 한 명이라도 확신이 있으면 맞나 보다~ 생각했다. 우리 집은 내놓은 자식으로 키웠다 보니 강하게 반대는 못하고 "너 외국 좋아하니까 외국인은 어떠니.." 정도의 반대? 남편은 지방 전문대를 나온, 부모님은 시골에서 트럭 운전을 하시는, 월급도 나보다 적던... 부모님 뿐만 아니라 모두가 반대하던 사람이었다. 같은 교회 청년부이고 남편이 먼저 다녔는데 청년부 목사님도 반대했다. 남편은 교회가 조건을 따지냐며 분노했지만 생각해보면 목사님은 성격을 보고 딸이면 말리겠다고 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당시 속물 알레르기가 있던 나는 반대할수록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29살에 결혼했고, 대학 동기들 중에는 1번이었으며 원래 결혼은 다 경기도 주공 아파트 전세로 하는 거지...(당시 1억 초반?)라고 별 생각도 계산도 없었던 것 같다.


대학교 때 친구들이랑 재미 삼아 사주카페 같은 데 가면 서른 전에 결혼하면 두 번 결혼한다고 했었는데 나는 29살 12월 후반에 결혼했다. 금기를 깬 것처럼. 그래서 나의 두 번째 결혼은 마음속 희망 ㅎㅎ 나에겐 아직 기회가 남아있어!!! (농담입니다...) 검증은 커녕 파악도 덜 된 미지의 남자와 나는 이렇게 덜컥 결혼하고 서른을 맞는다.


아! 하나만 더!! 논문을 쓰면서 독서치료를 배웠다. 그러고 보면 멀티는 나의 힘 ㅎㅎ 이때 나의 소득은 그림책 사랑이고, 잃은 건... 상담 이론을 배우며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더 힘든 상황이었는데 같이 수업을 듣던 분들의 90% 이상이 어머니들이셨다. 그래서 집단 상담이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혼자 자식의 입장에서 엄마를 대변하는 스무 명가량의 엄마들과 맞서는 느낌? 이 또한 나에게 필요한 시간이었을지, 그리고 교회에서 엄청나게 울었다. 나는 잘 울지 못한다. 특히 소리 내어 울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울 일이 있으면 화장실에 가서 소리 없이 울었다. 그런데 이때 교회에서는 정말 쏟아내며 울었다. 왜 우는지도 모르게 운 적도 있고, 지금 상황이 힘들어서 운 적도 있고, 다 아신다면서 왜 나를 그렇게 두셨냐고 운 적도 있다. 나름 내면적으로 처절했던 시기였던 거 같다. 제목을 지을 땐, 내가 순간순간 회피하고 도망쳤다고 생각했었는데 쓰면서 생각해보니 나는 순간순간을 치열하게 헤쳐나갔던 거 같기도 하다. 나를 너무 힘들게 했던 가족을 내가 책임지고 구원해야 한다는 교회의 논리도 너무 억울했고, 그래도 그래서 나를 먼저 만나 주신건 가 감사하기도 하고 교회에서 정말 울고 웃었던 것 같다. 감정이 아주 찐했던 시기인데, 코로나로 요즘 내가 홀리 하지 못해서... 기억하지 않고 넘어갈 뻔했다. 사람은 참 간사한 존재일세...


다음 화부터 결혼생활과 육아기다. 살아보니 이때부터가 진짜 성장기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게 진짜 사람의 밑바닥을 들여다보고 치워가며 어른이 되는 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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