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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Dec 04. 2023

옥돔미역국과의 배고픈 만남

딸은 엄마 인생을 닮는다고? - 10

 고모는 우리가 제주에 내려올 때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집에서 밥 한 끼를 차려주시곤 한다. 요리 잘하는 고모가 차려주는 리얼 제주 가정식 백반을 나는 너무 좋아한다. 


생선이 들어간 미역국을 처음 만난 것도 고모의 집이었었다. 미역국 속에 물고기가 두 눈을 부릅뜨고 국물 밖을 염탐하듯 보고 있었다. 그 녀석의 동그란 눈과 이불 홑청 꿰맬 때 쓰는 대바늘 만한 가시들이 국물 속을 떠다니는 모습에 나는 잔뜩 겁을 먹었다.

강렬한 첫 만남에 '헉'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걸 누르며 "잘 먹겠습니다." 씩씩한 목소리로 고모에게 인사했다. 밥과 반찬을 먹으면서도 미역국이 자꾸 신경 쓰였지만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생선미역국이라는 끝판왕을 미루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잔뜩 힘이 들어간 손으로 수저 끝 부분을 국그릇으로 서서히 가져갔다. 생선가시와 미역이 없는 쪽에서 국물만 조금 떴다. 눈을 질끈 감고 들 숨에 맞춰서 한입을 호로록 들이켰다.

엄청 비린맛이 날 것 같았는데 예상외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했다. 괜찮았던 첫 느낌은 나의 마음을 놓이게 했고 그 뒤로 옥돔 미역국, 우럭 미역국 등은 보통의 미역국처럼 편안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내가 집에서 끓여 먹지는 않을 테지만 누군가가 만들어 준다면 고마운 마음으로 기꺼이 먹을 수 있다.


  그날은 아침 일찍 고모집으로 갔다. 고모집으로 들어서자 시할머니도 와 계셨다. 시할머니와 함께 밥을 먹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서 긴장이 되었다. 

눈치껏 싱크대에 올려진 반찬 그릇을 상으로 옮기고  다 같이 빙 둘러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 밥 먹는 걸 도와주었다. 밥 한 그릇 뚝딱 먹은 아이들을 고마운 마음으로 밥상 멀리 보내고 나는 밥상 앞으로 바짝 붙어 앉았다.  아이들을 먼저 먹이고 나는 나중에 편히 먹으려는 작전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미역국에 있는 옥돔의 가시를 다 발라내고  수저에 한가득 밥을 떠서 입으로 가져가려는 찰나였다. 

어디서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설마.. 이 낯설지 않은 이 냄새는.. 혹시나...' 하며 아이를 살펴보니 안 좋은 예감을 틀리지 않았다. 냄새가 기저귀를 뚫고 나와 더 퍼지기 전에 빠른 속도로 옆구리에 아이를 끼우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모두 식사 중이시니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최대한 냄새가 밖으로 나가지 않게 깔끔한 뒤처리를 하였다. 


나오자마자 나의 시선은 밥상을 향했고 깜짝 놀랄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그릇을 하나씩 치우고 있었다. 시할머니는 언성을 높이며 나를 보고 소리쳤다. 알아듣기 힘든 제주도 말의  해석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나의 눈은 얼굴이 붉어진 고모를 바라보았고 고모는 시할머니께 "그런 말 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시할머니는 고모의 말을 반박하듯이 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다시 큰 소리 내셨고, 두 분이 다투시는 것 같아 걱정이 되어 아버님을 급하게 바라보았다. 아버님을 무심한 표정과 말투로


"너 빨리 밥상 치우라고 하신다"


난 고개를 끄덕일 시간도 없이 재빠르게 아이를 남편에게 넘겨주고 상 치우기에 동참했다. 고모는 여전히 빨간 얼굴로 

"됐다. 그만하고 가서 앉아있어도 돼" 하시며 내 손에 있는 행주를 달라고 하셨다.

"아니에요. 저 괜찮아요. 당연히 해야죠~"

 

시트콤 같은 이 상황에 웃음이 났다. 사실, 웃지 않고 이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자괴감에 빠져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밝게 웃으며 나의 마음을 감추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너무 배가 고프다.

 고모가 끓여준 옥돔 미역국을 못 먹어서 아쉬운 건지. 배가 고파서 서러운 건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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