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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Dec 07. 2023

치매는 오늘도 예측불가

딸은 엄마 인생을 닮는다고? - 11

"이번주에 가자고?"

"응"


이렇게 갑자기 제주도에 간 일은 없었던 터라 남편에 말에 살짝 놀랐다. 게다가 항상 함께 가던 아버님도 없이 오롯이 우리 네 식구만 가자는 말에 어떤 의미가 숨어 있는 건 아닌지 내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는 게 우선이었다. 다행히 빈자리가 있어서 계획대로 2일 후에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바로 시할머니 댁으로 갔다.  우리 식구와 시할머니만 마주 앉아 있는 모습은 아마 처음일 듯싶었다. 아이들이 옆에서 조잘거리며 애교를 부려 준 덕분에 어색함이 조금 줄어들어 다행이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제일 큰 문제는 시할머니와의 대화였다. 평소에는 시아버님이 시할머니의 말을 전달해 주시곤 했는데 오늘은 통역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부담으로 느껴졌다. 남편과 나는 할머니의 한마디 한마디에 모든 감각을 곤두세웠다. 수능날 영어 듣기 평가 때에도 이 정도로  간절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동안 귀동냥으로 들었던 단어들이 조금 들렸고 '아.. 이런 의미의 말이겠구나'하는 느낌이 왔다. 초반 긴장은 사라지고 기쁨과 자신감이 생겼다. 대화가 길게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액기스만 쪼-옥 뽑아 올린 진한 대화였다고 자화자찬했다.  


"내일 아침에 올게요"

일어나려 하는 남편의 손을 시할머니가 슬며시 잡았다. 남편은 생각지도 못한 온기에 놀라며 할머니의 손을 바라보았고 나는 눈물이 그렁한 할머니의 눈을 보았다.

"초자와줭...."

뒷말을 잇지 못하고 조심스러운 할머니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남편은 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반쯤 일어났던 다리를 다시 접으며 자리에 앉았다. 자신의 손을 잡은 할머니의 손위에 남편의 남은 한 손을 더 포개었다. 

집 밖을 나오는 우리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게다가 제주어 리스닝까지 가능하게 되었다며 서로에게 엄지 손가락을 척 올려주었다.


다음날 아침 숙소를 나오자마자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툇마루 위에 상보자기가 덮인 큰 은색 쟁반이 있었다. 보자기를 들춰보니 도자기 그릇에 담긴 밥과 국, 반찬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침밥에 고모가 가져다 놓으신 것 같았다.

"고모 왔다 가셨나 보다. 일찍 왔으면 뵐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 " 

거실에 쪼그려 앉아 계신 할머니께 쟁반을 들어 올려 가져다 드리려 했다.

"할머니, 아침 식사 하세요"

"에에에에~"

치우라는 듯이 손을 들어 바깥쪽으로 휘휘 내저으며 특유의 할머니 말투가 나왔다. 

"그냥 여기에 놔둘까요? 이따 드시겠어요?"

"너 몸냥허라"

이미 풀이 죽어버린 나는 어제의 듣기 실력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할머니의 말소리는 다시 뜻 모르는 외국어가 되어버렸다.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내일 사 올게요"

"무사"

"증조할머니께 인사드려. 내일 다시 오자" 아이들의 등을 누르며 급하게 인사를 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어제와 다른 할머니의 온도차에 씁쓸한 마음을 한가득 안고 우리는 고모 가게로 발길을 옮겼다.


"나한테도 그래"

어제와 오늘 있었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고모의 첫 말이었다.  음식을 가져가면 안 먹는다 소리부터 치고 마루에 놓고 가라고 하신단다. 저녁에 가보면 싹싹 다 비워진 그릇만 툇마루에 놓아져 있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어디서 주웠는지 못이 여기저기 박힌 긴 나무 막대를 지팡이 삼아 고모 집에 찾아왔다고 한다.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간 고모 눈앞에는 위태로워 보이는 할머니가 서 계셨다.

"이건 어디서 주우셨어? 사준 지팡이는 어디다가 놓고 위험한 걸 가지고 다녀요 다치면 어쩌려고."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사이도 없이 할머니는 고모에게 손을 쭉 내밀며

"돈 내놔라"

"무슨 돈?"

"내가 준 돈 내놔라"


2-3년 전 집안 행사를 준비하는 고모에게 보태 쓰라며 할머니께서 돈을 주셨는데 갑자기 찾아와서 빚쟁이 마냥 그 돈을 내놓으라고 한 것이다. 

그 사건 이후로 고모의 걱정은 더 깊어졌다. 누군가가 할머니 옆에 계속 붙어 있을 수는 없고 이제는 고모의 말에도 다 콧방귀를 끼며 듣지 않으니 대화가 어려워졌다. 치매 증세가 점점 심해지고 있어서 요양원을 알아보고 있는데 거기는 절대 안 간다고 고집을 부리는 통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음날은 마을에 오일장이 서는 날이었다. 장날마다 오는 뻥튀기 차가 있는데 알록달록 둥근 뻥튀기가 이쁘고 바삭하니 맛있기까지 하다. 저번에 할머니께 사다 드렸는데 좋아하셨던 기억이 나서 방금 만든 걸로 한 봉지 달라고 헀다. 과일과 두유 한 박스를 사서 할머니 집으로 올라갔다. 


"할머니 저희 왔어요"

열려있는 대문을 쓱 밀고 마당으로 한걸음 들어섰다. 할머니는 거실에 앉아 계셨지만 인사 소리에도 우리를 쳐다보지 않으셨다. 한참 후에 곁눈질로 우리를 흘겨보셨다. 

"식사하셨어요?"

미동도 안 하고 당장이라도 싸울듯한 할머니의 눈빛에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뱡향을 잃어버린 나는 손에 들고 있던 것들을 거실에 내려놓으며 "이거 드셔보세요" 했다.

할머니는 앉아 있던 모습 그대로 한 발을 떼서 방바닥을 쓱 밀며 과일 봉지 가까이 오셨다. 할머니 손에 들어 올려진 블랙사파이어는 하늘 높이 떠 올라가 마당에 툭하고 떨어졌다. 

"무신걸! 경!"

할머니는 손에 잡히는 건 다 사방으로 던지셨다. 뻥튀기는 눈 오듯 부서져 내렸고 과일들은 깨지고 터져서 거실 바닥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더 손에 잡힐 것이 없었던 할머니는 아무 말 안 하시고 경계하는 눈빛 그대로 한쪽 무릎을 세우로 앉아 계셨다.


남편은 너무 놀라서 입이 벌어진 채로 그 자리에 얼음이 되었다.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낯설지 않은 이 상황에서 더 차분해지고 냉정해지는 나의 능력이 발휘되었다. 

"할머니 왜 그러세요~ 우리가 마음에 안 드는 걸 사 왔나 보네"

하며 봉지를 들고 다니며 과일을 주워 담았다. 눈에 보이는 휴지와 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남편은 내 손을 잡아끌며 빨리 나자고 재촉했다. 

"잠깐만 이것만 치우고 가자. 자기 많이 놀랐지? 애들도 많이 놀랐겠다. 가서 좀 안아줘"

대문 밖에 나가지 않은 남편과 아이 둘은 머리를 맞대고 마당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각자의 방식대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빗자루로 흩날리는 뻥튀기를 쓸어 모으고 할머니 가까이 걸어갔다

"할머니 저희 갈게요. 두유는 냉장고 앞에 있으니 입 심심할 때 드세요. 뻥튀기랑 과일은 다 터져서 못 먹을 거 같아서 버렸어요. 다음에 다시 사 올게요" 

할머니는 날 쳐다보지도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사실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어서 괜찮았다. 


차로 걸어오며 남편의 손을 잡아주었다. 

"많이 놀랐지? 치매가 그래. 매일 다른 컨셉으로 사람을 맞이하거든. 자기가 할머니를 조금 이해해 줘"

"아니.. 난.."

남편은 말 끝을 맺지 못했다.


그게 우리가 본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돌아가시고 생각해 보니 [남은 정 떼려고 그러셨나 보다]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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