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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in Jul 29. 2023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인 게 인생이더라

#채움보다 이미 있는 것에 집중하자  


작년부터 의도치 않는 교수님의 안식년으로 나의 계획이 무산되어 불안했었다. 혹여 그 사이에 나와 동시 입학했던 다른 전공 선생님들은 하나둘씩 졸업의 학사모를 쓰는 그 모습이 볼때마다 늘 마음이 쿵쾅거렸다. 아니, 사실 보려고도 궁금하려고도 하지도 않았다. 그냥 아등바등하게 사는 것, 연구라는 고독의 시간을 홀로 견뎌야 하는 것, 이게 나의 삶이었다.


그래서 나는 학위논문에 지쳐있었고 더는 불안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난 자신을 옥죄던 손을 놓고 인문학이라는 책을 들고 북리딩모임에 가입했었다. 정신적 고통의 버팀목차원에서.. 그렇게 점점 고전과 인문학을 읽으며 나 자신을 치유해나갔고 전과 같은 불안함은 줄어들었다. 덕분에 이동하는 지하철에서, 마음을 비우고 싶을 때쯤 한 챕터씩 읽어둔다. 그게 『여덟 단어』라는 책이었다. 이 저자는 '자존, 본질, 고전, 권위, 소통, 견(見), 현재, 인생'이라는 여덟 개의 키워드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시사한다. 가랑비처럼 나를 천천히 젖게 한 이 책을 '현재, 인생' 두 가지 키워드에 초점을 맞춘 채 기록하고 싶다.



『현재』 Sezie the Moment, Carpe diem (순간을 잡아라, 현재를 즐기라)

  '지향점이 과거에 있으면 후회하고 미래에 있으면 불안하다'라는 말이 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며 살면 나의 잘잘못을 따져 후회하고 알지 못하는 미래에 치우쳐 살면 불확실함에 잠식되기 마련이다. 인터뷰에서 작가는 계획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없습니다. 개처럼 삽니다."라고 답했다. "개는 밥을 먹으면서 어제의 공놀이를 후회하지 않고 잠을 자면서 내일의 꼬리치기를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라 덧붙이며 현재라는 순간에 사는 개의 특성을 설명한다. 개는 주인의 얼굴을 핥는 일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이 마냥 열심히 핥고 밥을 주면 처음 먹는 밥인 것처럼 먹고, 잠잘 때 보면 오늘의 공놀이가 아쉬웠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은 채 푹 잔다. 개에게 잠을 잘 땐 그 꿈나라가 우주이며 공놀이를 할 땐 그 공이 우주이다. 더 나아가서 개들은 자기만의 세상이 자기가 살고 있는 그 집뿐이다. 그래서 집사밖에 모르고 집사만 바라보는 순둥이지 않을가 싶다.  

   

유명한 세계문학 밀란 쿤델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비슷한 서술이 나온다. '개들은 원형의 시간을 살고 있다. 행복은 원형의 시간 속에 있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직선 속의 시간에선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개들의 빙글빙글 돌아가는 원형에 시간 속에선 행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작가가 현재의 쾌락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쾌락, 자극에 치우친 히피적 사상이 아니라 현재에 집중하며 네가 있는 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살라는 이야기였다.


"Sezie the Moment, Carpe diem(순간을 잡아라, 현재를 즐겨라)"

현재의 삶을 산다는 것, 내가 한 것들을 내 기준점 "안"에서 받아들인다는 것이 아닐가 싶다. 어쩌면 이는 틀렸을 수도 있다. 어쩌면 과거의 나의 선택이 잘못돼 그 선택을 하지 말았어야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답에 대한 확신을 가졌을 수 있었을까? 반대쪽을 택했더라도 후회의 대상만 뒤바뀔 뿐 절대적으로 고민이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윤리와 사회적 규범 및 도덕이 허용하는 안에서의 행동이라면 말이다-

즉 모든 선택에는 정답과 오답이 공존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니 어떤 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 고민하기보다는 나이키의 슬로건처럼 외친다. Just do it! 다만 선택 후 손 놓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을 옳게 만드는 행동을 강조한다. 어떤 선택을 하고 그 후의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라 주장한다. 또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그 선택을 옳게 만들려면 지금 있는 상황에서 무엇이 최선인지 생각하고 실천하는 게 제일 좋은 답이라고 제언한다.


『지상의 양식』이라는 책에서는 "나는 지금 내가 차지하고 있는 이 공간적 지점에, 시간 속의 이 정확한 순간에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이 지점이 결정적이지 않은 것을 허락할 수 없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내가 딛고 있는 이 지점, 그 순간이 아닌 과거의 순간 혹은 미래의 순간을 떠올린다는 것은 마치 키스하는 동안 그 상대방이 아닌 다른 상대방을 떠올리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내가 듣고 있는 이 현재 장소와 순간에 대한 모욕이며 무시이므로 현재가 나한테 결정적이지 않은 것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삶은 순간의 합이기 때문에 행복은 삶이 끝날 때쯤에나 찾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 의미 없는 순간들의 합인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면 찬란한 순간을 잡아 찬란한 삶을 살아가라고 말한다. 순간순간의 의미를 부여하면 삶의 의미는 생기는 것이고 티 없는 희열로 가득 찰 것이라고 말하며 말이다.



『인생』 급한 물에 떠내려가다 닿은 곳에 싹 틔우는 땅버들 씨앗처럼

인생은 자존, 본질,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이라는 싱싱한 재료를 담아낼 아름다운 그릇이다.

고미숙의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에는 지구는 탄생 이래 단 한 번도 같은 날씨를 반복한 적이 없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앞에 마땅히 주어진 전인미답의 길을 즐겨야 하거니와 어차피 가야할 길 앞에서 망설이거나 두려워하기보다 설렘과 기대를 품고 걸어야 한다. 우리는 몇 번 단추를 누르면 어떻게 반응을 하고 어떤 결과가 딱 떨어지게 나오는 기계가 아니니까...


참으로 위로가 되는 말이다.


‘급한 물에 떠내려가다 닿은 곳에 싹 틔우는 땅버들 씨앗, 그렇게 시작해 보거라’라는 고은 시인의 시처럼 살아야 겠다. 땅버들 씨앗도 자기가 닿으면 좋을 장소가 있었텐데 땅버들 씨앗이 원하던 곳으로 다시 갈 수 있을까? 절대로 네버. 땅버들 씨앗은 묵묵히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릴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시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로 말하면 2년반안에 무조건 졸업하자고 했는데 1년을 미룬게 누가 생각했던 것인가? 근데 어쩌겠니?! 그게 인생인것 같다. 생각해보면 참 별난 것 같다.


작가가 말한다. 인생은 공짜는 없다. 하지만 어떤 인생이든 어떤 형태가 될지 모르지만 반드시 기회는 찾아온다. 그러나 이들처럼 내가 가진 것을 들여다보고 잡아야한다. 그리고 준비를 해야 한다. 나만 가질 수 있는 무기 하나쯤 마련 해 놓는 것, 거기서 인생의 승부수가 갈린다.


그러기 위해 작가는 3가지 팁을 알려준다. 참 좋은 조언이라 두고두고 보기 위해 기록해둔다.

*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는 3가지 팁

1. 인생에 공짜는 없다. 살아가다 보면 기회는 분명히 온다. . 그러니 한탄하지 말고 준비하자. 내가 준비만 잘하고 있다면 남들이 알아준다.

2. 인생은 마라톤이다. 우린 언제든지 이길 수 있다. 우린 언제든지 질 수 있다. 본질이 무엇인지, 내안에는 실력이 있다는 자존을 가지고 Be Yourself 하는 게 제일 잘 사는 방법 같다.

3. 인생은 정답이 없다. 정답, 오답에 대한 강박을 갖지 말고, 바보처럼 단순하게 내 판단을 믿고 가길 바란다. 되는 대로 살되, 본질이 무엇인지 살피고, 질 때 지더라도 언제든 이길 수 있다는 마인드로 최선을 다해 현명한 판단을 내리며, 그것을 옳게 만들며 살자.


여덟 가지의 키워드 중 제일 인상 깊은 두 가지의 키위드로 기록하면서 인생을 대하는 자세를 알려준 이 인문학 책을 통해 인문학의 가장 당연하고도 모순적인 특성을 깨달았다. 바로 아무것도 바꿀 수 없지만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특성을 깨달았다. 인문학은 공학과 같은 학문처럼 무엇을 뚝딱 개발하는 학문도 밥을 만들어주는 학문도 아니다. 단지 좀 더 올바른 시각으로 삶을 살고, 세상을 풍요롭고 다채롭게 만들어줄 뿐이다. 그러나 이 사실이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도 감싸 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생산적으로 발전되고 생산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유의 방식과 시선의 방향을 알려줌으로써 그 모든 것을 더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인문학의 힘 아닐까. 특히 요즘과 같이 결핍이 결핍된 사회, 관계 속의 사람은 없고 관계만 있는 이 사회 속에서 이러한 방향성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 만큼의 영향력을 가진 것은 아닐까...


나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사실 인문학이 시사하는 내용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왔다. 사회에서 난 단 한 번도 절대 현재의 순간에 초점 맞추며 살지 못해왔다.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두어도 놓친 것만 보였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타박했다. 기준점을 내가 아닌 나의 외부에 둔 채 스스로 지쳤었고 나라는 유기체에 대한 존중은 완전히 소멸해 버린지 오래였다. 그렇게 모든 에너지를 태워내며 버텨왔었고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가 작년 9월부터였다. 그렇게 행복을 유보하며 살아온 나는 지난 고독의 시간을 보내면서 인문학을 고전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나를 옥죄던 불안과 어느 정도 동떨어져 살게 되었다. 또한,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들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서두르기 보다는 천천히 見하며 기준점을 안으로 맞추게 되었다. 頓悟漸修와 같은 갑자기 관심을 두게 된 것에 천천히 알아가며, 공부하고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연구에서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볼수 있는 역량을 가져다주었다.


사르트르의 책『이방인』의 해설을 보면 인생은 잘 짜인 이야기보다는 그 하나하나가 관능적 기쁨인, 저 내일 없는 조각들의 광채라는 말이 있다. 삶이 예측할 수 있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알 수 없는 조각들이라는 뜻이다. 나는 이 책을 나와 같이 걱정이 많거나 막다른 선택지에 내몰린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자신만의 시각으로 삶을 살아가며 찬란한 조각들의 모음을 충실히 살아갔으면 좋겠다.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여덟단어' 정말 추천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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