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결국, 다시 크리스마스니까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

by Rian

붉은색 옷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맞춰 입은 할아버지가 굴뚝을 타고 내려와 양말에 선물을 넣어준단다. 순록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다니는데, 무리의 우두머리는 루돌프로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코를 갖은 녀석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각종 소셜 미디어에 올린 글을 검열한단다. 착한 일을 했다면 선물을 받고, 착한 일을 하지 않았다면 먼저 요단강을 건넌 친구 유령과 함께 과거, 현재, 미래를 오가며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


크리스마스라고 정신없이 보내다간 온 가족이 여행을 떠나고, 혼자 집에 남게 된단다. 촉법소년이라 문제없다고 생각하는지 집에 들어온 도둑들을 뚜까패다간, 자칫 과잉방위에 해당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


로맨틱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꾸며 연애들을 시작할 텐데, 누구나 연애 전에는 ‘러브 액츄어리’를 상상하겠지만, 결국 현실은 ‘결혼 이야기’로 마무리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린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도.


행복하고 아름다운 날. 우리 주위를 잊지 말자. 추운 길에 성냥을 파는 소녀라도 있으면 가까운 경찰서에 인계해, 아동 학대 및 아동 노동을 신고하는 준법정신이 투철한 시민이 되자꾸나.


혹시라도 파트라슈라는 강아지가 수레를 끌고 어린 소년과 함께 성당을 향한다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루벤스의 그림은 없어도, 크리스마스 밤의 성당은 따스함이 넘칠 테니.


흰색의 북극곰이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일 년에 서너 번 꺼내는 초록색 무늬 스웨터를 입으면 그날이 온단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온화한 시간을 보내는 포근함.


혼자 보내는 것은 죄악시되어 자신의 파트너가 없는 사람들은, 친구들끼리라도 모인다. 억지 축하와 웃음 뒤에, 핸드폰을 뒤적거리며 남들의 행복을 훔쳐보다, 눈물을 모아 술잔을 채우고, 마시는, 그런 날이란다.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트리와 조명들이 반짝이고, 한 달 정도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를 들어 줘야 한단다.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 왠지 모르게 설레고, 두근거리는 밤거리.

눈이라도 내려주면 내일 교통은 모르겠고, 산책 나온 강아지 마냥 신난다.


어차피 마지막엔 라면으로 해장하겠지만 와인도 한 잔쯤은 필요하고, 푸근한 김치찌개보다는 사진 예쁘게 찍힐 양식도 미리 준비해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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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떠들고 웃다. 잠든다.

364일은 고단했으니

그렇게 오늘 하루는 행복하자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

그래도, 결국, 다시 크리스마스니까.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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