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아침 교실은 활기와 생동감이 넘치다 못해 교실이 터져 나갈 것 같은 흥분과 설렘이 가득하다.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출근길을 서둘렀다. 교실에 도착하니 현호(가명)가 복도에 서서 눈물을 훌쩍이고 있다. 이학년 치고는 키 크고 가냘픈 모습이 한 눈에도 여린 느낌의 현호는 항상 쭈뼛거리고 자신감 없는 모습으로 교실 한 구석으로 밀려나 있곤 했다. 마치 비 맞고 처마 밑에 떨고 있는 어린 새 같은 모습이 늘 애처로웠다. 울지 않아도 눈물이 묻어 나오는 것 같은 그런 아이였다. 언젠가 한번 현호와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2학년의 3월이다 보니 좀처럼 짬을 낼 수 없었다.
그런데 교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훌쩍이는 현호를 보니 없는 시간도 내야겠다며 울고 있는 현호 옆으로 다가가서 “현호야! 아이고! 우리 현호 왜 울어. 예쁜 얼굴 얼룩진 것 좀 봐!" 하며 어깨를 감싸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 말을 듣자 현호는 설움이 복받치는 듯 어깨를 더 들썩이며 흐느껴 울었다. 현호를 데리고 놀이치료 테이블로 나왔다.
“그래, 현호야 속상하고 슬펐구나! 어이구 우리 현호 뭐가 그리 서러웠을까?.”
손으로 얼굴을 훔치며 울고 있는 현호에게 종이를 보며 주며 물었다.
“현호야! 이게 뭐야?”
손으로 번갈아 가며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흘낏 쳐다보더니 다시 훌쩍이기 시작했다.
“현호야, 선생님이랑 종이 찢기 놀이할래?”
현호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양손에 종이를 들고 투명하고 얇은 손가락에 힘을 주며 찢기 시작했다. A4 한 장이 금 새 산산 조각났다. 얼굴과 팔에 힘을 실어가며 점점 거칠게 종이를 찢었다. 현호는 종이 찢기 놀이에 몰입하자 눈물이 멈추었다. 현호와 함께 종이 찢기 놀이를 하면서 "와! 현호 참 잘하네. 선생님 보다 더 잘게 찢었구나!"
훌쩍이던 것을 멈추고 현호는 멋쩍게 조각난 종이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기 시작했다.
소방관이 불끄는 모습
그래도 아직 울음이 완전히 멈춰지지는 않았다. 이 놀이를 통해서 현호는 분노하는 마음, 슬픈 마음 등을 표현해 냈다. " 현호야!, 이제 마음이 좀 풀어졌어?" 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번에는 나무젓가락으로 칼싸움하자?
나무젓가락을 두 쪽으로 나눠 하나는 내가 갖고 하나는 현호에게 주며 말했다. 현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얼굴로 나무젓가락을 잡았다. 나무젓가락을 받아 든 현호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내가 먼저 “ 얏, 얏” 하며 팔을 휘둘러 공격하자 현호도 대응하기 시작했다. “현호야, 소리 지르면서 해도 괜찮아!” 현호는 소리를 내지 못하고 팔만 휘둘렀다. 힘없이 팔을 휘둘렀지만 흥이 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현호에게 종이 찢기 놀이와 나무젓가락 칼싸움 놀이를 통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자신의 상태를 깨닫게 했다.
“현호야! 참 잘했어. 이제 마음이 좀 풀렸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이제 그림 그리기 할까?" 현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를 주자 현호는 사인펜을 집어 들더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화면 중앙에 무지개를 그렸는데 위로부터
빨강, 노랑 녹색 연 하늘색 등등으로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게 표현했다.
무지개 아래 양 끝에는
구름 두 덩이가 서로 다른 표정을 짓고 있다.
두 구름 사이에는 성이 있는데
그 성 주변에는 고동색 둘레가 쳐져 있다.
무지개 중앙 위 왼쪽엔 누더기를 입은 천사가
가슴에 무엇인가를 안고 하늘에 둥둥 떠 있다.
누더기를 입은 천사
왼쪽에 핀 예쁜 꽃 한 송이가 천사의 날개에 맞닿아 있다.
오른쪽엔 병아리 한 마리가 천사를 향해 가고 있다.
눈이 빨간 아기 구름은 울상을 짓는 표정으로
할 말이 있는 듯 어딘가를 바라보며 떠다니고 있다.
오른쪽 무지개 바로 위엔 방패연 모양의
사각형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무지개의 빨간색 왼쪽엔 부모, 형제라는 한자가 쓰여 있고,
오른쪽엔 월, 화, 수, 목, 금, 토, 일을 나타냈다.
노란색 위에는 자신의 이름 등을 표현하였다.
그림 그리기 중 글자를 쓰는 것은
자신의 뜻을 명료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심리가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현호는 그림을 정교하게 그렸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지능이 높고 색채 감각도 탁월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난 뒤 현호와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현호야! 이 구름은 뭐야?"
" 파란 눈은 동생이고 빨간 눈은 나예요."
" 아, 그렇구나!"
" 그런데 왜 눈이 빨갛지?"
" 동생 때문에 울었어요. 동생이 내 말을 듣지 않고…."
현호가 다시 울먹였다.
“그랬구나! 어이구 우리 현호 정말 화나고 속상했겠네!”
“힘들어요. 동생이 얄미워요.”
누더기를 입은 천사는 자기 마음이라고 했다.
천사 오른편에 그려진 한 송이 꽃은 사랑받고자 하는
아이의 간절한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천사 오른쪽에는 구름을 타고 천사를 향해 가고 있는
고동색 병아리를 그렸는데 어렸을 적 키우던 병아리가 죽었다며 슬퍼했다.
고동색은 부모의 애정을 갈구하는 심리를 나타낸다고 하였다.(김재은. 1998)
그 뒤를 따라 자신을 나타낸 울어서 눈이 붉은 구름이
우울한 표정을 짓고 둥둥 떠 있다.
그림에 표현된 신호에 대한 의미들을 대화를 통해 알아냈다.
맞벌이 가정에서 누나인 현호에게 동생을
보살필 것을 요구하는 부모의 지나친 압박과
이를 하지 못했을 때 이어지는 나무람이
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현호 자신의 학업에 대한 과중한 압력도
심리적 위기를 높여다.
동생과 비교하여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박탈감, 차별받는다는 생각,
동생이 말을 듣지 않아 감당하기 어렵다는
호소를 들으며 안쓰러웠다.
이러한 요인들이 학교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
부적응 행동들이 나타나곤 했던 것이다.
울먹이는 아이를 보자마자 따뜻하게 감싸주며
내재된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즉흥놀이 활동을 실시하였다.
종이 찢기, 나무젓가락 칼싸움 등은
내면의 감정을 승화할 수 있는 놀이치료 활동이다.
자신의 문제를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말문을 열게 하는 효과적인 치료기법이다.
이를 통해 라포형성(Rapport Building), 카타르시스(Catharsis),
자신의 문제 직시하는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 후 그림 그리기를 통하여
아이의 심층적인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활동을 시작했다.
그림은 아이가 내면의 자신과 대화를 하게 되고,
왜 자신이 이렇게 슬퍼하는가?
왜 분노하는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활동과정에 동참하고,
관찰하며 대화를 통해 문제를 파악하고
치료계획을 세우는 중요한 단서를 포착한다.
사랑받고 싶어요
현호는 가정에서 동생과 차별하는
부모의 육아 태도로 발생한 심리적 위축으로
학교생활에서도 정서적 문제점들이 나타났다.
그 후 부모 상담을 실시하였고,
보다 바람직한 양육방법 개선에 힘썼다.
학교에서는 아이의 떨어 자존감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적용하여 아이의 긍정적인 성장 촉진을 위해 힘썼다.
심리적 정서적으로 미발달 된 아이들은
성장 발달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한다.
아이의 문제 원인을 알아야 도울 수 있는데
미성숙한 아이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인지하기 어렵다.
때문에 상담자와 의사소통에 되지 않아
문제의 원인을 찾기가 어렵다.
놀이치료는 이런 상황에서 상담자와 내담자에게
매개 재, 촉매 재는 물론 치료재로서의 역할도 한다.
‘누더기를 입은 천사’는 현장 연구 논문에
실천 사례로 첨부했던 내용이다.
이후 인물화 진단 및 모래 놀이치료 등
다양한 기법 적용과 학부모 상담 병행을 통해
6개월여의 과정을 거쳐 학교생활 적응력을 높일 수 있었다.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는
어떤 문제에 있어서든지 매우 중요하다.
문제 행동이나 부적응 행동 등에 대한
개입도 즉각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치료 효과가 높고 휴우 증도 적다.
결정적 시기에 개입하는 것은 모든 문제해결의 최고의 방법이다.
‘누더기를 입은 천사’도 발견 즉시 사건에 개입하였다.
현호는 학교생활 적응력이 향상되었으며,
밝고 긍정적인 태도 변화는 물론 생활 전반에 자신감이 높아졌다.
지금도 현장에는 많은 문제 행동들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이 매우 필요하다.
아쉽게도 시간이나 여건 등을 확보할 수 없거나
심리상담 전반의 노하우가 부족해서
문제 행동들이 개선될 수 있는 시기를 놓치고
고착되는 현상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