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폭풍 뒤: 이해와 화합으로 가는 길

by ElenaLee


폭풍 뒤의 후회, 그리고 끝나지 않은 불안



그렇게 한바탕 폭풍(학교장과의 면담)이 지나가고, 나는 한동안 복잡한 감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애꿎은 남편에게 원망을 쏟아내기도 했다. 20대에 2년정도 캐나다에서 살 때는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전혀 느껴보지 못했기에( 아마 무뎌서 나만 모르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미디어를 통해 간간이 언급되는 인종차별은 그저 나와는 너무나 먼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다.

멕시코 캄페체에서 그때까지 지내는 동안에도 길에서 사람들이 우리 가족(그곳에서는 정말 찾아보기 힘든 아시안 가족이긴 했다)을 보며 "치노"라고 수군거리거나 대놓고 말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만, 그건 그저 그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일종의 무지에서 비롯된 해프닝이라고 애써 이해하며 넘겼었다.


하지만 내 아이에게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일어났던 그 일은, 어쩌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아이들 사이의 작은 다툼이나 소동으로 치부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크고 무거운 사건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남편에게 "왜 하필 이런 시골 같은 곳에 와서 우리 아들이 이런 일을 겪어야 하냐"며 날 선 말들을 쏟아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분노와 불안의 화살을 돌릴 곳을 찾지 못해, 가장 가깝고 만만한 남편에게 풀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 사건 이후, 나는 ‘인종차별’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한동안 예민하게 날을 세웠다. 혹시 작은아이도 유치원에서 아이들 사이에 비슷한 일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망상에 사로잡혀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막내는 그저 해맑고 순수했으며, 내가 걱정스레 던지는 질문들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조차 모르는 눈치였다. 아마 그 아이의 유치원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리고 큰아이의 경우도, 모든 아이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고, 소수의 아이들이 잘 모르고 한 행동이었을 거라고, 그 아이들도 어떤 시점에서는 자신들의 행동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작은 변화의 시작: 사과, 그리고 멈춘 놀림



한동안 내 일과는 큰아이를 학교에서 픽업할 때마다 "오늘은 괜찮았어? 혹시 또 이상한 말 하는 친구는 없었고?" 하고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나중에는 큰아이가 그런 나의 반복되는 질문에 질렸는지, "엄마, 이제 제발 그만 좀 물어보세요! 무슨 일 생기면 내가 먼저 말할게요!" 하며 귀찮아할 정도였다.


그러던 중,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아들을 놀렸던 친구 중 한 명이 직접 다가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학교에서 더 이상 아이를 놀리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조금씩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학교의 응답: '인종차별' 수업과 뜻밖의 제안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서도 연락이 왔다. 최근 학교에서 학생들 간의 이해와 존중을 높이기 위해 프로젝트 기반 수업을 강화하기로 했는데, 여러 가지 주제 중 하나로 ‘인종차별 및 문화 다양성’을 포함시켜 아이들이 서로의 다름을 배우고 존중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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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뿌듯함이나 만족감보다는 그저 깊은 안도감이 먼저 밀려왔다. 그리고 이 작은 변화가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아이에게도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성장하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이전에는 소극적이라고만 생각했던 학교 측의 이런 작은 관심과 노력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놀라운 제안이 이어졌다. 마침 다가오는 ‘디아 데 무에르토스(Día de Muertos)’를 맞이하여, 학교에서 각기 다른 문화권의 제단(祭壇)을 직접 꾸미고 소개하는 행사를 계획 중인데, 우리 남편에게 한국의 추석 제단을 꾸며 고등학생들에게 문화의 다양성을 직접 보여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큰아이가 다니던 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같이 붙어있었고 제단 프로젝트는 고등학교 아이들이 추석제단의 기본적인 구성이나 의미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필요한 물품 준비를 직접 할터이니 (병풍을 만들거나 그릇을 만드는등..) 우리에게는 제단에 올릴 몇 가지 음식 준비와 남편의 간단한 프레젠테이션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한복 입은 아빠와 추석 제사상: 캄페체에 전한 한국의 마음



우리는 당연히 기쁜 마음으로 참가하겠다고 했다. 제단이 설치되는 당일, 나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고기전과 산적을 준비했다. (물론 캄페체에서는 한국식 재료를 구하기 어려워, 단무지 대신 색깔을 맞추기 위해 노란색파프리카를 사용하는 등 나름의 창의력을 발휘해야 했다.)

남편은 결혼식 때 입었던 한복을 10년 만에 다시 꺼내 입고 학교로 향했다. 물론 알렉스도 그 자리에 함께해 통역을 도우며 축제를 성공적으로 치르는 데 큰 힘을 보태주었다. 행사가 끝난 후, 제단에 올렸던 음식을 함께 나눠 먹었는데, 학생들과 선생님들 모두 "정말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고 한다.



이해와 화합으로: 학교와 맺은 좋은 인연



나는 학교의 이러한 대처와 노력에 깊은 감사함을 느꼈다. 학교 측 역시 우리의 참여 덕분에 학생들에게 문화의 다양성을 생생하게 알릴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현했고, 그 일을 계기로 우리는 학교와 더욱 좋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라는 무지개가 떠오른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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