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멈추지 않기
부족함이 넘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부족함이 부족할 때는 교묘히 숨길 수 있지만 넘쳐버리면 드러나기 마련이지요. 강사로서 돈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가르치는 일을 한 것은 벌써 혹은 고작 10년. 그 시간 동안 나의 부족함이 넘치는 순간과 그 부족함을 채워나가는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이번 연재를 마치려고 합니다. 연재의 마지막을 굳이 이 주제로 채우려는 까닭은 시작을 앞둔 누군가에게 처음에는 그리고 한동안은 우리 모두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이라도 조금 더 쉽게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그림책으로 강사 일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중학교 3학년인 셋째 아이를 낳고 우연히 도서관에서 그림책지도사 과정 교육이 있음을 발견하고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데 도움이 되겠지 하는 마음에 배우게 되었지요. 그때만 해도 내가 그림책으로 이렇게 다양한 수업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만나게 된 그림책을 그림책지도사 과정을 통해 공부하면 할수록 그림책이 단순히 아이들 책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미적으로 아름다운 그림과 짧은 텍스트가 어우러진 하나의 예술문학 장르로 깊이 사랑하게 되었지요.
그 후로도 그림책의 매력에 폭 빠져 책놀이, 동화구연, 독서치료, 토의토론, 독서논술 등 그림책을 활용 가능한 민간자격증을 취득했지요. 뿐만 아니라 그림책 독후활동으로 연결 지을 수 있는 아동미술, 전통놀이, 원예치료, 퍼실리테이터 등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고 생태교육, 이마고대화법, 동화창작 같은 교육도 이수했습니다. 이런 교육들은 도서관, 평생교육원, 공동체활성화센터, 새일센터 등 지역에 위치한 공공기관에서 오프라인 무료교육을 받고 이론과 실기 테스트를 거친 후,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민간자격증을 발급하는 온라인 기관에서 일정시간 교육을 이수하고 이론 테스트를 보면 자격증을 비교적 쉽게 발급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교육을 받는 분이라면 오프라인 대면교육을 우선적으로 받아보시길 권유합니다. 대면교육은 교육과정이 탄탄하고 다양한 실습과 재능기부 체험을 통해 실력을 향상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함께 공부하는 참여자들과 동아리를 조직하여 해당분야에 대해 보다 깊이 공부해서 교육분야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렇게 책샘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현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림책은 환경, 사회, 생태, 인권, 민주주의, 자아정체성, 감정, 가족, 관계, 창의성, 다양성, 예술 등 사회전반의 모든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에 교육과 소통에서 매우 가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만나는 모든 대상과 어떤 수업에서든 활용이 가능한 특장점이 있는 매개체이죠. 그림책에 대한 애정이 큰 나머지 그림책 예찬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이제 각설하고 부족함이 넘치는 순간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한 5~6년쯤 전 일입니다. 책을 잘 읽지 않는 중2 남학생 7명과 함께 하는 독서동아리였지요. 아이들과 함께 미리 정한 책을 읽고 2주에 한번 만나서 비경쟁 자유토론을 하는 수업이었습니다. 아이들은 황미경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 같은 쉽고 가독성 있는 청소년 소설조차 읽고 오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 때를 대비해 박기범 작가의 <미친개> 같은 그림책을 가지고 가서 같이 읽고 토론을 대신하기도 했지요.
그 독서동아리에서 유난히 나의 신경을 건드리는 남학생이 한 명 있었습니다. 작고 마른 체형의 아이는 약간 하이톤이었는데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할 때마다 트집을 잡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하고 욕을 하거나 시비를 걸어 수업의 흐름이 끊겼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말로 지도를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아이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쌓였습니다. 무례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누가 한마디를 하면 두 마디를 갖다 붙였지요.
그리하여 그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어떤 책으로 이야기를 나눴는지,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나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아이가 대뜸 누군가의 말허리를 자르며 말했죠.
"한국사람은 다 그래. 그래서 한국사람은 안 된다니까!"
더 이상 끌어다 쓸 수 없는 인내심의 잔고가 마이너스를 찍는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아이를 향해 날카롭게 쏘아붙였습니다.
"야!!! 나도 더 이상 못 봐주겠다!"
그 다음 말들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물론 필름이 끊긴 것은 아니고 그 아이의 태도에 대해 여태 해온 것처럼 훈계하는 말들이었지요. 그저 너의 태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이러쿵저러쿵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다른 점은 내가 단단히 화가 나서 말했다는 것입니다.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에게 '야!'라고 부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일로 내 행위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한 적은 없지만 나 자신만큼은 그냥 넘어가기 어려웠습니다. 생각할수록 부끄러웠지요.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절대 아이에게 소리치지 않을 것입니다.
화가 난 상태에서의 훈육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그 이후로 수업 태도가 조금 바뀌기는 했지만 자신의 무례함을 깨달아서라기보다는 민망한 훈육에 다시 노출되고 싶지 않아서였을 터입니다. 아이를 볼 때마다 내 민낯을 보인 것 같아 나 역시 민망했고 우리는 서로 서먹서먹하게 조심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수업을 하면서 다양한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은 만났습니다. 수업 중에 치고받고 싸우는 아이도 있었고 수틀리면 바닥에 드러누워 울며불며 소리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무기력하게 멍한 눈빛으로 앉아 있는 아이도 있었고 공부는 잘한다는데 어떤 질문을 해도 아무 대답을 안 해서 내 속을 답답하게 만드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속이 부글부글 끓을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제법 태연해졌습니다. 과제분리가 가능해졌으니까요.
아이의 문제행동을 내가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나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아니라 가정에서부터 시작해 오랜 시간 형성되어 온 태도이기 때문이지요. 나는 그저 그때마다 참을 인(忍) 자를 새겨가며 최대한 온유하게 타이르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좀 엄하게 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 경험으로는 엄격함보다는 언제나 온유함이 더 효과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문제보다는 내 문제에 집중하는 게 좋습니다. 나는 건망증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수업시간을 잘못 알고 늦거나 수업하는 요일을 착각해서 노쇼를 한 적이 한 번 있었습니다. 요일마다 가는 학교와 기관, 그리고 시간이 바뀌다 보니 요일을 착각해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강사의 노쇼라니 참 당혹스러운 일이지요. 그리고 수업에 쓸 그림책을 깜빡한 적도 있었습니다. 해서 학교에 있는 다른 그림책으로 급하게 대체한 적도 있었고요.
이렇듯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내 문제에 대한 해결책만큼은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수업 일정은 탁상달력에 모두 체크해 두고 매일 밤 다음날 수업에 쓸 준비물을 수업 가방에 다 챙겨놓고 잠이 듭니다. 미리 챙겨두면 놓치는 법이 없지요.
당신도 여러 실수들을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너무 절망하지 마세요. 노쇼에는 진정한 사과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그림책을 깜빡했을 때는 다른 주제의 책이라도 바꾸어 진행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멈추지 마시고 계속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넓은 창공에서 자신만의 비행을 시작하시길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