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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Nov 28. 2023

내가 제주도 결혼식에 가면 안 되는 이유

딸은 엄마 인생을 닮는다고? - 8

제주도 아가씨의 결혼식날이 되었다. 가져온 캐리어에서 샤랄라 원피스를 꺼냈다. 임신 7개월의 배불뚝이 된 나는 평소 빅사이즈 사이트에서 구입한 펑퍼짐한 티셔츠에 밴딩 바지를 즐겨 입지만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를 대비하여 행사용 원피스를 하나 장만해 놓았었다. 

보기만 해도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는 이쁜 원피스를 입고 화장품을 꺼내어 모나리자 같은 나의 눈 위에 눈썹을 그려 넣었다. 생기를 내뿜는 입술을 위해 립글로스를 바르며 결혼식에 갈 변신이 끝났다. 아이의 옷을 입혀 고모집으로 걸어갔다. 

먼저 와 계셨던 시할머니는 우리를 보자마자 머라 머라 소리를 지르셨다. 

[참고* 시할머니는 찐 제주도 분이라서 누군가 해석해주지 않으면 나와 남편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진정 공부가 필요한 제주어다.]

시할머니의 눈이 나를 향해 있는 걸로 봐서 아마도 나에게 역정을 내시고 있는 것 같아 잔뜩 주눅이 들었다. 못 알아듣는 나는 눈만 깜빡였고 시할머니의 말을 들은 고모는 얼굴이 빨개지셨다. 해석을 바라는 눈망울에도 고모는 입 속에서만 말이 맴돌 뿐 좀처럼 입 밖으로 뱉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최대한 빙빙 돌려 좋게 포장하여 알려주셨지만 할머니의 말투를 대입하여 해석해 보자면


"임신한 사람은 결혼식장에 가는 거 아니다. 넌 가지 말고 여기에 남아 있어라!"


준비 없이 맞이한 어퍼컷에 정신이 혼미한 상태가 되었다. 말을 해주고도 이 상황이 민망한 고모는  할머니가 자리를 비우신 사이 나에게 다가와서 "할머니는 다리가 아프셔서 결혼식장에 못 가시니까 넌 그냥 식장에 와도 된다" 고 속삭였다. 비밀 접선이라도 하듯 난 고모를 보지 않고 먼 산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작전을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난 시할머니의 눈을 피해 식장으로 가는 차에 올라타는 데 성공했다.


예식장에 도착하여 "나 화장실에 다녀올게"하며 시아버님과 남편만 식장 안으로 들여보냈다. 나는 큰 아이와 로비에 남아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건물 밖으로 나가 동네를 돌고 다리 아프면 로비로 들어와 앉아 있기를 반복했다. 

식장에 가지 말라는 시할머니의 말이 계속 떠올라 본식장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서 불청객이 된 느낌이었다.


내가 자란 동네에서는 '동생 결혼식에 결혼 안 한 손위형제 (언니, 오빠, 누나, 형)는 식장에 들어가지 말라'는말이 있다. 이유도 시작도 알 수 없고 믿을 사람만 믿는 '카더라' 뉴스 같은 이야기다.

내가 결혼할 때 친오빠는 미혼이었는데 미신이 신경 쓰였던 오빠는 동생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식장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로비에 서 있다가 사진 찍을 때 들어왔다는 말을 한참 뒤에 들었다. 

미신을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생한테 안 좋을 수도 있다니 오빠로서 만. 약. 에.라는 작은 티끌조차 없애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 내 행동을 보며 그날의 오빠의 모습을 잠시 상상해 보았다.


결혼식이 끝나고 다들 식장밖으로 우르르 나왔다. 반가운 남편을 붙잡고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 밥은 어디에서 먹어?"

"여기 밥 안 준대"

"왜?"

결혼식 전에 식사대접을 다 했기 때문에 결혼식 당일 식사 대접은 없고 대신 하객들에게 답례품을 나눠준단다.  처음에는 포장된 선물을 주시기에 아니라고 괜찮다고 거절했는데 알고보니 모두에게 주는 답례품이었고 여기 풍습이니 받는 거라고 했다. 집에 가서 뜯어보니 커피 1kg 팩이었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조금씩 다른 문화가 참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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