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북에는 매일 옛날 오늘 있었던 일들을 알려준다.
삼 년 전 오늘 당시 1학년이었던 학생과 교장실에서
점심시간에 표현예술 심리치료를 적용하여 상담한 내용이다.
학교에 부임하자 교장실을 ‘참새 방앗간’이라 붙였다.
누구나 편한 마음으로 들렀다 가는
사랑방 같은 이미지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날 점심 식사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있는데
가끔 참새가 방앗간을 들리 듯 오곤 하던 1학년 희수(가명)가 왔다.
희수는 마치 자기 집에 온 것처럼
교장실 곳곳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와 앉았다.
희수는 엄마 아빠와 살 수 없어서
보육시설에서 생활하는 마음이 아픈 아이다.
ADHD로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친구들과 문제를 일으켜 학교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같은 반 친구와 담임들은 희수로 인해 힘들어하고
어제도 담임이 이와 관련된 민원에 시달리는 것을 보았다.
ADHD 치료 약을 먹으면 식욕이 없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는 작고 연약하다.
하지만 그 아이의 충동성과 공격성은 매우 높고
잠시도 집중하지 못해서 정상적인 수업이 어려운 상황이다.
약을 먹는 날은 증상이 덜 하지만,
약을 먹지 않는 날은 증상이 심해서, 담임이 감당하기 어렵다고 한다.
희수와의 첫 만남은 9월 초 부임하고서부터다.
희수는 키가 작고 말랐지만
가무잡잡하고 민첩하게 몸놀림이 빠르며
이목구비로 또릿또릿 한 매력적인 아이였다.
몇 번의 만남으로 희수는
참새방앗간(교장실)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마음이 답답하고 아무 곳에도 갈 곳이 없을 때
빈 바람처럼 왔다가는 아이다.
특별히 위안받으려고 하거나
무슨 도움이 되리라는 희망 같은 것을 갖고 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바람처럼 왔다
채우지 못한 빈 마음을 안고 돌아가곤 했다.
그 아이가 오랜만에 색종이로 접은
도끼 모양의 작품을 들고 참새방앗간으로 왔다.
“희수야, 잘 지냈어?”
다시 하는 인사말에 답도 없더니 대뜸
“선생님,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 저도 모르게 친구들을 때리게 돼요.”
“너도 모르게 친구들을 때리게 된다는 말이지?”
“네” “친구들을 때려서 마음이 힘들구나!”
“네”
“왜 그런 것 같아?”
“ 그냥 막 저도 모르겠어요”
말하는 아이의 작고 조그만 모습이 우울하다,
눈빛이 텅 비었다.
무심한 듯 내뱉는 말에 감당하기 힘든 아픔이 들어 있다.
“그것은 뭐야?”
“손도끼예요.”
“희수가 만들었니?”
“네”
“왜 손도끼를 만들었어?”
손도끼는 희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공격성과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대답도 없이 테이블에 놓여 있는 애니 클레이를 만지작거리며
“빨강과 파랑을 섞으면 무슨 색이 돼요?”
“글쎄, 한번 섞어볼까?”
희수는 작은 손으로 빨강과 파랑
애니 클레이를 조금씩 떼어 조물조물한다.
흰색도 조금 넣으면서 손바닥으로 동글동글 굴려도 보고
양손으로 쭉쭉 잡아 늘여도 보면서
빨강과 파랑 클레이를 섞어보려 노력했지만,
각각의 색은 변하지 않고 엉켜있었다.
희수는 시간이 다 된 것을 알고 테이블에 클레이를 놓고 일어섰다.
“희수야,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다음에 또 와”
“네”
참새 방앗간 문을 열고 웃음기 없는 얼굴로 뒷모습을 보이며
희수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돌아갔다.
희수가 조물조물하다 놓고 간 애니 클레이를 만지작거리며
따뜻한 손바닥 사이에 놓고 눌러서 얇게 펼쳐 보았다.
작고 힘없는 손가락으로 비비고 납작하게 넓혔다가
다시 주물럭거리며 섞다가 놓아두고 간 그 속에는
멋진 세계가 창조되어 있었다.
섞이지 않을 것 같았던 색들이 섞여서 파랑, 주황색, 연보라 색으로 선과 면이 분할되고 물결치고 회오리 치는 듯한 장면이 오묘하고 신비롭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천지창조가 일어 나는 곳 같기도 했고,
아기를 잉태하고 있는 생명의 산실 같기도 했다.
자신이 주물러서 만들어 논 세계를
알지 못하고 아이는 교실로 돌아갔다.
언젠가 아이가 다시 오면 꼭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희수에게 그것을 말해주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왔다.
가슴 한편에 희수가 빨강과 파랑을 섞어서
만들어진 신비로운 세계를 담아두고서.
유년기에 부모가 없다는 것은 생존을 위협받는 일이다.
가까운 어딘가에 엄마·아빠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다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어린 맘에 그 맘을 어쩌지도 못해서 저리도 아픈 것을…
알고도 어쩌지 못하는,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이 엄습해 왔다.
배고픈 이가 밥을 먹어야 그 고통에서 헤어 나올 수 있듯이
엄마·아빠가 그리워서 아픈 것은 엄마·아빠의
품속으로 돌아갈 때만 근원적인 치유가 일어난다.
“빨강과 파랑을 섞으면 무슨 색이 될까요?”
아이의 그 물음은
“엄마, 아빠와 함께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로 내겐 들렸다.
섞으려고 해도 섞이지 않는다며
낙담한 채 돌아간 그 아이에게
빨강과 파랑을 섞어서 만들어진 세상을
알려주지 못하고 보여주지 못한 것이 깊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빨강과 파랑을 섞으면 무슨 색이 될까요?’
아이의 물음이 계속 맴돌고 있다.
아이는 그 의문이 풀리기까지 되풀이하면서
자기 삶에서 해답을 찾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 길에 누군가 아이의 손을 잡아주는 이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지금 비록 아픔과 슬픔 속에 있을지라도,
여린 손가락으로 조물거리다 놓고 간
클레이 속에 펼쳐진 신비한 세계처럼
자기의 삶을, 그 아픔을 치유하며 만들어낸 흔적들로 엮어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독특하고 매혹적인 삶을 살아갈 거라고….
나의 삶 속으로 잠시 왔다
지금 어디쯤에서 나를 잊고 살고 있을 희수에게
“희수야, 빨강과 파랑을 섞으면 네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단다.”
하며 손을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