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니디아의 생일파티: 의자가 부서지며 쌓인 정

by ElenaLee


티아 니디아의 생일, 그리고 뜻밖의 초대



‘까사 블랑카’에서의 파란만장한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옆집 친구 디나로부터 반가운 문자가 도착했다. 바로 앞집에 사시는 티아 니디아의 생일인데, 저녁에 조촐하게 케이크만 자를 예정이니 잠깐 들르라는 초대였다. 이미 여러 번 그 따뜻한 마음씨를 경험했던 터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니디아의 작은아들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예전 집에 살 때, 큰아이 학교 준비물로 ‘수피로스(Suspiros)’라는 멕시코 전통 과자를 구해야 했는데, 동네를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가 없어 막막해하던 중이었다. 그때 우연히 디나와 이 이야기를 나누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니디아의 아들이 선뜻 나서서 수피로스를 파는 곳을 알려주며 큰 도움을 준 적이 있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던 그는 영어를 꽤 능숙하게 구사했고, 그 친절함 덕분에 나는 그에게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바로 니디아의 아들이었고, 그 덕분에 나는 니디아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어딘지 모를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차피 걸어서 잠깐이면 되는데, 당연히 가야지!” 나는 흔쾌히 디나의 초대에 응했다.



의자 대소동: 민망함 속에 피어난 따뜻함



그날 저녁,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니디아의 집으로 향했다. 파티는 그녀의 말처럼 정말 소박했다. 하지만 거실에는 맛있는 케이크와 함께 따뜻한 웃음소리가 가득했고, 처음으로 경험하는 멕시코 어른의 생일 파티는 정겹고 아늑한 기운으로 충만했다.


그곳에서 나는 또 한 번 이방인으로서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모든 관심이 자연스럽게 나와 내 남편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행히 니디아의 아들이 옆에서 통역을 맡아주었고, 우리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창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오가던 그때였다. 갑자기 내가 앉아있던 나무 의자에서 “빠지직!” 하는 소름 돋는 소리가 나더니, 순식간에 의자 다리 한쪽이 힘없이 주저앉아 버렸다! 당황한 나는 중심을 잃고 바닥에 넘어질 뻔했고, 순간 파티장의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얼굴이 화끈거려 숨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 몸무게가 적잖이 나가는 탓도 있었겠지만, 평소 의자 끝부분에 살짝 걸터앉는 나의 못된 버릇이 문제였던 것 같다. 의자가 내 무게와 잘못된 자세를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 버린 것이다. “Lo siento! Lo siento muchísimo!”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어쩔 줄 몰라하며 연신 사과를 외쳤다.


하지만 니디아와 가족들, 그리고 손님들은 오히려 유쾌하게 웃으며 나를 안심시켰다. “괜찮아,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의자가 낡아서 그래.” “네가 안 부쉈으면 내가 앉았다가 다칠 뻔했네!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판이야, 하하!” 그들의 너그러운 반응에 나는 몸 둘 바를 몰랐고, 미안함은 오히려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화장품 선물, 그리고 '백만 배의 행운'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부서진 의자 생각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저 의자를 고칠 수 있을까? 아니면 똑같은 걸로 새로 사다 드려야 하나?’ 고민이 깊어지던 그때, 마침 남편이 회사에서 받아왔다며 새 화장품 세트 상자가 생각났다. 매니저급 직원들에게 선물로 지급된 것이라고 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 아니 ‘간사한 계획’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그 화장품 세트를 들고 바로 다음 날 아침 니디아의 집으로 달려갔다. 어제의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정중히 사과하며 준비한 선물을 건넸다. 내심 ‘이걸로 의자 값을 퉁칠 수 있겠지?’ 하는 계산적인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니디아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기뻐하며 선물을 받았다.


그녀의 환한 미소를 보니, 나 역시 진심으로 기쁘고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나는 그날 내가 선물한 화장품 박스보다 어쩌면 백만 배는 더 큰 사랑과 관심, 그리고 도움을 그 후로 니디아와 그녀의 가족들에게 받게 되는 행운을 누렸다. 그날의 작은 해프닝이 오히려 우리 사이를 더욱 가깝게 만들어준 기폭제가 되었던 것 같다.



나의 캄페체 이모, 티아 니디아: 피비뽀요에서 꽃다발까지



티아 니디아는 마치 친정어머니처럼 나를 살뜰히 챙겨주셨다. 그녀 역시 젊은 시절 남편의 직장 때문에 멕시코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아이들을 키웠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방인으로서 우리가 겪는 어려움과 외로움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공감해 주셨다. “나도 예전에 네 마음과 똑같았단다.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지고, 너도 이곳에서 분명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녀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는 지친 내 마음에 큰 힘이 되었다.


한 번은 그녀가 캄페체의 전통 음식인 피비뽀요(Pibipollo)를 커다란 쟁반 가득 만들어 우리 집에 가져다주셨는데, 사실 나는 다른 곳에서 피비뽀요를 처음 먹었을 때 특유의 향과 질감 때문에 입에 맞지 않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띠아 니디아가 정성껏 만들어준 피비뽀요는 정말이지 환상적인 맛이었고,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고 썼다는 것이 느껴질 만큼 풍미가 깊었다.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 그래도 한번 맛보렴.” 수줍게 건네는 그녀의 미소에서 진심 어린 따뜻함이 느껴졌다.


하루는 ‘엄마의 날’이라며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고는 작은 꽃다발을 수줍게 건네주시기도 했다.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최종 결정하고 이삿짐이 먼저 빠져나가 음식을 해 먹기 어려워졌을 때도, 그녀는 거의 매일같이 음식을 만들어다 주시며 우리의 빈 냉장고를 채워주셨다. 그 넘치는 관심과 조건 없는 사랑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부서진 의자가 이어준 소중한 인연



때로는 사소한 실수나 예기치 않은 사건이 오히려 사람들 사이의 정을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주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그날 부서진 의자와 향긋한 화장품, 그리고 이후 이어진 수많은 따뜻한 순간들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캄페체에서의 내 삶은 그렇게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과 소중한 인연으로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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