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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꿈일 뿐

This too shall pass

by 조은영 GoodSpirit

자각몽은 꿈속에서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꿈이다. 그 꿈을 꾸는 자는 꿈속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바로 통제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 꿈속에서 무기력한 이유는 통제 불능 때문인데 꿈이 통제가 가능하다면 자신의 꿈속에서 전능자가 되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유년시절 가장 많이 꾸던 꿈은 하늘을 나는 꿈이었다. 주로 3가지 방법으로 날 수 있었는데 첫째, 지붕 위에 올라가서 이 집 저 집 지붕 위를 가볍게 톡톡 발로 구르며 점프를 하면 몸은 높이 붕 떠서 멀리까지 다른 집 지붕 위로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이집저집 지붕 위를 구름 위를 걷듯 건너 다니면서 지붕 아래 마당에서 펼쳐지는 다른 이들의 삶을 구경하기도 했다. 두 번째로는 자전거를 타다가 하늘을 나는 것이다. 자전거 페달을 빠르게 돌리면 어느덧 내 자전거는 공중부양을 해서 하늘 위로 높이 떠올랐다. 나는 공중에 떠올라서도 여전히 페달을 돌렸고 바퀴는 무엇에 마찰력을 일으켜 전진하는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 끝으로 두 팔을 날개삼아 파닥거리면 공중으로 떠올라 하늘을 날 수 있었다. 하지만 세 가지 비행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떠오른다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갑자기 추락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추락의 대가는 놀란 가슴으로 잠에서 깬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의 꿈 해몽은 나쁘지 않았다. 하늘을 날며 추락하는 꿈은 키가 크는, 곧 성장하는 꿈이라고 했다.

그러할지라도 공중부양의 꿈은 언제나 공포와 아쉬움으로 끝을 맺었다. 나는 꿈속에서 꿈을 자각하여 공중부양의 능력을 잃지 않고 새로운 능력을 키워보려 노력했지만 실상은 다른 어떤 꿈에서조차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언제나 꿈을 현실로 착각하며 그저 주어지는 대로 즉 기쁨, 슬픔, 두려움, 불안 등을 무기력하게 수용해야만 했다. 하지만 딱 한 번 아주 짧은 자각몽을 꾼 적이 있다.

바다 같은 물이 펼쳐져 있고 물 위로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물속에 자리 잡은 완만한 원뿔 형태의 바위 위에 서 있었다. 주변은 자욱한 안개로 잘 보이지 않았고 나는 대체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을까 어떻게 나갈 수 있을까 다소 난감해하면서 내 행색을 살폈는데 옥색 도포를 입은 남자가 되어 있었다. 꿈속에서는 쉽게 외모가 바뀌고 성별, 인종, 나이가 달라지는 일도 흔하다. 그런데 꿈속에서 나는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남자라고? 이게 말이 돼?'에서 시작된 질문은 '꿈인가? 꿈이구나!'로 나를 각성시켰다. 처음으로 꿈을 자각한 순간이다. 하지만 자각몽에서의 전능은 일어나지 못했다. '이제 내 마음대로 뭐든 해볼 수 있겠다.'를 깨닫는 순간 잠에서 깼기 때문이다.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꿈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꿈속 나의 두려움이 사라졌다. 안개가 자욱한 바닷속 작은 바위섬에 서있는 나의 상황이 곧 끝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두려움의 끝은 상황의 종료가 아니라 상황이 종료될 것을 아는 시점이므로 상황의 종료보다 더 빠를 수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페르시아의 위대한 왕과 현자의 전설에서 유래했다는 이 문구는 전 세계 여러 문학 작품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현자가 왕의 반지에 새겨주었다는 'This too shall pass.'가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이 말은 한 인간이 일평생 살아가면서 느끼는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서 통제력을 잃고 휩쓸리지 않고 평정심을 갖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괜찮아진다. 힘든 시간을 겪을 때마다 생각한다. 희극이든 비극이든 영원히 지속되는 순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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