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빈 지게

by 이슬

<아버지의 시조창 >

어린 시절, 붉은빛으로 하늘을 물들이며 해가 저무는 저녁.

서쪽 산기슭 너머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하루 종일 밭일을 마친 아버지와 엄마는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셨다.


함께 따라 나간 나는 아빠, 엄마 일하는 곁에서 혼자 놀곤 했었다.

온종일 내내 고된 밭일로 힘드시기도 하셨을 텐데,

지친 기색도 없이 아버지는 지게를 둘레 메고

엄마는 광주리에 푸성귀를 담아 이고 집으로 걸음을 옮기셨다.


해안선 따라 (섬진강을 생각하며)

우리는 섬진강 상류에 살았다. 강너머 밭으로 향할 때면, 강을 건너야 했다.

얕은 물가는 어린 내 무릎을 적실 정도의 깊이였다.

강바닥엔 크고 작은 자갈들이 하얀색, 녹색, 고동색, 겨자색 등 말간 얼굴을 드러내며,

덤덤하게 등을 내어주곤 했다.

그 위를 맑고 투명한 물살이 강바닥을

살풀이춤을 추듯 어루만지며 흘러갔다.

물속에 서서 강물을 바라보면, 빙빙 돌아가는 것도 같고

어딘가로 한없이 흘러가는 것도 같아 어지러워 주저앉으며 비명을 지르곤 했다.

그런 나를 보며 아버지는 강을 건널 때면 함박웃음을 웃으시며 날 지게에 지고 강을 건너시곤 하셨다.


지게 위에서 아버지 목을 꼭 끌어안았다. 물살은 아버지의 종아리를 핥으며 흘러갔다.

넘실거리며 춤추는 물결을 보면 절로 두 손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아버지는 나를 지게에 지고 강을 건너면서 목청을 높여 시조창을 하셨다.

아버지의 시조창 소리는 저녁노을 반짝이는 물살을 지나 멀리서 걸어오는 어두운 산 그림자를 향해 달려갔다.

“아버지 가만히 있어도 어딘가로 자꾸 흘러가는 것 같아서 어지러워요.”

하면 아버지는 껄껄 웃으시곤 하셨다.

아버지의 청량한 웃음소리와 바구니를 들고 곁에서 함께 강을 건너던 엄마와

아버지의 지게 위에 앉아 가슴을 졸이며 강을 건너던 장면이 한 장의 사진처럼 떠오른다.

들풀이 피어있는 강기슭

<빨치산과 국군>

이상하게 아버지는 장남이 아니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난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은 방에서 잠을 자곤 했다.

새벽이면 오줌이 마려워 몽롱한 상태에서 윗목에 놓여있던 요강을 찾아

밤새 기어 다녔던 일이 떠오르곤 한다.

어느 겨울 새벽, 요강을 찾아 방구석을 뱅뱅 돌다 방문을 열고

툇마루에 나왔다. 순간 눈이 내려 쌓인 앞마당에 휘영청 밝은 달빛이

신비한 푸른빛이 뜰안 가득 빛나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이 요염하게 빛나던 그 새벽의 풍경이 떠오를 때면 낯선 별나라에 가 있는 것 같은 비현실적인 감정이 되살아난다.

해방 전후,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이념전쟁은 처절했다.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가족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5형제의 넷째 아들이었고 위로 3명의 형들이 모두 빨치산이 되었다.

집안에서 가장 잘나고 똑똑했다는 아버지 바로 위 셋째 형은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가

방향을 돌려 빨치산이 되셨다.


공격하는 인민군들.

아버지는 그것을 보고 ‘이러다가 집안이 망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군에 자원하셨다고 한다.

한 집안의 형제가 빨치산과 국군이 되어 서로의 가슴에 총칼을 겨누는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엄마는 그때의 일들을 마치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말씀하시곤 하셨다.

밤에는 빨치산들이 동네로 내려와 약탈을 일삼고 낮에는 국군이 샅샅이

조사를 하곤 했다고 하셨다.

“그 틈에 마을 사람들만 죽을 일이었지” 하시며 험난했던 시절을 회상하셨다.

아버지는 군에 입대하신 지 거의 6~7년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오셨다.

어린 새색시를 남겨 놓고 나라를 구하겠다고.

긴 세월이 지난 뒤 전쟁터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한동안 몸져누우셨다.


전쟁터의 아이들.



총탄이 뚫고 간 흔적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신 것만도 감지덕지할 처지였다.

국가에 뭘 바라지도 않았고 오직 내 가족, 내 나라를 지키고 싶다는 일념으로

그 긴 시간을 전쟁터에서 몸 바쳐 헌신하셨다.

빨치산이 된 큰아버지들도 헌신짝처럼 해진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일본 유학길에 빨치산이 된 셋째 큰아버지는 그 길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객이 되고 말았다.

전쟁이 끝난 뒤 온 문중은 큰아버지의 시신을 찾기 위해

산마다 뒤지고 다니다 간신히 시신의 일부를 수습해서 장례를 치렀다고 했다.

<가족의 짐을 진 넷째 아들>은 다음 주 월에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