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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근무1188일을 회상하며(1)

by 윤석구


[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 주제!

신문 연재를 쓰면서...]
<좌중우돌 인생2막 56호. 2025.7.31>


개성공단 향하는 경의선 출입사무소


오랜 시간 묵혀두었던 기억을 꺼내는 데에는 적잖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특히 그것이 20년 전, 녹슨 철책 너머 개성공단에서 써 내려간 일기장 속 이야기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2004년 12월, 우리은행 개성공단 지점의 문을 열고 3년 1개월간 현장을 지켰던 평범한 은행원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남북 금융의 길을 트고, 북녘 근로자들의 고단한 출퇴근길을 돕기 위해 자전거 대출을 지원하는 등 돈의 흐름을 너머 남북경제협력사업의 작은 돌멩이 한개 사람의 마음을 잇는 경험을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계룡일보 오주영 대표로부터 이 기억들을 역사로 남겨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망설임이 앞섰습니다. 행여나 저의 이야기가 정치적으로 오해받거나, 누군가에게 비판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민 끝에 용기를 냈습니다.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겪었던 금융인의 생생한 체험기가 이대로 묻히기보다, 미래 세대에게 소중한 기록 한 조각으로 남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연재가 바로 계룡일보의 「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입니다. 엊그제 시작한 것 같은데 어느덧 40편, 총 80여편 예상됩니다. 연재 덕분에 도서관 에어컨 바람에 하루가 금방 갑니다. 무리 미래학당 공부방에 그 기억의 두 조각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나눕니다. 한 은행원의 좌충우돌 인생 2막 이야기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오늘과 다음주에 두편정도 소개합니다. 연재 검색은 계룡일보 "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이니 참고하여 주세요
2025.7.31 화정골에서 윤석구 경영학박사

정주영 회장님, 이봐, 해봤어?


[개성공단 1188일의 기록] "일없습니다"의 진짜 뜻 (연재 16. 2025.7.14)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밥을 나누는 것, 그것이 우리 직장인들의 문화 아닐까.

김명옥 행원이 우리 지점에 온 지 벌써 석 달이 넘었다. 매일 10시간씩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며 업무도 척척 배우고, 이제는 진짜 한 식구가 된 것 같았다. 서울 은행 본사에서 여직원들이 입는 유니폼을 조달하여 입히고 나니 훨씬 정통 은행원다워 보였다. 한 가지 차이라면 자랑스러운 우리은행 배지 대신 김일성 김정일 휘장을 그 자리에 달고 있는, 아니 그들 표현으로 모시고 있는 점이었다.

개성공단에서는 아무리 식구라 해도 함께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아라코 식당과 패밀리마트가 우리 지점과 바로 붙어있어 물리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느 날 점심시간, 아라코 식당에서 나는 소고기 미역국 냄새가 사무실까지 퍼져왔다. 평소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김명옥 동무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명옥 동무, 오늘 미역국이 정말 맛있어 보이네요. 음식을 만들고 배식하는 북측 근로자들의 눈이 있으니까, 식당에서 배식을 해서 갖고 올 테니 우리 사무실 회의 공간에서 식사를 함께 하면 어떨까요? 안열 차장과 함께요."

따뜻한 소고기 미역국에 고등어 반찬 한 숟갈이라도 먹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석 달 넘게 함께 일한 동료에게 할 수 있는 작은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명옥 동무가 한마디로 답했다.

"일없습니다." "네? 아니, 뭐? 일없다고요?"

머릿속이 하얘졌다. '일 없다'는 건 '필요 없다', '상관 없다'는 뜻 아닌가? 선의로 한 제안을 그렇게 퉁명스럽게 거절하다니. 석 달 동안 쌓아온 정이 한순간에 식어버리는 느낌이었다.

내 얼굴이 굳어진 게 보였나 보다. 너무도 황당하고 기분이 언짢아하는 나의 표정을 본 김명옥 동무가 당황한 듯 다시 말했다.

"윤 차장선생님, 그 마음 잘 알지요. 똑 부러지는 성격에 정 많으신 그 마음, 석 달이 지났는데 왜 모르겠어요."

그리고 조심스럽게 설명을 이어갔다.

"은행에서 남측 말로 '계좌(A/C)'를 우리 북측 말로 '돈자리'라고 하듯이, '일없습니다' 말은 '괜찮습니다' 뜻입니다. 오해하신 것 같은데, 그래도 깊은 마음 써주심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 그랬구나. 나는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명옥 동무는 내 제안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괜찮습니다"라고 답한 것이었다.

"여 튼 먹은 것으로 하고요. 보는 눈도 있고, 남측 선생들하고 함께 먹지 못하는 제 마음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제야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김명옥 동무도 함께 식사하고 싶었겠지만, 북측 관리자들의 시선과 규칙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내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일없습니다"라는 말로 부드럽게 넘어가려 했던 것이다.

"명옥 동무, 제가 오해했네요.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말이 달라서 그런 것이지요. 마음은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개성공단에서 겪는 작은 언어 차이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일없습니다"는 거절이 아니라 "괜찮습니다"였다. 그리고 그 말 속에는 함께 하고 싶지만, 함께 할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남과 북의 언어 차이가 이것뿐이겠는가? 공단 펜스를 지키는 북한 측 군인들을 보면 우리나라는 '군기'라 하지만 이곳은 '군풍'이라 하고, 공장 근로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장갑을 어마무시하게도 '수갑'이라 한다. 그리고 제한된 공간에서 운동 삼아 걷는 주재원들을 보며 우리말 다이어트를 북측 근로자들은 '맨날 살끼기만 하냐'고 묻기도 했다.

심지어 공단 섬유계통 회사에서 생산된 여성 속옷 브래지어를 '젖싸개'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는 한참을 웃었던 기억도 난다.

분단 70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이 작은 언어의 벽들. 하지만 마음만 통하면 얼마든지 넘을 수 있는 벽이기도 했다.

잘 있겠지요?

잘 있으시오. 다시 만날때까지....


을사 성하지절에 화정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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