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이름 없는 밤에

어두운 방, 홀로 잠들지 못한 채

by Rian

잊어버린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뭉클함에 잠 못 이룰 때가 있다. 저 멀리 이름 없는 밤에. 어두운 방, 홀로 잠들지 못한 채 방황한다.


추억의 달콤함이 머리맡으로 스며들고, 밤새 끝나지 않을 과거 속으로 빠져든다. 이미 지나버렸고, 돌이킬 수 없는, 유일한 사실. 뿌리이자 근본이며, 의미 없는 기록.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아름답고 슬프다.


종착점 없는 길 위에, 운명이라는 기관사에 실려 어디론가 떠밀린다. 묵직한 쇳덩이는 굉음을 내며 달린다. 오직 나만을 싣고서, 나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나를 아는 모든 이들, 흐려지는 그들의 이름들.

지날수록 또렷해지는 사건들.

잊혀지지 않는 부끄러움, 수치스러움, 서툶.


영롱했던 젊음, 찬연했던 어제.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감정들.

잊혀져 가는 뿌듯함, 청아함, 성숙함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듣고, 많은 것을 말했다.

오직 그때의 감정은, 그때에만 머물러야 한다.

옅어져야 한다.


상실이야말로 존재의 의미를 확실하게 알려준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차 칸칸이 과거로 채워져 있다.

끊어내지 못하고, 육중한 열차에, 나와 함께, 알아야 할 필요가 없는 곳으로.


미숙했던 지난날이 아련해질 때까지.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빠짐없이 충만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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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괴로웠다. 괴롭지 않은 날은 없었다. 하지만 보정된 기억은 빛난 채로 남겨질 것이다. 오늘의 괴로움도. 수정될 것이다. 눈부시게 간직될 것이다.


잊어버린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뭉클함에 잠 못 이룰 때가 있다. 저 멀리 이름 없는 밤에. 어두운 방, 홀로 잠들지 못한 채 미소 짓는다.


지나간 것을 놓아줄 때, 다가올 것을 고대하지 않을 때, 단지 지금만을 살아낼 때. 캄캄한 이곳에서, 조용히 잠든다. 깊고, 깊은 잠에 빠져든다.

꿈도 없이. 가라앉듯이.


그리고 해가 뜨면 떠오른다. 가볍게 튀어 오르며. 그러면 마침내, 또 오늘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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