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살자. 겨울나무

부제: 알몸의 진실

by 이슬

겨울나무 가지엔

마른 고독과 깊은 침묵만이

가득 차 있다.

차가운 바람의 채찍과

질시에 찬 푸른 허공이

송곳처럼 아프다.

모든 것이 낡고 죽어버린

겨울 들판에 한 자세로 선 채

강바람에 쓸리는 거리를 바라다본다.

한때는 여인 내의

고운 향기에 가슴이 설레기도 했고

타오르는 불꽃처럼 이루고 싶은

꿈을 향해 내달리기도 했다.

그리고 때론

어둠의 그늘 속을 방황하는

들짐승처럼 헤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빈 손

모든 것을 버린 채

오욕에 찬 시간을 견디고 있다.

한 줌의 거짓도 없이

바람이 아무리 분노에 찬 채찍을 휘둘러도

하얀 눈보라에 가지가 꺾여도.

겨울나무는 밤에만 운다.

차가운 별 빛에 꿈을 실어 보내며

첫사랑 고운 님 같은 달님을 바라보며

밤새 혼자 운다.

아침마다 온 누리를 뒤덮은

하얀 서리는

겨울나무의 한숨이 어린것이다.


저리도 희고 정갈한 슬픔을 내뱉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또 하루를 보낸다.

겨울나무는 안다.

시간은 가고 오는 것

차가운 질시의 계절도 뜨거운 열정의 날들도

흘러가는 시간 속에 묻힌다는 것을

그래서 겨울나무는

알몸인 것을 빈 손인 것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버릴 때만 비로소

새로운 길을 찾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빈 손일 때 집을 나서자.

알몸의 진실을 안고

마치 북극에 사는 펭귄이

뒤뚱거리며 빙하 위를 걷고 또 걷고

갈라져 건널 수 없는 빙곡 앞에서 좌절할지라도

마침내 바다를 찾아가고야 마는 펭귄처럼

알몸의 진실로 마주 설 땐 우주도 숨을 죽인다.

그리고 살자.

겨울나무처럼 겨울나무처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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