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오레오 도시락과 치즈케이크

by ElenaLee


유치원 적응왕? 하지만 도시락은 '전쟁'



작은아이는 킨데르(유치원) 생활에 제법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에게 학교생활에 대해 물어보면, 오늘은 공을 가지고 놀았다거나 친구들과 그림을 그렸다는 등 특별히 힘들어하는 기색 없이 재미있었다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스페인어를 못 하는 나를 배려해, 담임 선생님은 아이가 열이 나거나 중요한 준비물이 있을 때면 가끔씩 왓츠앱으로 알려주셨다. 다른 학부모들과도 왓츠앱 단체방으로 연결되어 있었기에 숙제나 준비물 등 어려운 점이 생기면 바로 확인하고 챙겨줄 수 있어, 여러모로 큰아이 때보다는 학교생활이 수월하게 느껴졌고, 나는 나름 안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내 마음을 늘 무겁게 짓누르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아이의 도시락 문제였다. 작은아이는 한국에 있을 때부터 유별난 편식쟁이였고, 멕시코에서도 내가 어떤 도시락을 싸주든 대부분을 남기기 일쑤였다. 어떤 날은 아예 손도 대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기도 했다.



오레오와 1cm 주먹밥: 엄마의 고육지책



사실 작은아이는 쌀의 미묘한 품질 차이까지 기가 막히게 알아채는지, 멕시코에서 산 쌀로 밥을 해주자 한국에서 먹던 쌀밥이 아닌 것을 단번에 눈치채고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결국 나는 작은아이 때문에 쌀마저도 두 시간 거리의 메리다까지 가서 사다 먹여야 했다. 블루베리나 딸기 같은 과일도 한국 것이 더 맛있는 건 그 조그만 녀석이 어떻게 아는지, 캄페체에서 파는 과일은 바나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거부했다. 빵 역시 한국 빵과는 밀가루가 다른걸 어떻게 아는지 같은 맛이 안 난다며 고개를 저으니,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는 시간은 나에게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큰아이라면 무엇을 싸주든 잘 먹고 편식이라고는 모르던 아이였기에 이런 고민 자체가 없었겠지만, 작은아이는 한국에서부터 이미 음식으로 나를 여러 번 좌절시켰던 전적이 있었다. 그래서 멕시코에서의 도시락은 대부분 아이가 그나마 먹는 오레오나 비슷한 초코맛 과자, 그리고 과일 주스가 주를 이루었다. 밥이라도 먹이려고 흰쌀밥에 소금 간만 해서 지름 1센티미터 정도 되는 작은 공처럼 동글동글하게 말아 넣어주기도 했다. 따뜻하지 않으면 밥을 잘 안 먹는 아이였고, 김이나 계란 등 다른 재료가 섞인 채로 차가워지면 더더욱 안 먹을 것 같아 흰쌀밥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내 걱정은 늘 아이가 학교에서 잘 뛰어놀 만큼의 에너지를 제대로 섭취하고 있는지였다. 항상 반 이상 남길 것을 예상했기에, 놀 수 있는 최소한의 에너지만이라도 과자든 주스든 배를 채워주길 바랐던 것이다. 아이를 픽업하면 나는 제일 먼저 도시락 통부터 꺼내 아이가 얼마만큼 먹었는지 확인했고, 집에 돌아오면 따뜻한 밥에 김을 돌돌 말아주거나 계란찜을 해주는 식으로 부족한 영양을 채우려 애썼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마트에서도 나는 작은아이의 도시락용 과자와 혹시나 먹을까 싶은 반찬거리를 고르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져간 도시락은 늘 반도 못 먹고 남겨오기 일쑤였다.



디아 데 무에르토스의 점심: 타말레스 거부 사건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디아 데 무에르토스(Día de Muertos, 망자의 날)’를 기념하여 여러 행사를 진행하고 특별 식사도 제공할 예정이니, 아이당 60페소를 내라는 안내를 받았다. 알겠다고 답하고 당일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


한창 내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왓츠앱 메시지가 왔다. 작은아이가 학교에서 제공한 점심을 전혀 먹지 않고 있으니, 아이가 먹을 만한 다른 밥을 싸서 가져다주든지 아니면 아이를 그냥 데려가라는 내용이었다. ‘아, 또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학교에서 제공된 식사는 달콤한 츄러스와 멕시코 전통 음식인 타말레스(Tamales)였는데, 작은아이는 츄러스 몇 조각을 겨우 맛보고는 타말레스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아마 보자마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으리라 짐작된다.)


나는 결국 아이를 그냥 데려가겠다고 답하고, 아침 8시에 등원했던 아이를 11시에 다시 픽업해 근처 리베로 풀로 향했다. 아이가 배고플까 싶어 가는 길에 도시에 하나뿐인 스타벅스에 들러 치즈케이크를 사서 먹였다. 작은아이는 치즈케이크는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변하지 않는 입맛, 변해가는 아이: 멕시코 속 작은 한국인



큰아이는 초반에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긴 했지만, 집에서 해주는 한국 음식으로도 충분히 만족했고, 외식으로 접하는 멕시코 음식들, 특히 타코나 피자 같은 것들은 오히려 좋아하며 금세 적응했다. 하지만 작은아이는 달랐다.

이 아이가 아직 너무 어려서 편식을 하는 걸까, 아니면 이곳 환경에 적응하면 좀 나아질까 수없이 고민했지만, 결국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아이는 자기가 먹던 음식 외에는 좀처럼 입을 대지 않았다.

네 살이라는 너무 어린 나이에 낯선 땅으로 와서 외형이나 생활 방식은 점점 현지 아이들처럼 변해가고 캄페체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갔지만, 단 한 가지, 음식만큼은 절대로 ‘멕시칸’이 되지 못했던 나의 막내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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