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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아벨

두 개의 섬

by 조은영 GoodSpirit

쾌청한 낮이 지나고 저녁이 왔다. 낮에 없던 구름이 어디서 다 몰려와 저렇게 낮게 드리워졌는지. 푹신한 솜이불이 금방이라도 나를 덮어줄 거 같다. 아~ 눕고 싶다. 그러나 암만 피곤해도 고픈 배를 먼저 채워야 한다. 여행자는 최상의 상태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돌보아야 하니까.

불 켜진 애월소랑, 가게에 들어서니 소랑언니가 반갑게 맞아준다. 저녁 배달 주문이 많아 바빴던 소랑언니는 아직 식전이다. 오늘은 낚지 덮밥 대신 낙지볶음을 쌈무에 싸 먹어 보라며 낚지와 밥을 따로 담아준다. 메뉴에 없는 불고기도 내온다. 그리고 늦은 저녁을 함께 먹는다. 지인이 찾아와 저녁을 대접하느라 불고기를 만들었단다.

"은영 씨, 내일 뭐 해요?"

"아직 계획이 없어요."

"그럼 내일 가게 쉬는 날이니까 같이 비양도 갈래요?"

"비양도가 어디예요?"

"협재 갔다고 했죠? 거기에서 보이는 섬이에요. 한림항에서 배 타면 돼요."

"아, 그렇지 않아도 무슨 섬인가 궁금했었는데, 비양도구나. 저는 완전 좋아요."

"내일 오전에 연락할게요."

생각지도 못했던 비양도 계획에 신이 난다. 제주평강에 들어서니 호스트가 아리와 두리를 보살피고 있다. 나를 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묻는다.

"저녁은 드셨어요?"

"네, 애월소랑에서 먹었어요. 내일 소랑언니랑 비양도에 가기로 했어요."

"그래요? 그럼 여기서 저녁 같이 먹어요. 제가 김치찌개 해드릴게요. 아니다. 내일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약속은 하지 말고요. 제가 저녁 해놓을 테니, 시간이 되면 와서 먹어요. 약속을 해놓고 못 지키게 되면 괜히 미안해지니까. 부담 느끼지 말아요."

"네."

그렇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만 그 약속을 지키려고 내 하루를 내 마음대로 보내지 못할까 봐 배려해 주는 아벨이 참 섬세한 사람이구나를 다시 한번 느낀다.

"호스트님, 선물이 있어요. 오늘 금능 소품 가게에서 샀어요."

나는 호스트를 생각하며 금능소품에서 고른 일지를 건넨다.

"아, 마침 새로운 일지를 사려고 했는데, 멋진데요. 전에 쓰던 것처럼 마음에 들어요."

아벨은 책꽂이에 꽂혀있는 일지를 꺼낸다. 갈색 가죽커버가 씌워진 새하얗지 않은 자연스러운 발색의 누런 종이들에 글과 그림이 빼곡하다. 사실 나도 그 일지에 대해 알고 있었다. 호기심이 일어 책꽂이에 있는 것들을 다 꺼내어 보았으니까. 물론 갈색 일지는 사적인 기록물, 그러니까 일기 같아서 내용을 보지는 않았다.

"호스트님 일지였네요. 뭔가 했어요."

"심심하면 보셔도 돼요."

"일기 같은데, 정말 봐도 돼요?"

"괜찮아요. 숨겨야 할 이야기는 없으니까요. 누구나 봐도 되니까 책꽂이에 넣어뒀는걸요."

아벨은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때로 일기장에는 부끄러운 이야기도 있는데 말이다. 어쩌면 그는 아무것도 부끄러울 게 없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네, 알겠어요."

나는 한번 심호흡을 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선물이 한 가지 더 있어요. 호스트님 생각하면서 쓴 시가 있어요. 들어보실래요?."

내가 감히 겨우 며칠 만나본 아벨에 대해 시를 쓰고 그 앞에서 그 시를 낭독한다는 것은 상당히 겸언쩍은 일일 수도 있지만 그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 제안을 받아들이며 맞은편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나는 긴장을 풀고 낭독을 시작했다.


<섬, 아벨>


아벨에게는 두 개의 섬이 있다


사람들 사이의 섬과

아무도 알지 못하는 섬


누구든 오가며 쉬어가는 섬과

아무도 올 수 없는 섬


자발적 고립을 갈망하면서도

사람들 사이 섬에 닿고 싶어 하는


그는 충만하면서도 공허하고

그는 사랑이면서 외로움이다


자신의 상처를 끌어안은 채

이방인을 치유하는 힐러이다


그는 자신만의 섬에서

가닿을 수 없는 섬을 찾는다


나는 아벨이 가닿을 수 있는

그 섬을 찾고


자신을 치유하는

힐러가 되기를 바란다


아벨은 눈을 떴다. 미소 짓는 촉촉한 눈빛. 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 아벨은 큰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며 말한다. 자신을 위해 시를 써주어서 고맙다고. 나 역시 그의 고마움이 진심으로 느껴져 더없이 고마웠다. 아벨은 나에게 하나의 시가 되었다.


정읍에 돌아오고 얼마 후, 브런치스토리에 제주여행 연재를 쓰기 시작하며 안부를 묻다가 내가 선물한 노트에 아벨이 쓴 글과 그림을 보내줬다. '알아차림'과 '나를 내려놓음의 노출'그리고 '치유'에 대한 그의 사유가 와닿았다,

아벨의 기록
아벨의 미소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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