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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총량의 법칙

by 김소희

어릴 적 나는 무식이 반푼이었다.


참 공부를 못하는 아이였다. 엄마는 내가 공부와 인연을 맺길 원했다.

그 시절 필수 코스인 서예학원을 시작으로 아이템플 학습지를 했고 주산암산 학원을 다녔다. 초등 고학년 때는 친구와 과외를 한 기억도 있다. 이건 1-2달 했던 것 같다. 더 길었을지도 모르지만. 과외를 금방 그만둔 건 참 잘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도 부모님께서 나한테 공부를 하라며 쏟은 돈이 조금 아깝다.

그때 나는 공부할 준비도 자세도 되어있지 않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들어가며 간혹 단과 학원을 다니며 학교에서 하는 야자(야간자율학습)에 참여했다.

난 12년 개근을 할 만큼 성실한 학생이었다. 학원도 가는것도 마찬가지였고 야간 자율학습도 꼬박꼬박 참여했다.

그 결과, 여전히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었다.

행동은 모범생이지만 성적은 바닥이었다.

(친구의 말을빌리자면) 원없이 놀기라도 했으면 핑곗거리라도 있을 텐데 나는 그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중간 아이였다.

그때를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어른이 된 내가, 어린 나를 보자면 참 안타깝다.

그중에서 제일 아쉬운 건 고등 2학년에 올라가며 문과, 이과를 나눌 때다.

친구 따라 문과를 선택했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던 내가 문과라니. 그때 이과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두 번째로,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제2외국어가 불어와 일본어가 있었다. 중학교 3학년 일본어를 배웠던 터라 일본어를 선택했는데 똑하고 떨어졌다.

각해보면 제2외국어 배정은 그냥 랜덤이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일어 신청에 o표시가 전부였다. 배운적이 있는지 할 줄 아는지 그런걸 적는 칸은 없었다.

가뜩이나 언어 쪽은 젬병인데 그나마 관심 있어하던 일본어와 인연도 끊긴 셈이다.

고등학생 때, 좋아하던 과목들과 (자의든 타의든) 모두 끊긴 셈이다.


그 와중에도 소소한 재미를 찾았다.

나의 즐거움은 야자시간에 깜깜한 창밖을 보는 것과 쉬는 시간에 다른 반 친구 얼굴 잠깐 보고 것이었다. 그리고 HOT (나는야 club hot)

공부와는 동 떨어진 고등3년을 보낸다.


수능을 보고 다음 해 또 수능은 치뤄 대학에 입학을 했다.

이럴 줄 알았다. 역시나 결론은 공대다.

(문과는 내가 갈 곳이 없다는 걸 삥~ 돌고 돌아 알게 된 것이다.)

이제야 내 자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공부가 재미있었다. 수업에 집중했다.

게다가 일본어 수업은 A+을 받았다.

2년간 참 즐거웠고 의욕도 넘쳤다. 졸업과 함께 직장인이 되었고 또 공부와는 멀어졌다.


몇 년 전 취득한 환경기능사와 대가환경 산업기사가 마중물이 되어 마흔 넘은 나를 학생으로 만들고 있다.

이런 걸로 봐선 내 공부 총량은 1/4도 차지 않은 것 같다.

느낌이 맞는지 아닌지는 부딪혀봐야 알겠지만, 그보다 꽃다웠지만 아쉬운 고등학교 시절을 만회해보고 싶다.

그 시절 공부를 하지 않고 빈 공간을 많이 남긴걸 고맙다 말하고 싶기도 하다.

그때 총량을 꽉 채웠다면 지금 이 설렘을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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