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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콧물을 타고

by 김소희

며칠 동안 옴팡지게 아팠다.

지난 4-5년간 이렇게 아팠던 적이 있었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지난해 꽃게를 먹고 장염에 걸린 걸 빼면 병원에 간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자도 자도 잠이 쏟아졌다

얼굴에 주름 진다며 천정을 보며 눕던 나인데 그런 걸 신경 것까지 쓸 겨를이 없었다.

밤이 되면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올리고 배를 바닥에 깔고 얼굴을 베개에 파묻었다.

감기는 약 먹으면 일주일, 안 먹으면 7일 만에 낫는다고 한다.

이 말을 믿고 버텨보았다. 사흘째 되는 날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코감기이고 다른 이상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머리가 깨질 듯 아픈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나의 증상을 들은 의사는 코가 막히면 머리가 아플 수 있다고 했다.

속 시원한 답을 듣지 못하고 찜찜한 마음으로 진료실을 나왔다.

마음이 삐딱해졌다. 불신이 싹을 텄다.

처방전을 들고 약을 살까 말까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약국을 지나쳐 건물을 빠져나왔다.


늦은 오후, 지하철을 탔다. 다행히 자리에 앉았다. 아싸!

추위에 떨다가 따뜻한 곳에 들어오니 코 끝으로 콧물이 모여들었다.

티 안 나게 옷소매로 꾹꾹 누르길 여러 번 했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 무릎에 올려놓았다. 온 신경이 코에 집중되어 도저히 펼쳐진 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졸졸 흐르던 시냇물이 점점 큰 강으로 변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가방 속에 있는 휴대용 휴지가 떠올랐다. 여유로운 손길로 꺼냈다.

'앗, 새 거다.'

점선을 가르는 손이 떨린다. 이런, 안 뜯어진다. 과자 봉지 뜯듯이 두 손으로 점선 양쪽을 잡아당겼다.

한 장을 꺼내고 싶었으나 마음이 급하여 손에 잡히는 뭉텅이를 바로 코로 가져갔다.


"그렇게 슬퍼?"

옆자리에 있던 지인이 물었다.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을 보내자 내 무릎 위 책을 가리켰다.

-1리터의 눈물-

콧물과 눈물이 흐를 이유가 충분한 책이었다.

여전히 휴지 뭉텅이를 코에 대고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아리송한 웃음을 지으며 위기를 모면했다.


어릴 적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내 생일즈음 되면 온몸이 한 번씩 아프다는 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픈 곳이 있냐 감기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물어보니 컨디션이 좋다고 했다.

지난주에 봤을 때 보다 목소리도 더 밝아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일 년에 한 번씩 아픈 엄마의 통증을 올해는 내가 대신 겪나 보다.

'다행이네.'

진통제 한알을 입에 넣고 물을 마셨다.

큰 행복을 만나기 전에 소소한 진통이 먼저 스쳐 지나가기 마련이다.

내년에 얼마나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 있으려고 올 연말에 지독한 감기에 걸린걸까.

불현듯 편입 신청 결과가 언제 발표되는지 궁금해졌다.

지금 하는 일에 학교 공부까지 하면, 당분간 아플 시간이 없을 것 같아 하늘이 배려해주나 보다.

'감기를 선납 했지머야~'

엄마의 통증을 대신 겪은 것도 좋고 내년에 있을 대운을 위한 액땜이었어도 좋다.

새로운 해가 되는 순간, 보고싶었던 친구처럼 두 팔 벌려 반갑게 인사할것이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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