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생리를 언제 했었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습관처럼 구글 캘린더를 뒤적였다. 그리고 그제야 이번 달 들어 생리가 한참 동안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첫아이를 출산한 뒤로는 시계처럼 정확했던 생리 주기에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었기에,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신 테스트기를 사용했지만, 결과는 단호한 ‘아님’이었다. 예상치 못한 생리 불순에 당황한 나는 산부인과를 찾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캄페체에서 산부인과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 그때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구글 번역기로 ‘산부인과’를 스페인어로 검색해서 구글 지도에 넣어 주변 병원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페이스북 캄페체 엄마 그룹에 물어보거나 친구들에게 소개받으면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온갖 낯선 이름들 사이에서 그나마 의사 선생님이 여자 같아 보이고, 별 다섯 개짜리 리뷰가 두 개 달려 있는 병원을 발견했다. 한국에서 산부인과 가는 것처럼 예약 없이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다. 예상보다 규모가 꽤 큰 병원 로비에서 서툰 스페인어로 선생님 이름을 말하며 진료를 받고 싶다고 하자, 안내 데스크 직원은 2층으로 올라가라고 손짓했다.
2층 리셉션에서 다시 한번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고 하자, 그곳에 있던 할머니는 선생님이 오늘은 안 계시다며 다음 날짜와 시간을 예약해 주셨다. 비록 허탕을 치긴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 스페인어로 전화 붙들고 쩔쩔매는 것보다는 직접 가서 예약한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에 그나마 마음을 놓았다.
드디어 예약 당일, 떨리는 마음으로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선생님은 난생처음 보는, 마치 키를 재는 것처럼 생긴 체중계 위에 올라가라고 했다. 몸무게를 잰 후 작은 진찰대 위에 누우니, 선생님은 낡은 필립스 TV 화면 같은 모니터를 통해 내 상태를 확인하며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가며 문진을 했다. 그리고 피검사를 한 뒤 다시 방문하라는 말을 남겼다.
또 예약을 잡아야 하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오전에 검사를 마치고 오후에 선생님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선생님은 내 검사 결과를 보더니 내 호르몬 수치가 심각하게 낮다고 말하며 약을 처방해 주셨다. 그리고 약을 꾸준히 먹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함께 간 남편이 이사며 여러 가지 힘든 일들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거라고 하자, 선생님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동의하며 약을 먹으면 곧 좋아질 거라고 안심시켰다. 나는 어쨌든 큰 병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도 9개월 동안 생리를 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때도 나는 스스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내 몸은 이미 스트레스에 먼저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괜찮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살인적인 더위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내 몸은 이미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고, 생리 불순이라는 신호로 나에게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고, 다행히 약의 힘으로 내 생리 주기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디나가 아이 학교를 데려다주면서 봤다는 새로 생긴 레스토랑에 함께 가기로 했다. 페이스북에서 봤을 때 벽에 그려진 커다란 바나나 잎 그림과 알록달록한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어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예쁘고 ‘NEW’한, 등나무 줄기 같은 것으로 엮어 만든 의자에 앉자마자 불행이 찾아왔다. 식사를 하면서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설마설마하며 식사를 끝내고 내가 앉았던 의자를 보니 오랜만에 하는 생리의 양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던 탓일까. 갑자기 생리혈이 왈칵 쏟아져 의자를 붉게 물들여 버린 것이다.
그곳에 계시던 할아버지 웨이터는 당황한 나를 보며 괜찮다고,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나는 새로 생긴 레스토랑에 폐를 끼친 것 같아 너무나 죄송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급한 마음에 세탁비라며 200페소 정도를 거의 던지듯 드리고 황급히 레스토랑을 빠져나왔다. 그때, 디나는 나와 할아버지 웨이터가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이미 밖으로 나가 근처 약국에서 작은 생리대를 사 와서 내게 건네주었다.
그렇게 나는 겉으로는 잘 적응하는 척, 괜찮은 척, 잘 지내는 척 애쓰고 있었지만, 타향살이는 생각보다 훨씬 더 버겁고 힘든 여정이었나 보다. 몸은 정직하게, 내가 느끼지 못하는 스트레스와 고단함을 붉어진 의자라는 강렬한 흔적으로 내게 알려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