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도 함께
아침에 소랑언니에게 문자가 왔다. 비가 올 것 같은 날은 몸이 좋지 않아 못 갈 거 같다는 내용이다. 산후조리를 잘 못했거나, 힘을 쓰는 일을 많이 했거나, 사고로 부상을 입은 적이 있거나, 이렇게 비가 올 것 같은 날이면 몸이 아픈 사람들을 많이 봤다. 충분히 이해됐고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그럼 오늘은 뭐 할까?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혼자라도 비양도에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일단 소랑언니에게 의지하고 있었던 오늘 일정을 스스로 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배시간 체크와 한림항까지 가는 교통편을 검색해 보았다.
비양도에 가는 배는 9시, 10시, 2시, 4시, 하루에 4번 출항한다. 배편은 단체인 경우는 예약(온라인 또는 전화)해야 하지만 개인이면 현장구매도 된다고 해서 현장에서 구매했다. 소요시간은 15분이며 비양도에 도착하고 승선객들을 내려주는 즉시 다시 사람들을 태우고 한림항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나오는 마지막 배는 4시 15분. 나는 12시 배를 타고 들어가서 4시 15분 배를 타고 나올 때까지 4시간을 섬에 머물렀다. 도착해서 바로 점심을 먹고 자전거를 빌려 타고 섬 이모저모를 구경하고 비양봉을 싸묵싸묵 오르내리기까지 여유로운 시간이다.
워낙 작은 섬이라 배에서 내리자마자 식당과 카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비양도의 대표음식은 보말죽이다. 어느 식당에서나 먹을 수 있다. 식욕을 그다지 돋우지 못하는 누르스름한 푸른빛의 비주얼과는 달리 맛있다. 기대감을 내려놓는 것이 만족감을 높이는 효과도 있을 테지만 그와 별개로 다시 먹고 싶을 만큼 맛있다.
식당과 카페마다 자전거를 무상으로 대여해 준다는 문구가 나붙어있다. 자전거를 상비하는 곳들도 있지만 내가 점심을 먹은 식당에서는 바다를 접한 대형 'OO카페'로 가서 'OO식당'에서 밥을 먹었다고 하면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고 한다. 그 카페에서도 차를 마시면 자전거를 빌려 탈 수 있다. 자전거 대여시간은 자유다. 이용 후, 카페 앞 공터에 자전거를 세워두면 그만이다. 대여반납 체크 같은 것도 없다. 자전거로 섬을 둘러보는데 1시간이면 충분할 듯싶다.
하선을 기준으로 왼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면 비양봉으로 향하는 계단이 나온다. 물론 섬은 둥그니까 오른쪽으로 가도 나온다. 하지만 나의 동선대로 얘기하는 것뿐이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몇 계단을 오르자 완만한 오르막길이 나온다. 나무가 우거지지 않은 반개방형의 길을 지나면 조릿대가 빽빽한 터널이 나온다. 조릿대 터널은 마치 방풍림처럼 바람을 막아주어 아늑하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비양도까지 배를 함께 타고 온 여행객들은 많았는데 다들 어디로 간 것인지 비양봉을 슬렁슬렁 오르내리는 약 1시간 동안 단 네 사람을 보았다.
조릿대 터널을 지나고 탁 트인 포토 존이 보인다. 이제 정상에 올라왔나 싶었더니 길은 다시 이어지고 느슨한 언덕길 정상에 흰 등대가 보인다. 저곳이 비양봉의 정상이다.
정상까지 놀멍 쉬멍 슬렁슬렁 오르내리는 데는 약 1시간이 걸렸다. 배시간이 촉박하면 비양봉까지 오르기는 여의치 않을 것이다. 나처럼 섬에 들어와서 나가는 시간까지 4시간은 돼야 식사 또는 카페, 비양봉 오르기, 자전거 타며 섬의 이곳저곳을 멈추어 사진도 찍고 여유롭게 구경하기에 딱 좋다. 하지만 시간이 정 빠듯하다면 빠르게 섬 둘레를 걸으면서 비양봉을 올라갔다가 내려와도 2시간이면 충분히 돌 수 있다.
비양봉을 내려와 자전거로 섬을 한 바퀴 돌면서 펄렁못 습지 식물들을 관찰한다. 모르는 꽃이라도 카메라로 찍고 '검색하기' 버튼을 누르면 바로 이름과 특징을 알 수 있다. 사진을 찍기 위해 꽃의 얼굴을 살짝 카메라로 향하게 돌리는 중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협죽도는 독성이 매우 강해서 잎을 다량 섭취하면 심장이 수축하여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협죽도를 즙으로 만들어 화살촉에 바르거나 사약의 재료로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라니 간담이 서늘해진다.
그런데 동시에 오염에 강한 내성이 있어서 오염된 대기를 정화시키는 능력이 뛰어나 한때는 가로수로 심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병 주고 약 주고는 이런 때도 쓰일 수 있을까? 풋, 실없는 웃음이 나오다가도 화려한 식물들이 독성이 있는 것들이 많으니 함부로 만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기복신앙은 복을 비는 것이다. 달 밝은 날, 정한 수 한 사발 떠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라며 선한 소망을 비는 사람들의 모습을 옛이야기를 통해 보며 자랐다.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 이웃의 복을 빌었다. 그것은 절대자를 향한 순수한 기도이다. 어촌마을은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는 뱃사람들의 무사안녕과 풍어를 빌기 위해 제를 지내고 농촌마을은 한 해 농사의 풍년을 빌기 위해 제를 지낸다.
어디에 살든 인간들은 그들의 삶의 토대에 감사하고 그 삶을 이어 살아갈 수 있도록 기원했다. 거기에는 개인주의가 아닌 살아있는 공동체의식이 존재했다. 나만 잘 살면 된다가 아니라, 함께 모여 같이 나아가자는 건강한 유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