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살아가다 보니 선택에는 항상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고,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결정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항상 장점만은 아니고, 단점이라 여겼던 것이 꼭 단점만으로 남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며 깨닫는다.
멕시코 캄페체에서의 나의 두 번째 보금자리, 12, 우라칸(Calle Huracán)의 하얀 집, ‘까사 블랑카(Casa Blanca)’는 나에게 혹독한 시련과 그보다 더 값진 행운을 동시에 안겨준, 바로 그런 곳이었다.
분명 첫 번째 집보다 물이 콸콸콸 잘 나오고 설거지도 샤워도 수월했지만 이 집에서도 또 다른 물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내가 너무 콸콸콸 나오는 물을 바랐던 건가?? 집안 여기저기서 물이 새는 일이 발생해서 배관공 펠리페 아저씨는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물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건으로 우리 집을 드나들었고, 우리는 서로 "Nos vemos en un mes.Don Pellipe! (펠리페 아저씨, 한 달 있다가 봐요!.)" " Espero que no ( 아니요~)" 같은 웃지 못할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가 막혔던 사건은 온 가족이 큰맘 먹고 계획했던 2박 3일짜리 여행 당일 아침에 터졌다.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 마지막으로 빨래를 걷으러 2층에 올라갔던 나는 그만 입을 다물지 못했다. 2층 전체가 흥건한 물바다를 이루고 있었고, 그 물이 계단을 타고 폭포수처럼 흘러내려 현관을 넘어 집 밖으로까지 번지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의 근원지가 우리 집임을 직감하고는 부리나케 펠리페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우리의 새벽 출발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오후 다섯 시가 넘도록 펠리페아저씨는 원인을 찾으려 사투를 벌였지만, 문제는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여행을 포기할 수 없었던 우리는 펠리페아저씨에게 집 열쇠를 맡긴 채 떠나는 황당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2박 3일 뒤, 노심초사하며 집에 돌아왔을 때, 놀랍게도 펠리페아저씨는 여전히 그곳에서 문제와 씨름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집 건물 전체에 물을 공급하는 펌프가 고장 났던 것이었고, 그는 꼬박 사흘 밤낮을 그 문제 해결에 매달렸던 것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아찔했지만, 그 며칠간의 마음고생과 불편함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비둘기와의 전쟁도 빼놓을 수 없다. 계약 전 보았던 비둘기 깃털들은 이사 들어오는 시점에는 깔끔했다. 집주인이 비둘기 깃털이며 수북이 쌓여 있던 흔적을 모두 치워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알게 되었다. 그곳은 원래 비둘기들의 안락한 휴식처이자 놀이터였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비둘기들은 억울했는지, 아니면 분노했는지, 집주인이 ‘오지 말라’며 세워놓은 커다란 가짜 부엉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들었다. 그들은 마치 복수를 하듯 베란다를 똥밭으로 만들고, 날갯짓으로 난장판을 벌였다.
결국 우리는 베란다에 촘촘히 펜스를 치고 천장 일부를 막는 등 대대적인 방어 공사를 감행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을 만하면 나타나 우리를 약 올리는 비둘기들을 쫓아내기 위해, 남편은 2층에서 허구한 날 기다란 막대기를 휘두르는 진풍경을 연출했고, 덕분에 ‘비둘기 퇴치 전문가’라는 새로운 별명까지 얻었다. 다른 이웃들이 한 코리안 남자가 이층에서 허구한 날 막대기를 휘두르는 모습을 봤다면 분명 고개를 갸웃했을 것이다.
쓰레기를 버리는 일도 매번 긴장의 연속이었다. 쓰레기차가 오는 날, 깜빡 잊고 미리 집 앞에 쓰레기봉투를 내놓았다가는 여지없이 봉투가 다 헤집어져 내용물이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플라스틱 병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뒤져놓고 간 자리였다.
몇 번이나 그 꼴을 당하고 나서는 요령이 생겨, 쓰레기차가 오는 특유의 종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올 때쯤이면 번개같이 뛰어나가 봉투를 내놓고 들어오곤 했다.
거기에 서툰 리모컨 조작과 나의 급한 성격이 합작하여 문이 열리기도 전에 차를 빼다 차문을 받은 후부터 문이 뒤틀려 수시로 말썽을 일으키던 주차장 문까지, ‘까사 블랑카’에서의 하루하루는 크고 작은 사건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 모든 시련 속에서도 하얀 집은 나에게 그보다 훨씬 더 큰 기쁨과 위안을 안겨주었다.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아이들 학교와 학원들이 모두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점이었다.
큰아이는 수영이 끝나면 젖은 수영복 차림 그대로 수건만 두르고 집에 와서 바로 샤워를 할 수 있었고, 피아노 학원도 바로 길 건너였다. 작은아이의 미술 학원은 마침 지나가 소개해준 바로 옆집이어서, 아이와 함께 킥보드나 자전거를 타고 콧노래를 부르며 오갈 수 있었다. 덕분에 차 안에서 아이들을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다음 스케줄까지 애매하게 시간이 뜨는 일이 사라져, 내 시간도 한결 여유로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행운은 디나가 바로 옆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제법 친해진 디나는 내가 이사 온 것을 알고는 더욱 살갑게 다가와 주었고, 그녀 덕분에 나는 자연스럽게 동네의 이런저런 모임과 파티에 초대받으며 현지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디나의 소개로 알게 된 티아 니디아(Tía Nidia)와 티오 프레디(Tío Predy) 부부 역시 우리 가족을 늘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좋은 이웃이었다. 그분들 댁에 초대를 받아 맛있는 현지 음식을 맛보기도 하고,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정을 쌓아갔다. 특히 티아 니디아는 타지에서 온 우리를 여러모로 마음 써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