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멕시코 교장실에 간 엄마

큰 아이가 겪은 차별

by ElenaLee


아들이 친구를 때렸다고요?



언제나 그렇듯, 사건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리고 이번 일 역시 그랬다. 큰아이를 픽업하러 학교에 갔는데, 이전 학부모 미팅 때 아이에 대해 영어로 친절히 설명해 주어 안면이 있던 영어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렀다. 큰아이가 어떤 여자아이를 때렸고, 그래서 학교 측에서 조치를 취했으며 아이에게는 반성문을 쓰게 했다는 설명과 함께 종이 한 장을 건넸다. 나는 일단 알겠다고, 죄송하다고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아이와 함께 차에 올랐다.

차 안에서 자초지종을 묻자, 큰아이는 굳은 얼굴로 그간의 일을 털어놓았다. 그 여자아이는 평소 함께 어울려 다니던 다른 친구들과 무리 지어, 우리 아이가 한국에서 온 것을 명확하게 알면서도 계속 "치노(Chino, 중국인을 비하하는 말)"라고 놀리고 눈을 찢는 행동을 하는 등 장난을 이어왔다고 했다. 그날은 큰아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 아이의 어깨를 툭 쳤고, 그 여자아이가 바로 선생님에게 일러 일이 이렇게 커졌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친구를 때린 행동 자체는 반성하고 있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속에서는 뜨거운 분노가 치솟았다.



분노와 결단: "이건 명백한 인종차별입니다"



아이에게는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친구를 때린 건 잘못한 거야. 다음부터는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은 안 돼. 하지만 엄마는 네가 그 아이들이 알든 모르든 명백한 차별을 당했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걸 왜 더 빨리 부모에게 말하지 않았니. 엄마 아빠는 언제든 널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는데, 너 혼자 끙끙 앓고 있으면 안 되는 거야. 네가 한국인인걸 아는데도 '치노'라고 부르고 눈을 찢는 행동을 한 건, 그건 명백한 인종차별이야. 엄마는 이 문제에 대해 학교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공론화시킬 거야."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남편과 밤늦도록 상의했다. 남편은 알렉스를 통해 학교 디렉터(교장)와의 면담을 잡았고, 나는 그동안 큰아이가 겪었던 지속적인 차별 행위들에 대해 컴퓨터로 조목조목 사건 일지를 작성한 뒤 스페인어로 번역했다. 디나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자, 그녀는 내 일처럼 분개하며 "가서 싸워야 한다"라고,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했는지 여러 가지 조언과 함께 실질적인 이야기들을 공유해 주었다. 큰아이는 그 여자아이뿐만 아니라 같은 반 남자아이들 몇몇으로부터도 비슷한 방식의 차별적인 말과 행동을 겪었다고 했고, 나는 그 아이들의 이름까지 모두 기록해 두었다.



받아들일 수 없는 '반성문', 그리고 요구사항



미팅 당일, 나는 내가 가진 옷 중에 세상에서 제일 단정하고 깨끗한 정장을 꺼내 입고, 평소에는 잘 신지도 않던 높은 구두까지 챙겨 신었다. 최대한 당당하고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학교장실에서 마주한 디렉터에게 남편은 스페인어로 번역해 프린트한 사건 일지를 먼저 전달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간 요구사항들 – 학교 측의 책임 있는 사과와 조치,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교육 프로그램 도입,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가 겪은 일에 대한 정확한 인지와 공정한 처리 – 을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특히 나는 큰아이가 작성했다는 ‘반성문’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큰아이에게 확인하니, 반성문은 아이의 생각과 감정이 담긴 글이 아니라 선생님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은 형식적인 글에 불과했다. 나는 이 반성문은 아이의 진정한 반성을 담고 있지 않으며, 사건의 전후 맥락 없이 일방적으로 가해자로만 몰아가는 처사라 동의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학교 측은 그저 반성문일 뿐이라며 중요하지 않다며 문제의 본질을 축소하려 했다.



학교장과의 숨 막히는 면담, 끝나지 않은 이야기


알렉스가 중간에서 통역을 해주었지만, 솔직히 내 생각에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모든 뉘앙스와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길고 간절하게 설명한 내용들이 때로는 너무 짧고 건조하게 요약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때 나는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배우는 것을 게을리했던 나 스스로에게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여하튼 나에게는 명백한 스페인어로 쓴 사건 일지가 있었기에,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입장은 충분히 전달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내가 내 아이와 문제가 있었던 학생들의 학부모들과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싶다고 요구하자, 학교 측은 학교 규칙상 허용되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내가 목소리를 높여 이 문제의 심각성과 학교의 책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자, 디렉터는 내가 그렇게 흥분해서 말하면 더 이상 이 미팅을 계속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터져 나오는 분노를 억누르고 최대한 감정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대화를 이어갔다. 옆에서 이 모든 과정을 큰아이는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의 편이 되어 싸워주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아이는 분명 고마움과 함께 어떤 안도감을 느꼈으리라.


긴 대화 끝에, 학교 측은 관련된 아이들의 부모에게 이번 사건에 대해 알리고 주의를 주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을 내놓았다. 내가 요구했던 모든 사항이 다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큰아이가 학교에서 부당한 차별을 당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일단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긴장이 풀려 소파에 누워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어보니 디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 있었다. 나는 디나를 보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와르르 쏟아졌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꼭 안아주었다. 괜찮다고, 다 잘 될 거라고. 그녀는 그날 밤 나를 위로하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동영상들을 연이어 보내주기도 했다.


학교장과의 면담에서 내가 원했던 모든 것을 얻어내지는 못했지만, 나는 엄마로서 내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로서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과 아이를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함께 공존하고 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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