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인의 시각에서.
3년 전, 딸 부부가 신혼집을 마련할 때였다. 생애최초 주택담보대출로 새 둥지를 틀었지만, 친정아버지로서 더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지 못한 아쉬움이 마음 한켠에 자리 잡았다. 시간이 흘러 최근 그들은 조금 더 넓은 보금자리로 이사를 결정했다. 당국의 가계대출 규제로 은행원 출신인 나조차도 조언에 한계가 있었지만, 결국 보험사의 30년 모기지론을 활용해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더욱 기쁜 소식은 외손주의 탄생이었다. 새집에서 아장아장 걸을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절로 난다. 딸은 출산 3주 전까지 근무하고 법정 1년의 출산휴가를 사용했으며, 놀랍게도 사위는 6개월간의 육아휴직을 내어 아이를 함께 돌보고 있다. 이러한 변화된 사회 분위기를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런 모습을 보며 10년 전 내가 겪었던 경험이 떠올랐다. 당시 업무 성과가 저조했던 한 남자 직원이 육아휴직을 신청했을 때, 겉으로는 "참으로 좋은 아빠이고 훌륭한 의사결정이었다"라고 격려했지만, 속으로는 '업무 회피용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남성 직원의 육아휴직이라는 개념이 생소했던 시절이었고, 솔직히 남성 직원에게 육아휴직이 적용되는 규정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럼에도 동시에 그 직원의 용기와 선택이 부러웠고 대단해 보였다. 시간이 흐르며 나의 편견은 점차 사라졌고, 이제는 그때의 생각을 부끄럽게 여기게 되었다.
최근 읽은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의 '역사에서 길을 찾다'에서 세종대왕의 출산휴가 제도가 큰 울림을 주었다. 600년 전, 세종대왕은 신분 차별 없이 노비에게도 출산휴가를 부여했다. 여종에게 산전 30일, 산후 100일의 휴가를, 그리고 그 남편에게도 30일의 휴가를 주어 부부 합산 160일의 출산휴가를 보장했다. 비록 신하들의 반대로 일부 축소되었지만, 이는 현대의 관점에서도 놀라울 만큼 진보적인 정책이었고, 세종대왕의 깊은 애민(愛民) 정신을 보여주는 예시였다.
최근 출산율과 관련하여 반가운 소식들이 들려온다. 최근 3개월간 국가 출산율이 플러스로 돌아섰다는 소식이다. 특히 인천광역시의 경우, 유정복 시장이 추진한 출산 가정당 성장기간 동안 1억 2천만 원의 지원 정책 등 각종 출산장려책이 모범적으로 시행되면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중소기업 사장 입장에서는 생산성 저하와 퇴직금 산정 등 현실적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는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이다.
다행히도 최근 금융권은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20개 은행이 3년간 2조 원을 지원하는 상생금융 지원방안을 발표했으며, 소상공인과 가계의 대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가산금리 체계 조정도 진행 중이다. 이는 금융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려는 진정성 있는 노력으로, 금융권의 수익 증가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해소하는 긍정적인 움직임이다.
한편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을 비롯한 많은 금융인들은 '한국의 포용금융 지속가능 성장전략 세미나'를 통해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소상공인을 위한 소액대출 확대, 저소득층을 위한 금융교육, 디지털 금융 기술의 보급 등이 포함된 법적·제도적 지원과 함께,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고속 인터넷 인프라 구축과 디지털 문해력 교육 제공 등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의 행보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34년간 금융계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야당 대표가 시중 은행장들을 직접 소집한다는 소식이 매우 충격적이다. 어떤 주장을 펼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금리 및 수수료 인하와 소위 말하는 지역화폐 지원 등을 거론할 것 같은 예상이다. 예산은 삭감하고 추경을 편성한다는 설도 난무하는 가운데, 은행은 엄연히 주주가 있는 주식회사이며 특히 외국인 주주 비율이 50%가 넘는 상황에서 이러한 정치인의 금융시장 개입 발언 등은 금융의 자율성과 건전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기재부, 금융위, 금융감독 등 당국과 협의를 거쳐 추진하여도 전형 무방 함임에도 기필코 그 바쁜 은행장들을 나래비 세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도저히 용인이 되지 않으며, 진정한 포용금융을 명목으로 은행장들을 만난다면 세종대왕의 혜안을 본받아 시대를 앞서가는 정책적 통찰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기업들이 출산휴가 제도를 부담 없이 운영할 수 있도록 금리 우대 및 신용 지원을 확대 제공하는 방안 등을 당국과 논의하고, 또한 반도체법과 같은 핵심 경제 법안의 신속한 처리, 주 52시간제와 중대재해처벌법 등 각종 규제의 합리적 개선도 시급하다.
금융의 사회적 책임과 경제적 효율성은 결코 대립되는 가치가 아니다. 주주들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고려하면서도,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아야 하고, 진정한 포용금융은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나 정치적 쇼가 아닌,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실질적인 제도 개선과 지원을 통해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50-60 세대들은 저축하면서 희망을 사다리로 작은 집에서 시작해 직장을 구하고 아이를 낳고 점차 더 나은 환경으로 옮기면서 장년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는 사연은 다양하겠지만 취직이 어렵고 수입이 없고 주거가 뒷받침되기 않기 때문에 결혼을 미루고 결과적으로 출산율도 저조한 것이 현실이다.
은행장 만나 훈시나 하고 사진이나 찍을 시간에 우리의 젊은이들이 더 나은 행복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는 포용금융 연구와 출산율 제고 등 정책제안을 정부의 관계부서에 제안하고 금융은 금융시장 당사자들이 자율적인 시장기능에 의해 영위도록 방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2025.1.20. 화정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