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광약금 정영침벽, 적토마의 병오년 기원 이틀

한강의 금빛 일출과 수락산의 달빛, 그리고 평화를 향한 합장

by 윤석구
고향집 반호정사 주련, 浮光躍金 靜影沈璧


[부광약금 정영침벽, 적토마의 병오년 기원 이틀] <좌충우돌 인생2막 79호. 2026.1.8>


* 한강의 금빛 일출과 수락산의 달빛, 그리고 평화를 향한 합장

적토마의 병오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는 언제나 기원으로 시작된다. 하늘에 계신 부모님의 평안을, 사랑하는 가족의 행복을, 이 땅의 평화를 기원한다. 기원하는 자는 태양을 향해 합장하고, 달을 향해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힌다.

범중엄의 「악양루기」에 나오는 구절 부광약금 정영침벽(浮光躍金 靜影沈璧), 달빛에 물결이 일렁이며 금가루를 뿌린 듯하고 고요한 물에 비친 달그림자가 옥처럼 가라앉는다는 뜻이다. 병오년 초하루와 초이틀 사이, 부광약금과 정영침벽을 경험했다. 그것은 단순한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기원하는 마음이었고 새해를 맞는 간절함 그 자체였다.


해돋이를 보러 행주산성으로 향했으나, 2천여 명이 넘는 인파로 산성 위로는 오르지 못했다. 과밀을 우려한 주최 측의 조치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려 강변 데크가 설치된 방화대교 코앞 한강변으로 이동했다. 강 건너편으로 겸재 정선 선생이 자주 넘나들며 한강의 전경을 그렸던 모악루가 보였다. 문득 7대 반호 선조께서도 백마강에 뜨는 달을 바라보며 이 구절을 떠올리셨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병오년 새해 첫날, 대교 위로 둥근 해가 솟아올랐다. 찬란한 태양은 다리 아래 강물 위에서 금가루처럼 부서졌다. 윤슬처럼 반짝이는 태양의 금빛 물결, 바로 부광약금이었다.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하늘에 계신 부모님의 평안을 기원했고, 가족들의 행운과 행복을 빌었다. 비록 산성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이 순간은 그 어떤 일출보다도 아름다운 명장면이었다. 아마도 270년 전 겸재 선생 또한 모악루에 올라 같은 마음으로 한강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어제도 흐르고, 오늘도 흐르며, 내일도 흐를 한강처럼 부광약금은 매일 또 다른 금빛 윤슬을 만들어 주길 바랐다.

초하루 오후, 둘째 딸 내외의 초대로 수락산 수락휴(水落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아내는 고구마 전을 부치고, 오리백숙과 묵은 김치를 넣은 돼지등뼈 김치찌개를 끓였다. 마트에서 산 맥주와 한 달 전 베트남에서 사 온 소주를 배낭에 챙겨 수락산으로 향했다.

노원구 수락산 중턱, 혈의 자리 명당이라 할 만한 위치에 자리한 휴양시설 수락휴, 우리가 묵은 집의 이름은 '어린 왕자'였다. 외손주 서진이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었다. 집은 새 집이 아니라 새(鳥)의 집처럼 생겼다. 다락방 천장은 유리로 뚫려 있어 별도 보고 달도 볼 수 있었다.


저녁 무렵, 모닥불을 피워 놓고 마주 앉았다.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콧노래가 흘렀다. 폭탄주 몇 잔에 웃음이 깊어졌다. 깊어가는 한겨울 밤 다락방 유리 천장 너머로 나무 사이 달이 고요히 빛났다. 산속에 가라앉은 옥 같은 달그림자 그것은 정영침벽이었다. 그 고요 속에서 다시 기원했다.

아내의 건강을, 큰딸의 새로운 영전을, 과장으로 승진한 둘째 딸의 앞날을, 작년에 결혼한 아들 내외의 손주 탄생을, 그리고 손녀 손주의 예쁜 성장을, 소리 없는 기원은 달빛을 타고 하늘로 올랐다. 손주 서진이와 함께한 이 시간, 이것이 기원의 이유였다.

이튿날 새벽, 수락휴 인근 사찰로 향했다. 반경 1000m 거리에 네 곳의 사찰이 있었는데, 발걸음이 닿은 곳은 도안사였다. 꼬리를 흔드는 백구가 먼저 반겼다. 대웅전 안에서 부처님께 삼배의 예를 갖추자, 동쪽 하늘에 붉은 기운이 번지기 시작했다.

도안사는 선묵혜자(禪墨慧慈) 스님께서 중창하신 사찰이다. 스님은 13세에 출가하여 선정과 고요함 속에서 착한 마음과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신 분이다. 스님께서는 인도에서 부처님 사리 팔과를 모시고 오셔서 108 사찰을 순례하셨다. 부처님께서 고향을 못 가시고 쿠시나가르에서 열반에 드신 것을 안타까워하시며, 부처님 사리를 모시고 부처님의 고향 땅을 먼저 밟게 해 드리겠다는 원력으로 2008년 대한항공 전세기로 신도 300명과 함께 네팔 룸비니로 향했다.

당시 네팔은 마오 반군과 정부군의 분쟁이 끊이지 않던 땅이었다. 당국은 세 번이나 만류했으나 스님의 결심은 확고했다. "코리아 평화봉송단이 왔다. 일주일 동안만 길을 열어주라." 그렇게 평화가 찾아왔고, 스님은 네팔 수상으로부터 평화훈장을 받으셨다. 네팔 정부는 감사의 표시로 룸비니에 2천 평의 땅을 기증했다. 그곳에 평화보탑을 세우시고 초등학교를 설립하여 150명의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게 하셨다. 평화를 기원하는 구도자, 스님의 일생이 그랬다.


드디어 일출시간 7시 47분, 스님과 나란히 붉은 태양을 맞이했다. 두 손으로 합장하며 태양을 받드니 금빛이 약동했다. 어제 한강에서 보았던 부광약금, 그리고 산사에서 다시 만난 부광약금이었다. 스님의 권유로 커피 후식까지 곁들인 아침 공양 후, 평화의 불 봉송탑을 세 번 돌며 합장했다. 개성공단에서 보낸 이야기, 북한 땅 영통사 복원식과 평양 인근 광법사와 묘향산 보현사 방문 이야기를 나누자 스님은 반갑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스님이 몸소 이루인 평화를 향한 길 위에서 북녘이야기는 자연스레 마음이 겹쳐졌다.

스님이 좋아하시는 "一心光明佛"처럼 기원은 계속된다. 병오년 초하루와 초이튿날 사이 두 번의 부광약금과 한 번의 정영침벽이 삶으로 스며들었다. 한강의 금빛 태양, 수락산의 고요한 달빛, 도안사의 새벽 태양, 그것은 풍경이 아니라 삶이었고 기원하는 마음 그 자체였다. 태양은 다시 뜨고 달은 다시 고요해질 것이다. 부광약금 정영침벽, 그 반복 속에서 오늘도 합장한다. 병오년의 초하루 초이튿날의 기원은 그렇게 이어졌다. 수락휴 '어린 왕자'에서 손주 서진이와 함께 본 달빛처럼.

2026년 1월 2일 수락휴 도안사에서
by sk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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