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좌석의 풍경,
앉을까 말까....] <좌충우돌 인생2막 73호. 2025.11.27>
서울 지하철 안, 문 쪽 손잡이를 붙들고 서 있었다. 최근 들어 무기력증인 듯 심신이 지치고 기운도 빠져, 잠시만 앉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마침 자리가 하나 비어 있었다. 별생각 없이 앉았는데, 바로 옆에서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임신부 자리입니다."
고개를 들자 젊은 남성이 서 있었다.
그 옆엔 배가 불러온 임신부가 조심스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아, 몰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얼떨결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듭 사과했다. 몸보다 마음이 더 무거웠다.
그 남편의 표정에는 분노보다 보호 본능이, 내 얼굴엔 미안함보다 더 깊은 당혹감이 묻어 있었다. 지하철의 흔들림 속에서도 그 짧은 순간은 오래 남았다.
그날 이후, 지하철만 타면 의자가 눈에 밟혔다. 특히 '경로석'이라는 세 글자가 마음을 눌렀다. 올해 경로석 기준 나이는 만 65세, 마이너스 한 살, 아직 한 달 열흘이 남았다. 단지 그 숫자 하나 차이로 '양보해야 할 사람'에서 '양보받아도 되는 사람'으로 바뀌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아직 그 경계에 서 있었다.
그날도 한참을 서 있다가, 결국 마음이 흔들렸다. 4시간의 북한산 등산길, 허리가 뻐근했고 다리가 저려왔다. 빈 경로석 하나가 눈앞에 있었다. '그래, 오늘 하루만 앉자.'
조심스레 앉았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느껴지는 시선들이 묘했다. '아직 젊어 보이는데?' 하는 눈빛, '저기 앉아도 되는 건가?' 하는 속삭임 같은 기류 등, 옆자리 사람들도 미묘하게 몸을 틀었다. 나는 괜히 고개를 숙이고, 시선은 핸드폰만 주물렀다. 몸은 편안했지만, 마음은 그만큼 불편했다.
그렇게 몇 정거장을 버티다, 결국 나는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치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하듯, 혹은 스스로의 양심을 달래듯이. 손잡이를 다시 잡으며 웃음이 났다. 한 달 후면 법적으로는 경로석에 앉을 수 있다. 하지만 그때가 되어도 마음이 떳떳할지는 모르겠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앉는 법을 배우고, 비켜주는 법을 배우며,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는 마음이 조금씩 자라나는 일.
지하철 한 칸 안에도 인생이 오간다.
오늘도 나는 빈자리를 지나친다.
"그래, 두 달만 더 서 있자.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가볍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또 하루, 마음의 의자에 조심스레 앉는다.
2025. 미틈달 하순을 맞으며
홍릉 글로벌지식센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