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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Nov 27. 2023

길고 긴 제주도 앞잔치

딸은 엄마 인생을 닮는다고? - 7

"우리 식구 다 갈 거야 그날 보자. 그래. 들어가라"

통화를 마친 시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제주도 고모의 딸 (나는 제주도 아가씨라고 부른다)의 결혼식 날짜를 알려주기 위해  온 전화였다. 결혼식 날 까지는  시간이 꽤나 남아 있어서 비행기표 예매를 서두르지 않아도 되었다. 

'모두 간다니까 나는 안 가도 되겠지? 표 끊을 때 말해야겠다' 며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슬슬 티켓을 사야 할 시간이 왔다. 

"자기야 비행기표 말이야 몇 시대로 예매하는 게 좋을까? 그리고 나는  안... 가... 도.. 돼..."

"아 맞다. 내가 말했었나? 엄마랑 내 동생 안 간대. 아빠랑 우리 표만 예매하면 될 거 같아"

"응? 말 안 했어. 갑자기 왜?"

"머 그렇게 됐나 봐. 자기 한복 있지?"

"나? 한복은 왜?"

"엄마가 안 가니까 엄마 대신 자기가 한복 입어야 한다고 그러던데" 

"나 지금 입을 한복 없지."

"우리 결혼할 때 입었던 거 입으면 되잖아"

"다음 달이면 임신 7개월인데 결혼 때 입었던 한복은 몸에 안 들어가지"

내가 한발 늦은 듯했다. 나도 일찍 말해 놓을걸.. 후회했다.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결혼식 때문에 가는 건데 너까지 꼭 가야 하니? 난 안 갔으면 좋겠다. 홀몸도 아니고 큰 애까지 데리고 가면 힘들 텐데.." 친정 엄마의 말에

"요즘은 태교 여행도 간다잖아, 큰 애한테 바다도 보여 주고 겸사겸사 여행 간다 생각하지 머~"

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은 나도 안 가고 싶었다. 아직 겪어보지 않았는데 마치 겪어 본 듯이 미래가 그려졌기 때문이다.  


결혼식 2일 전 제주도로 출발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시아버지는 고모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물었고 대답을 들은 남편은 호텔로 차를 몰았다. 고모 집 근처 번화가에 위치한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곱게 단장한 고모가 이리로 오라며 손짓했다. 테이블이 쫙 깔린 행사장으로 들어갔고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도 모른 채 안내되는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밥과 반찬이 내 앞에 세팅되었다.  


제주도는 결혼식 3일 전부터 식사를 대접한다. 피로연을 결혼식 앞에 한다고 하여 일명 앞잔치라고 부른단다. 예전에는 7일 정도 진행되었는데 현대식으로 짧아진 게 3일이란다. 호텔 홀이나 식당을 빌려 3일 내내 가족, 지인들이 와서 밥을 먹는 것이다. 식권 그런 거 없다. 그냥 와서 인사하고 밥 먹는다. 

고모네 잔치에는 한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밥과 미역국이 기본이었는데 미역국에 성게로 짐작되는 게 들어 있었고 반찬은 두부와 삶은 고기 등이 나와서 먹은 후에도 속이 편해 좋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아버님을 따라 피로연장으로 다시 갔다. 아침밥을 먹었으나, 입으로 먹었는지 코로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밥 한 수저 입에 넣으면 '친척 어르신이 왔다'는 말에 벌떡 일어나 인사하고, 애 한 수저 밥 먹이면 일어나 인사하고 밥 먹는 내내 긴장하고 있어야 했다. 

다들 서로 인사하고 악수를 하는데 누가 누군지 모르는 나는 그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웃고만 있었다. 

"느그야?"  입을 앙 다물고 남편 옆구리 쿡쿡 찌르며 복화술로 물었다.

"나드 믈러" 남편도 시선을 앞에 고정하고 복화술도 대답했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 그래그래 가자~" 큰 애를 앞세워 건물 밖으로 탈출했다. 한적한 길을 따라 몇 분 걸었을까.. 아버님한테 전화가 왔다. 친척 어르신이 왔으니 인사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네, 바로 갈게요"

걷던 발을 멈추고 뒤로 돌아 피로연장으로 향했다. 손주 자랑하고 싶은 시아버지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기뻐할 누군가를 생각하며 밝아지려 노력했다. 

어르신께 인사를 드리고 빈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자연스레 내 앞에 밥이 놓였다. 아까 먹은 밥이 아직 꺼지지 않았지만 안 먹겠다고 말을 못 하고 안 먹자니 차려진 음식이 아까워서 또 수저는 들었다. 

'배불러 먹기 싫다 싫다.' 하면서도 먹기 시작하니 잘 먹는 내가 신기했다. 

큰 애가 밥을 먹으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번쩍 들어 올려 배불뚝이 (뱃속 아기 때문인지 밥을 많이 먹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엄마 배 위에 앉혀서 방으로 돌아왔다.  '나도 누워야겠다' 생각하며 바닥에 등을 붙이려고 할 때 또 전화벨이 울렸다. 

.

.

제주도에 왔으니 한 끼 정도는 맛집에 가서 먹고 싶었다. 하지만 앞잔치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고 제주도의 결혼식 전야를 그 곳에서 하얗게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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