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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간 Jul 07. 2023

나에게 쓰는 편지

나무인간 39

2023년 3월 27일

- 술 마시고 쓰는 편지


상업갤러리, 어차피 갤러리는 다 상업 아니 사업체입니다. 매출이 없으면 존재하지 못합니다. 저는 두 번 다시 갤러리 일 안 하려고요. 이제 큐레이터는 그만둘까 합니다. 5년 간 충분히 배웠고 배운 만큼 후회도 만감도 교차합니다. 다시 돌아가려고요. 허접한 상업미술작가들에게 굽신거리기도 싫고, 별로인 갤러리에 작가 연락처 얻으려고 눈치 보이는 꼴도 싫어요. 대표들은 대부분 불편한 건 다 큐레이터에게 시키니까 그런 어쩔 수 없는 불쾌감은 반복됩니다. 한국에서 큐레이터로 산다는 거 정말 별로예요. 터무니없는 연봉에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를 요구받습니다. 제대로 된 학예팀이 운영되는 갤러리도 거의 없고, 심지어 제가 얼마 전에 만난 유선태 선생님 역시 한국에서 갤러리는 딜러에 가깝다는 말 저 역시 동의합니다.


여러 가지 형태로 다양한 큐레이터들이 갤러리에 입문합니다. 그리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양하게 경험을 합니다. 하지만 그 경험의 공통점이 있다면 일관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번 갤러리를 옮기는 큐레이터들이 대표나 관장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과 스트레스를 받는 거죠. 그 루틴이 사실 꽤 오랫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비단 해바라기, 도자기, 호랑이, 꽃 그림 파는 갤러리뿐만 아니라 우리가 근사하게 생각하는 메이저 갤러리까지 마찬가지죠. 그래서 작가들은 갤러리에게 낮은 위치로 보이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작가는 결국 갤러리에 물건을 대주는 생산자 노릇밖에 못하니까요. 큐레이터도 이와 결이 같습니다. 해외에서 양질의 커리큘럼을 마쳐도 막상 현장에서 여느 과정을 거친 큐레이터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처우 그리고 언제든 새로 구할 수 있는 경력에 대한 함정까지. 사실 딜러들에게 정작 필요한 건 큐레이션인데 그것을 딜링에 이용하면서 큐레이터가 본질적인 업무나 자기 발전을 못하게 된 현실이 어제오늘은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또 허접한 이유로 두 번 다시 미술판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는 겁니다. 저는 큐레이터 이제 안 합니다. 전시기획은 종종 하겠습니다. 나이와 이력에 상관없이 좋은 작가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기쁩니다. 그리고 그들과 케미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인데 이제 짜증 납니다. 안 할래요. 술 마시고 쓰는 글인데 고칠 생각은 없습니다. 부끄럽지도 않아요. 그만큼 이상한 경험을 많이 해서. 다시 글이던 그림이던 작업하고 좋은 사람 있으면 전시기획이나 다른 형식으로도 예술할 겁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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