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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간 Jun 29. 2023

알레르기

나무인간 6

2020년 11월 7일


대학 다닐 때 친한 누나가 있었다. 나이 많은 후배였던- 누나는 햇빛을 싫어했다. 천천히 걸었고 손엔 항상 어두운 색 장우산이 들려 있었다. 철없는 내가 하루는 미대생이 왜 그렇게 못난 우산을 들고 다니냐고 물으니, 양산은 빛이 많이 흡수되지 않아 예쁘기만 하고 쓸모가 없다고 했다. 나중에 누나가 알려준 병명을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냥 단순 알르레기인데 유별난, 그래서 조금 괴짜이고 예민한 사람이라 여겼다. 누나는 알레르기 때문에 몇 가지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그중 항우울제도 있었는데 먹으면 너무 힘들어 자주 먹진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야외활동이 어려워 체력이 약했다. 한 여름엔 학교 주변 산책도 힘들어했다. 대신 어두워지면 사람들과 어울려 집 근처에서 술 한 잔 하는 걸 좋아했다. 누난 내 농담도 좋아했는데 너무 잘 웃어줘서 도리어 무안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자리 마지막엔 항상 잘 될 거라고 독려해 줬다. 모난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이 매우 드물었기에 그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누나의 주량은 기껏 소주 두 잔이었지만 이따금 가진 술자리는 그녀가 누릴 수 있는 생생한 즐거움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3학년을 보내고 4학년이 된 나는 엉망으로 겨우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탓에 내게는 누나가 잘 보이지 않았다. 몸이 안 좋아져 다시 휴학했다는 소문이 어렴풋이 들렸지만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그녀의 안부를 잊었다. 돌아보면 나의 공감각은 부끄러워 어디 내놓지 못할 그릇이었고- 나는 뻔뻔하게 졸업 이후 누나의 소식이 궁금하지 않았다. 유학 때 몇 번 그녀가 꿈에 나왔는데 항상 조용히 남의 말을 잘 경청하던 그 미소 그대로였다. 내 이기적 무의식이 그런 누나의 모습만을 불러냈다.

이제는 그 병이 매우 고독하다는 걸 안다. 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영원히 이해한다고 자신하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 무엇이 가장 어렵냐고 내가 묻자 누난 자신의 처지를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 감정과 고통을 일일이 설명하는 일이라고 했다. 심지어 학교에서조차. 그런 사정의 누나가 학교에서 어떻게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하고 졸업했는지, 아니 안 했는지도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건 누나가 건강상 이유로 졸업 후 작업을 이어가긴 벅차 보였다.

우리는 여러 정보를 통해 직간접으로 암이나 교통사고 또는 화상을 경험한다. 햇빛 알레르기는 아니다. 그것이 우리 정서를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완벽히 모른다. 나 역시 어느 죽음을 3인칭으로 목도하지만, 2인칭도 아니므로 그것이 무슨 의미이고 어떤 고통인지 절대 이해할 수 없다. 바로 옆에서 목격하지 못한 죽음의 이해는 유추일 뿐,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의 말처럼 인간은 타자의 고통으로부터 인칭의 시점을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오히려 불가능한 공감각을 발현하려 들수록 비참할 정도로 그것과 멀리 있는 자신의 고독을 발견한다. 따라서 타인의 죽음을 모르는 거리감으로부터 우리가 진정 그녀의 고독을 위로하려 드는지 의문해야 한다. 그것이 그 죽음을 이해하는 가장 가까운 행위일 것이다.

세상은 코미디언의 죽음을 기리는 미덕을 지녔다. 그러니까 그녀의 죽음을 사람들이 조금만 더 슬퍼하면 좋겠다. 하지만 다들 입으로 안타까울 뿐, 글로 애도하는 이를 나는 보지 못했다. 자살을 어떤 중범죄만큼이나 금기시하는 한국사회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녀가 선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기에 내 경험을 빌어 그에 대한 좁은 소회를 적는다. 

그녀가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나 '모던 타임스'의 찰리 채플린 같은 위대한 희극인이 아닐지는 모르나, 그녀라는 희곡이 보여준 '선의 평범함'이 오래 회자되길 바란다. 조용하고 따뜻한 그녀의 웃음처럼. 모두가 알고, 내가 한때 알던 그녀는 약했지만 매일 최선을 다 한- 점잖고 유머를 좋아했으며, 주변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나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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